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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의 구성과 컬렉션

김영호

리움의 개관은 우리도 제대로 된 미술관을 지니게 됐다는 자랑스러움을 갖게 한다. 역사적인 사설 미술관 시대의 개막이라 할 만하다. 리움은 전통미술과 근대ㆍ현대미술을 담는 전시장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면서도 안내 데스크가 있는 중앙광장을 축으로 쌍방이 연결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이는 그동안 취약성을 보여왔던 우리 미술의 역사적 패러다임과 정체성 확보를 위한 실험실 기능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가령 관객들은 전통미술부에서 겸제의 명작들을 보고 나와 한국 근대ㆍ현대미술부에 걸린 소정과 청전의 작품을 거쳐 유영국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또한 학무의 상감이 깃든 청자와 달항아리의 백색 잔영이 머리에서 채 가시기 전에 김환기와 단색 평면주의 작업들을 보게 되며, 단원에서 이중섭과 박수근 그리고 박생광에 이르는 서민의 삶과 무속의 세계가 오버랩되며 그 연계성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게 될 것이다.

리움의 주요 구조는 세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저마다 독립된 건축작품으로 돼 있다. 한국 전통미술을 전시하는 Museum 1은 구겐하임을 연상케 하는 역원추형과 직육면체 구조로서 테라코타 타일을 재료로 삼아 완성됐다.
Museum 2는 국내외 근대ㆍ현대미술 상설 전시관으로서 백과 흑이 주조가 되는 전통적 큐브의 전시실 형태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는 기획전시 기능과 교육 기능을 담당할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와 더불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보인다.

흑과 백의 큐브라는 정형화된 공간구성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이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거대한 유리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돌망태 축조벽 사이공간이 여유롭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품 설명을 위해 리움이 내놓은 장비는 삼성에서 개발한 개인 휴대용 해설기로 도슨트와 관객들에 의해 발생되는 육성 소음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 작품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해설이 진행돼 작품에 코드를 맞춰야 하는 기존 장비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해설기는 관객이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어 청각 장애인의 경우 문자로 화면을 볼 수 있고 자료실에 와서 추가적으로 원하는 작가의 자료를 검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보안장비도 전자파를 통한 신호음에 의해 관리돼 과학기술을 이용한 미술관 운영시스템의 현장으로 내세울 만하다.

무엇보다도 리움의 자랑거리는 컬렉션의 질에 있다.
그동안 삼성미술관이 꾸준히 구입해온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작품은 국내외 미술 흐름과 그 단면을 사적 문맥으로 진단해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국보급 유물들과 특히 한국의 근대ㆍ현대미술 분야 주역들의 대표작이 망라돼 있고 외국 작가들도 2차대전 이후의 주요 경향 대표작들로 채워져 있어 미술사 연구의 중심이 될 소지를 충분히 갖는다. 이런 컬렉션의 질은 그간 삼성미술관의 운영 조직과 인력의 전문성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공무원 중심의 국ㆍ공립 미술관과는 달리 사설 미술관이 지닌 조직과 인력의 전문성은 삼성미술관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며, 지속적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미술관이 잘 되려면 건물과 사람 그리고 소장품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제 독립된 미술관 건물이 완성됨으로써 리움은 좋은 미술관이 될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됐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예약제를 통한 입장객 제한과 지나친 보안경보장치 작동 그리고 동남쪽 창에서 비치는 강한 자연광선 처리 등은 점차 해결해야 할 요소다.

또한 작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휴대용 해설기는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가령 장욱진의 그림 앞에서 붉은 해와 함께 그린 달은 영원히 지속되는 절대적 시간성을 나타낸다 등의 해설과 요제프 보이스의 피아노 설치작업에 대해 피아노는 위험과 고통이 닥칠 때 영적인 힘과 정신적 통찰력으로 영혼을 위로하는 따뜻한 존재로 상정된 수사슴을 대신하고 등에 이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술관은 엘리트 중심으로 지도하고 교육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대중과 더불어 살아 있는 미술관이다. 살아 있는 미술관이란 일상적 삶의 현장과 끈이 닿아 있고 대중적 소통을 위해 실험하고 연구하는 공간을 말한다.

개관 첫날 받은 인상은 리움이 아직도 제한과 통제 그리고 엘리트적 색채로 포장된 모더니즘 영역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이념이 변하고 따라서 이념을 담아내는 미술관도 더불어 변화해야 한다. 아직도 열악한 국내 미술환경 속에서 리움의 진정한 성공은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역학관계를 조절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 헤럴드경제 20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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