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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일 /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유쾌하게 비틀기’

김영호

I. 최근 어느 원로 미술사가는 우리나라 현대의 미술은 역사상 “경이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유로서 매년 수천명의 미술인구가 대학의 문을 나서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의 작가를 배출하고 있으며, 수묵화, 유화, 조소, 공예,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경쟁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미술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고도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 가지의 발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사에 편입될 인물의 등장에 대해서는 지극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청년작가들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세계만을 꿋꿋하게 더듬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한국미술사 현대편 편사의 기준과 원칙’으로 다섯 개의 덕목인 창의성, 한국성, 대표성, 시대성, 기타(작고작가/분명한 제작연대)를 제시했다.
기존의 창작과 비평의 기준이 해체되었다고 보는 포스트모던적 상황에서 이러한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작가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기준들은 예술창조와 해석을 위한 새로운 미학적 표준이 요구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하나의 귀한 이정표가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술 작품이란 양식과 정신의 측면이 양립된 독창적 활동이어야 하고, 그것이 작가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진정하고도 치열한 성찰의 결과로 탄생되었으며, 역으로 후대의 대중들이 그 작품을 통해 당대의 시대성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낼 수 있어야 함은 단순히 작품의 비평을 넘어 예술 자체를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II.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진하는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은 공공기관이 실행하는 신진작가 발굴이라는 차원에서 사업의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리고 선택된 작가들은 미술관이 추진하는 전시활동과 연계되면서 대중들에게 소개될 기회를 갖게 되므로 한국미술사로 편사될 가능성이 누구보다 크다.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필요하고, 새롭게 제시해야만 하는 것이 소위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로서 미학적 표준이다.
현대미술은 각양각색의 경향들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는 추세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비평하는 하나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 행위와 작품에 대한 비평적 기준에 대한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작금의 해체적 현상은 지나간 예술생산과 비평의 원리가 부정되는 것일 따름이지 현재 또는 미래의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미래의 예술을 해체시킬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다. 예술은 삶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대담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III. 필자가 위영일의 작품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우선 그의 작품은 기존의 장르개념으로서 회화, 조소, 공예, 디자인, 건축 등의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퓨전예술가다. 그의 퓨전적 취향은 비단 장르간의 융합뿐만 아니라 그가 다루는 작품의 소재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영웅 캐릭터를 조합해 놓거나 다양한 종류의 공룡 이미지를 뒤섞어 놓은 <짬뽕맨>이나 가 그 예다.



위영일의 유쾌한 상상력은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전 만화 제작사에서 일한 오랜 경험의 소산일 것이다. 만화는 그의 작품세계에 표현기술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내용의 단순성과 축약적 의미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메커니즘을 부여한 계기였다고 생각된다. 사사로운 일상적 현실에 대한 풍자와 은유 그리고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있음은 그의 작업단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 중 “인간의 과도욕망들을 유쾌하게 비틀고자 한다” 와 같은 구절은 이러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사만화를 보면서 단숨에 전달되는 형식의 가벼움과 내용의 무게가 위영일의 작품에서 배어있다.
위영일이 채택하는 표현방식은 만화 캐릭터 이외에도 광고디자인 그리고 인터넷 배너 등의 형식으로 확대된다. 이 모두가 정보 소비사회의 산물이며 소비체제를 강화시키는 미디어 들이다. 디지털 정보시대에 가장 보편화된 정보 소통의 시각적 매체들이 위영일의 작품을 위한 표현 방식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대표적 미디어로서 만화, 광고,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있는 위영일이 표상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들만의 리그> 시리즈를 중심으로 주어진 자료를 일괄해 보면 대략 세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1. 미술개념의 생산과 소통에 대한 관심 2. 문화제국주의 및 영웅주의의 허구성 폭로, 3. 익명적 주체에 대한 욕망과 비판이 그것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현대미술에 이미 만연되어 있는 것들이며 특히 최근의 중국과 일본의 미술경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영일의 경우 이러한 내용들이 작품으로부터 발생된 부차적 산물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과 형식 자체로 수용 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보다 폭넓은 인문학적 성과들과 더불어 다루어질 가능성이 풍부하게 주어진다. 나아가 그의 작품세계는 미술개념, 미술시장, 문화 제국주의, 주체의 상실, 혼성 등 현대가 요구하는 담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동시대성을 지닌다. 특히 인터넷 미디어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소통의 전략들에 대한 유쾌한 비판이 보는이들을 사로잡는다.



위영일이 채택하는 예술생산의 형식논리는 하나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귀추를 알 수도 없다. 만화 작가가 앞으로 어떤 제목의 작품을 만들어 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표현방식과 내용이 정해진 상태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방식과 내용 자체가 예술적 주제를 이루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위영일은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영일의 작업은 해석의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따른다. 일상적 오브제(주제)를 선택하고, 선택에 의해 차별화된 오브제는 특수한 의미를 지니게 되며, 사사로운 것을 새로운 인식대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응용되는 것이 기호학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모방과 차용의 전략이 숨겨져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는 불가피하게 모순과 이율배반의 상황을 형식논리로 채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위영일의 작업은 모순적이다. “All is Nothing”을 선언하는 작가의 비장한 태도가 그것이며,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그것이다. 사소한 것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결국 사건으로 확장되기 마련이다. 예술적 메커니즘이란 그런것이다. 작품에 등장한 꽃은 이미 꽃이 아니며, 작품에 등장한 영웅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영웅이 아니며, 작품에 등장한 공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공룡의 개념적 범주를 넘어 서 있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야구선수로 연출한 인물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위영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위영일의 작업은 새로운 미학적 지평의 출발선상에 서 있다. 일상에서 사냥한 일상적 재료들을 사건화 하는 재치와 순발력, 그것을 현대적 소통의 미디어로 풀어내는 동시대성, 그리고 모순적 구조가 새로운 예술창조의 형식논리가 되는 역전의 발상 등은 이 새로운 미학을 위한 연구의 과제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이러한 요소들이 어느 원로 미술사가가 제시한 ‘한국미술사 현대편 편사의 기준과 원칙’과 어떤 관계성이 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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