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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의 변용 : 아르망의 신화

김영호



하나의 일상적 오브제에 어떠한 행위를 가해 본래 정해진 물질적 기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닌 인식 대상이 된다. 1960년대에 구미지역 미술계를 공략했던 숱한 산업오브제들은 당대의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중요한 요인으로서 대두되었고 동시대의 미술사가와 사회학자들의 학문적 성과와 맥을 같이하면서 국제적인 미술경향으로 확산 되었다.

예술과 사회학의 연계와 관련된 연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프랑스의 미술사가 피에르 프랑카스텔(Pierre Francastel)을 들 수 있다. 그는 1956년 출간된 명저 <회화와 사회>를 통해 예술가는 의미체계를 가진 고유한 언어를 통해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통된 세계관을 번안해 낸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무엇보다 하나의 기호이며 그것은 관객들의 다양한 심리학적 관점들이 만나는 하나의 장소라 규정하였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1960년대 이후 대두된 예술창조의 의미를 이해케 하는 기호들의 메카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창조의 의미는 ‘창조자의 관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상의 법칙에 따르는 조형언어의 규칙들을 연구하는 ‘관객의 관점’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1968년 후기산업사회에서 생산되는 오브제들을 사회학적 체계로 분석한 <오브제의 시스템>을 출간하였다. 소비현상 속에 놓인 오브제의 연구는 피에르 프랑카스텔의 경우처럼 그로 하여금 오브제를 하나의 기호로 인식하도록 이끌었다. 보드리야르는 오브제 속에 은닉되어 있던 근대적 꿈의 뿌리로 이어진 다양한 단계의 원리들을 세웠다. “어떤 오브제이든 간에 그것의 실재적 원리는 항상 괄호 안에 넣을 수 있다. 오브제가 정신적 실재들(pratiques mentales)로 바뀌기 위해서는 구체적 실재(pratique concrète)를 상실시키기만 하면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실재 오브제의 뒤에는 꿈꾸는 오브제가 있다.” 각각의 오브제는 하나의 과정에 따라 의미체계가 정해진다. 그 과정이란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소비와 그에 대한 부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인간적 관계들로 집약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1964년에 출간한 <비평적 에세이>에서 이미 제시되었다. 그는 기호학적 원리로 오브제의 개념을 분석하였다. 왜 오브제의 기호학인가? 왜냐하면 거기에는 순수한 상태로서의 오브제에 대한 의미구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의미를 지닌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항상 다소의 언어와 혼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르망은 당대의 인문학적 성과에 힘입어 오브제의 다양한 개념에 연계된 실험적 작품들을 생산했다. 그는 당시 피에르 레스타니가 주창한 누보레알리즘의 핵심 멤버로서 소비산업사회의 어떤 원리들을 나타내는 오브제의 상징적 경향에 매료되어 있었다. 아르망의 연작들은 산업 생산물들로 채워진 전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교차되는 지점의 표정들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가 관념적 비평의 잣대로 아르망이 시도하는 오브제의 체계에 대한 기술이 의미와 그 반대의미를 드러내는 일종의 선언적 행위라 규정할 수 있다면 그의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시적 대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르망의 초기 작업은 오브제의 흔적에 대한 실험이었는데 ‘도장의 형적(Cachets)’(1955)과 ‘오브제의 거동(Allures dobjets)’(1958)과 같은 일종의 판화 시리즈가 그것이다. 1959년에 이르러 그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물량적 표현 방식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르망은 자신의 작품에 ‘집적(Accumulation)’과 ‘쓰레기통(Poubelles)>’ 이라는 두 이론적 푯말을 세웠다.

<집적> 시리즈는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동일한 재료를 채워 넣은 것이었다. 작가에 의해 축성된 이 오브제 시리즈는 물량 비평(masse critique)이라 불리우는 주제아래 다채로운 이론들을 번식시켰다. 인간활동의 찌꺼기로서 사용된 오브제는 예술의 새로운 개념과 만나게 되었다. 아르망은 라디오 앰플을 쌓아 작품을 만들고 난 이후 커피포트, 병 뚜껑, 타자기, 개스 마스크 등등 다양한 오브제들로 그 선택의 범주를 넓혀 나갔고 그 용기도 플라스틱 재질이나 나무판재로 만들 상자를 이용하였다. 그의 작업은 시적 분위기 또는 표현적 자취를 발산시키며 대량 소비사회와 도시자연의 사회학적 문맥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르망은 자신이 서있는 시대의 언어를 찾아 나섰다. 그 새로운 방식이란 그가 택한 오브제들에 어떤 손상도 입히지 않은 채 쌓기의 방식이나 반복적 나열 방식만으로 개별적 특성을 상실시키면서 그것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쓰레기통> 시리즈는 유리상자 안에 공공 쓰레기장의 잡다한 건성 폐기물들을 채워 놓은 것이다. 아르망은 1959년과 1963년 사이에 이 쓰레기들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작업을 실행했다. 그가 초기에 실행한 ‘쓰레기통’ 연작에는 부정적이고 무질서한 현실을 야기하는 경향이 엿보이며 작가가 목표로 설정한 기본적인 직관으로서 물량에 대한 가치상실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생산의 풍요로움도 아니며 오브제의 기능적 가치도 아니다. 거기에는 불명확함(dégradations)과 종결(clôtures)의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대량소비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려는 그의 의도는 ‘꽉참(Le Plein)’에 이르러 극대화 된다. 1960년에 열린 이 전시회에서 그는 화랑 전체를 빈틈없이 폐기물로 채워 놓았던 것이다.

아르망은 1963년부터 기념비적 규모의 작품을 위한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다. 플라스틱 용액을 사용하여 오브제를 투시적 공간 속에 고정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아르망은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서 물감 튜브를 용액 속에 재워 넣어 어떤 정신성을 보여준 작품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아르망은 물감이 배출된 상태의 튜브를 나란히 배열하거나, 물감을 자유분방하게 방출하여 빗물이나 빛의 덩어리처럼 뒤섞어 고정시켰다. 이들 작품은 순수한 원색들이 배열되어 있는 형국이어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눈을 팽팽하게 자극하는 미학 넘어 거기에는 작품의 가치를 높혀 주는 색다른 유모어가 있다.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새 산업오브제를 사용한 집적 작업은 폐품 쌓기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연작이다. 1967년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르노(Renault)의 한 공장은 그에게 부품 보관창고를 개방했다. 아르망은 이곳에서 여러 가지 기계부품들로서 송풍기, 필터, 나사볼트, 펜치, 피스톤, 나사못 등을 자유롭게 선택해 작품을 제작하도록 요청받았던 것이다. 이 거대한 생산라인을 가진 업체의 혜택은 작가로 하여금 불안(angoisse)과 열광(fascination)의 이중적 경험을 동시에 체득하게 하였다. 이 위험한 선택이 국가적 차원의 기술을 찬양한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으나 그는 기념비적 작업을 실천하는 동안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공장의 생산 제작소에서 여러 달 동안 엔지니어들과 함께 지냈으며 생산과정의 전 단계에 보조역할을 담당하였다.






아르망의 작품에 나타나는 방법적 원리는 하나가 다른 하나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상반의 극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그는 1959년부터 오브제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뒤이어 그는 1961년부터 그것들을 부수거나 자르기를 실행했으며 1963년부터는 오브제를 불태우는 방식을 작품 제작에 도입했다. 이러한 다양한 제작방식 속에서 각각의 오브제들은 저마다 다른 의도와 비평을 위한 대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힘의 발견은 결국 심리학적이고 물질적인 폭력의 세계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작가를 이끌었다.

그 결과 아르망은 이미지를 분절시켰던 큐비즘의 전통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또 하나의 기법을 창안해 내게 된다. 그러나 이차 세계대전과 함께 성장한 세대들에 있어 폭력이란 다양한 낭만적 삶의 유형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아르망의 폭력적 행동 속에는 항상 파괴의 논리가 존재하며 ‘분노(Colères)’ 시리즈는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파괴의 논리는 그 방법적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쓰레기통’ 이나 ‘집적’ 시리즈와 동일한 비평의 제국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파괴의 행위를 비롯한 자신의 작업은 오브제의 본래적 유용성을 상실시키고 오브제를 둘러싼 독립적 의미를 발생시키기 위해 전통적 미학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망은 폭력적 행동을 통해 오브제의 가치를 뒤바꿨다. 자르기와 부수기의 신화적 시리즈 작품들은 오브제들을 특정 상태로 정지시키면서 그것을 화석처럼 머물게 하였기 때문에 ‘시간의 정지’ 또는 ‘우연의 고착’이라는 논리로 분석되었다. 그의 작업은 비물질적 범주에 속한 개념으로서 시간에 대한 물질화 작업이었다. 부서져 파편화 된 볼륨과 불에 태워진 오브제들은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흔적에 대한 관찰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원래 오브제가 지니고 있던 형태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케 한다. 이렇듯 아르망의 작업은 두 개의 현상 - 오브제의 기억과, 창조적 시각에서 그 오브제의 기억을 해체 - 사이에 결속을 논리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나간 산업문명의 시간들과 소비사회의 폐품들에 대한 기억이 다양한 오브제들의 무덤 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아르망의 작업은 산업사회의 소비현상을 드러내는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최근 그가 다루는 오브제의 대상은 산업용 생산물을 넘어 비너스나 니케상과 같은 미술사의 명작들을 차용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고가구나 악기 그리고 그리이스 조각상에 이르는 기성품들이 시간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품게 되는 것은 오브제의 기호학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오브제는 사회학에서 심리학으로 전환되었고 기호가 지배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고대의 신화가 현대의 신화와 접속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아르망의 유산을 만나고 있다.

- 월간미술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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