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블록버스터형 미술전시회

김영호




매년 방학기간에 맞추어 열리는 대형 미술작품전, 이른바 기획사가 주관하는 블록버스터형 전시를 둘러싸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의 자본을 투자해 외국의 유명 작가나 유물들을 유치하는 전시사업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문제가 비화되어 법정 싸움으로 확대되면서 이러한 유형의 전시회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반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간 블록버스터형 전시에서 제기되어온 문제는 대체로 고가의 입장료, 과대광고, 허술한 전시디자인과 도록 그리고 위작과 복제물 시비 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대부분은 문화생산자과 소비자의 역학적 차원에서 자체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다. 가령 대중들의 전시문화 소비에 소요되는 비용은 오페라나 뮤지컬에 비하면 비싸다고만 할 수 없고, 과장된 광고나 조악한 전시디자인과 자료집은 네티즌 관객의 비판적 시각에 의해 즉각적으로 견제되면서 점차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위작과 복제물 시비는 주최측과 비평가 그리고 관객 모두가 방관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것은 사기, 위조, 저작권 침해 등의 법적 제제로 이어질 수 있고 흥행에 영향을 미칠때 재산상의 손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작이나 복제물은 원작에 대한 심각한 미학적 오해를 야기시켜 결국 타문화 수용에 외곡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다.
그런데 오늘날 시각예술 분야에서 위작과 복제물의 문제는 진위분별의 단순 논리로 처리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차용, 변형, 패러디, 모사, 복사 등을 예술창조의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해 왔고, 미술품의 생산과 유통구조의 변화에 따라 오리지널의 개념이 이전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어느 이론가가 제기한 복사물 시비 때문에 법정다툼으로 비화된 <달리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요지는 달리가 제작한 수채화 연작 105점을 판화공방이 석판화로 옮겨 1777질의 판화집을 만들었는데 그 에디션의 한 질(5권)을 액자에 넣어 전시물로 소개했고, 이에 대해 복사본이라는 진단을 가한 것이다. 이에 대한 주최측의 주장은 문제의 석판화가 작가의 생전에 자신의 감독하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복사물이 아닌 또 하나의 원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견해를 달리하면 달리의 수채화가 석판화라는 장르로 전사되었다는 점에서 원본(original)이 아니다. 또한 1960년 국제미술인회의에서 채택한 선언문에 따라 오리지널 판화가 지녀야할 작가의 친필사인이 이번 전시물 시리즈에 없어 복사물(reproduction)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같은 점에 비추어 향후 법정이 어느 한 편의 손을 든다하더라도 미술품의 유통관례와 매체의 변화에 따른 미학적 기준이 법적 재판의 기준과 일치된다고 보기는 힘들것이다.

양측 모두가 힘이 드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쟁은 우리 화단에 생산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방학이 되어 찾아오는 대형 미술전에 대한 기획사와 비평가의 입장 뿐만 아니라 문화소비의 주역인 대중들의 대형미술제에 대한 판단의 눈높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미술이론 단체들은 침묵에서 벗어나 문제의 근본을 학술적으로 검증을 해야할 시기다.

- 한라일보 2004.9.4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