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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조 / 존재의 원형을 찾아서

김영호

I. 이승조는 파이프 화가로 알려져 있다. 파이프로 보이는 그림이 작가의 트레드 마크가 되었다는 말이다. 실재로 그는 25년의 화업을 계속해 오면서 고집스럽게 파이프의 형상을 닮은 작업에 집착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세우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실재로 그의 작업에 사물로서 파이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도 그림의 제목에 파이프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파이프 없는 파이프 그림에 작가는 ‘핵(Nucleus)이라는 일관된 제목을 붙였다.
이승조가 일구어낸 영역은 시각적 일루전의 세계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일루전이라는 말이 환영으로 번역되는 것처럼 그것은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회화예술의 본성을 설명하는 근간으로 오래전부터 다루어온 개념이기도 하다. 파이프가 존재하지 않는데 파이프를 연상케 하니 그의 그림은 일루전의 영역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있으면서 없는 세계를 우리는 존재의 원형적 세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변화하는 자연계의 사물들의 외관 저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세계가 원형적 세계다. 그것은 생성하고 변화하고 사멸하는 물질의 존재방식을 넘어선 세계이자 한편으로 그 순간순간의 현상 모두를 상기시키고 아우르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일찍이 플라톤이 규정한 이데아의 세계도 존재의 원형적 세계를 철학적으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승조의 예술은 이렇듯 존재하는 것들의 외적 현상을 넘어서 그 본질적 속성을 표상하려는 시도의 과정에서 태어난 결과물들이었다.
이승조의 작품이 존재의 원형적 속성을 지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작품에 붙여놓은 제목으로서 핵이라는 용어에서 확인된다. 객관적 사물로서 파이프의 구조가 존재의 원형적 단위로서 핵이라는 물질로 환원되는 사연이 여기에 있다. 작가가 평생 동안 표상하고자 하는 것은 존재의 원형으로서 핵의 구조이자, 그것은 그만의 고유한 시각적 일루전 방식으로 나타내기 위해 많은 조형적 실험을 거듭했다. 이러한 작가의 실험은 25년의 짧지 않은 세월동안 꾸준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은 비평가들에 의해 몇 개의 마디로 정리되었다.

II. 오광수는 이승조의 작품에 나타나는 변화과정을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1기: 1964-1967, 2기: 1968-1970년대 중반, 3기: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 4기: 80년대 중반 이후의 구분이 그것이다.
우선 1기(1964-1967)는 추상표현주의에서 기하학적 추상으로 변화하는 시기로서 이승조가 ‘작가로서 데뷔한 <오리진>의 창립전’ 이후부터 보다 분명한 자신의 방법을 내보이기 시작한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 사이의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때 오리진의 멤버들은 ‘기하학적 추상으로 통일된 분위기’를 갖추었는데 이 그룹에서도 이승조는 전통적 기하학 추상이 추구하던 구성적이고 평면적 구조에서 벗어나 옵티컬한 성향을 강하게 띠면서 자신의 고유한 어법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2기(1968-1970년대 중반)는 이승조가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을 전개하는 시기로 요약된다.(도1) 이른바 ‘파이프라는 분명한 시각적 일루전에 도달’하면서 ‘원통형에 의한 구성적 변주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시기다.(도2) 오광수는 이 시기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파이프로서의 금속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게 하는 방법으로 일정 크기로 토막을 낸 원통형들을 겹쳐 쌓기도 하고, 일정한 질서로 나열하기도 하는 등 대단히 차가우면서도 탄탄한 구성적 밀도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절 그는 국전에도 출품하여 두 차례의 문공부장관상(1968, 1970)과 두 차례의 특선(1969, 1971)을 차지하였고 추천작가의 반열에도 오르게 된다.
3기(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는 파이프라는 일루전이 약화되고 “띠의 반복에 의한 균질성”을 드러내는 화면으로 변화하는 시기다.(도3) 이른바 금속성 질감을 벗어내고 화면의 평면구조에 관심을 보이면서 1970년대 후반에 전개되던 단색평면주의에 동참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도4) 그러나 그의 평면적 구조에 대한 관심은 김복영이 언급한 바와 같이 “지지체로서의 평면을 거부하고 평면과 모티브가 일체화된 시각적이며 개념적인 평면”이라는 차원에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평면구조에서 시각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그의 추상은 그를 여전히 독보적인 작가의 위상을 견지케 해 주었다.
4기(80년대 중반 이후)는 이승조가 시도해 왔던 그간의 방법론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이는 시기로서 보다 자유스러운 창작 태도를 지닌 채 자신의 세계를 풍미했던 때로 보인다.(도5) 이일이 지적했듯 이 시기의 작품은 ‘입체적 공간구성과 단일적 색면구성의 변증법적 종합’의 양상을 띠며 보다 복잡하고 심층적인 차원의 일루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광수는 이 시기의 작품을 일괄하면서 “일체의 감정이 제거된 차가운 논리성이 엮어 나가는 탄력은 팽팽하게 조여진 기계구조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고 적고 있다.



III. 파이프로 보이는 형상을 그리면서 파이프가 아닌 것을 말하려는 이승조의 작업은 르네 마그리트의 자그만 파이프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화면의 중앙에 파이프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놓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적어놓은 마그리트는 단순히 일루전으로서의 회화를 재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기호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조형적 기호로서 파이프(그림)는 언어적 기호(문장)와 대치되면서 제삼의 영역으로 보는이의 시지각을 안내하게 되었다. 이 때 파이프는 하나의 기호적 일루전이 되었고 마그리트 이후 일루전은 객관적 대상의 외관을 넘어 순수 추상적 형상으로 발전되면서 미술개념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이승조의 파이프와 마그리트의 파이프는 각각 형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일루전을 문제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선상에 있다. 이승조의 작업은 여전히 파이프라는 구체적 대상을 떠오르게 한다. 담배 파이프가 아니라 공업용 파이프고 해도 그것이 실재 존재하는 사물을 떠올리는 경험적 일루전의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루전 즉 환영이란 보는 이가 눈앞에 제시된 어떤 대상을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어떤 대상과 연결시키는 일이며 그것은 일종의 착시와 같은 시각현상을 뜻한다.
이승조의 작업을 대할 때 나타나는 시각적인 착각현상은 그의 작품이 그저 단순히 기하학적 추상의 차원을 넘어 옵아트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오광수가 강조한 것처럼 그의 작업은 단순히 기하학적 추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시각적인 착시현상에 의한 일루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조의 작품이 한국 현대미술사의 사료로 편재된다면 강조해야할 부분이 바로 이 ‘시각적 추상’의 측면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이승조의 작업에 나타나는 형식논리는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파이프와 순수한 시각적 일루전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각적 추상이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그의 작업이 단순히 형식주의로 귀결되는 모더니즘의 형식논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것이 의미를 따져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부언하자면 선과 면 그리고 색채로 짜여진 평면적 구조에 관심을 두면서 일루전을 형식상의 문제로 귀결시키고 그 자체를 평면회화의 본질적 요소로 내세웠던 색면주의 추상회화나 미니멀 아트와는 다른 어떤 것이 이승조의 작업에서 담겨있다는 것이다.



IV. 이승조의 작품해석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은 바로 제목에서 발견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핵>이라는 제목을 일관되게 붙였다. 핵은 사물이나 현상의 ‘중심’ 또는 ‘근간’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생명의 유전자를 저장하는 창고이자 증식을 위한 씨앗으로서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상의 본질과 본성에 대한 탐구는 모더니스트들이 다다르고자 했던 예술의 목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형식주의의 조형실험의 결과로 이르게된 ‘평면성’의 개념과는 달리 이승조의 핵은 존재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일이 지적하듯 ‘1968년을 시발점으로 한 몇 년 간의 작업은 동일한 패턴의 기하학 형태를 사용하면서도 평면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차원적인 공간 구성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는 이승조가 만들어내는 핵의 일루전은 다차원적 공간으로 확산되는 기호학적 의미를 품고 있음을 대변한다. 확산의 미학은 이승조의 작품에 스며있는 의미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승조의 작품은 결국 핵의 기호적 해석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일루전으로 표상된 ‘핵의 도상’들은 시대가 바뀐 오늘날 우리에게 또 다른 가치를 제공한다. 그것은 비단 기하학, 금속성, 색띠, 직선, 원통, 반복, 배열, 조직 등의 개념 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과 현상을 나타내는 확산, 증식, 울림, 공명, 짜임 등의 어휘로 다루어질 수 있는 세계다. 그것은 파이프 오르간의 음율 처럼 장중하고 견고하며 세밀한 금속성의 감흥을 지닌 것이고 절대와 완벽을 지향하는 인간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승조의 작품은 핵의 본성이 그런 것처럼 시대를 담은 의미소로서 끝없는 증식을 기다리고 있다.


도1 이승조, , 캔버스에 유채, 130x130cm 1968
도2 이승조 , 캔버스에 유채, 130x130cm 1969
도3 이승조 , 캔버스에 유채, 145x145cm 1974
도4 이승조 , 캔버스에 유채, 130x130cm 1975
도5 이승조 , 캔버스에 유채, 162x162cm 1985


이승조는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오산고등학교를 거쳐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오리진 그룹을 창립하면서 작가로 데뷔한 이래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한편 당시의 반국전 작가들과는 달리 1968년부터 1971년까지 국전에도 출품하여 연속 4회의 수상경력을 취하면서 추천작가로 선정되었고 국전 내부의 새로운 기류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1977년부터 중앙대학교에 강사로 활동했고 1981년에서 1988년 까지 조교수로 재임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의 파이프 그림은 전후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았고 1990년 4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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