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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태평양의 눈>으로 생장하는 미술관

김영호

제주도립미술관 개관전 서문

고도 100km의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제주도 이미지는 거대한 야수의 눈처럼 보인다. 검푸른 대양위에 떠있는 섬의 눈이다. 제주도가 하나의 눈이라면 그것은 지형학적으로 태평양의 눈이 된다. 그런데 신체의 부분으로서 눈이라는 기관은 신비롭고도 흥미로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안과 밖을 함께 아우르는 이중적 구조다. 눈이 밖으로 열려 있을 때 자연의 외관이 투영되며, 안으로 향해 있을 때 영혼이 비추어준다. 이렇게 눈은 자연과 영혼을 인식하는 접점이며 안과 밖을 연결해 소통시키는 문화 생산의 통로가 된다.

한반도 남부에 자리 잡아 세계로 열려있는 제주도는 대양의 눈이다. 그것은 <환태평양의 눈(Eye of the Pacific Rim)>이며, 신생 제주도립미술관 개관전시의 타이틀로 채택되었다. 섬의 눈을 외부로 열어 아시아와 세계를 보고, 안으로는 대양의 숨을 호흡하며 자연과 소통하는 매체로서 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에 주어진 문화발전소로서의 역할은 눈의 개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주도가 환태평양의 눈이라면 제주도립미술관은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눈동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통의 메커니즘을 통해 자연과 생명과 역사의 실체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 개관전 <환태평양의 눈>은 모두 4개의 묶음으로 구성되었다. 국제전인 <숨비소리>, 특별전인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과 <세계어린이미술제>, 그리고 기념관 전시인 <바다를 닮은 화가, 장리석>이 그것이다.

<숨비소리>는 제주가 지닌 풍부한 자연 요소이자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바람 ․ 물 ․ 빛 을 현대미술의 개념들과 조우시켜 이를 형상화 한 작품들로 꾸며진다. 숨비소리란 제주방언으로서 ‘해녀들이 물질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수면 밖으로 나오며 ‘호오이’하고 내뿜는 휘파람 소리‘를 말한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드는 생명의 노래다. 나아가 그것은 노동의 현장에서 생의 무게를 정화하는 삶의 카타르시스이다. 숨비소리의 의미는 대자연과 소통하는 눈의 의미와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개념으로 다가온다. 메인전시가 되는 <숨비소리>에는 바람의 예술가 테오 얀센,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 죽음의 본성을 찾는 빌 비올라 등 36 명의 작가가 소개된다.




특별전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은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제주미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향후 제주미술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제주미술의 기원은 섬이 지닌 독특한 문화적 산물로서 ‘18,000의 신’들과 ‘절 오백 당 오백’의 신앙과 무속에 근거한 석상과 그림 등의 유물들로부터 비롯된다. 조선이후의 제주미술문화 형성에는 유배지로 입도한 인물들이 나름의 역할을 했고, 불운의 일제하에서는 일본으로 유학한 우여곡절의 제주미술인들이 있었다. 한편 한국전쟁 기간동안에 피난 내려온 육지작가들 역시 제주미술문화 형성에 기여했다. 136명의 작가가 출품하는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은 이렇듯 제주의 근현대미술사의 정립을 위해 마련한 첫 단추가 되는 셈이다.

한편, 차세대의 주역이 될 지구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세계어린이환경미술제>는 섬 ․ 생태 ․ 환경 등을 화두로 삼아 개최하는 문화적 소통과 축제의 장이며, 아시아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25개국에서 보내온 450여점의 작품으로 채워지게 된다. 참가 학생은 1,000여명에 이르는데 특히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의 공동작업과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의뢰 제작된 영상물들이 선보인다. 또한 <바다를 닮은 화가, 장리석>은 제주도에 작품 110점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장리석 기념관이 여는 첫 전시이며, 제주 해녀와 서민들의 건강한 삶과 해학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기했듯이 제주도가 <환태평양의 눈>라면 제주도립미술관은 그 눈동자가 된다. 섬의 눈동자로서 미술문화의 생산과 소통을 위한 발전소가 될 제주도립미술관이 해야 할 일은 방향이 정해져 있다. ‘국제자유도시’이자 ‘평화의 섬’ 그리고 ‘특별자치도’라는 정치사회학적 특성 외에도 화산섬이 낳은 오름과 같은 자연과 생태와 신화와 민속과 방언에 이르는 문화적 자산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공항에서 한라산으로 향하는 15-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일명 ‘도깨비 도로’라 불리는 ‘신비의 도로’와 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배경으로 한라산과 수목이 그림처럼 펼쳐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지 38,700m²에 건축 연면적 7,080m²의 단아한 콘크리트 구조로서, 미술관 전면부를 감싸고 있는 수면공간은 반사연못의 기능을 하고 있어 미술관이 마치 물위에 떠있는 형국을 보인다. 미술관이 자연 친화적으로 불리는 것은 이렇듯 제주도가 지닌 천혜의 요소로서 물과 빛과 바람을 미술관 건축을 위한 기본 컨셉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기본골격은 입방체 구조로 짜여 있으나 2층으로 고도를 제한해 주변에 위협감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공간으로 비추어 진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정원을 앞 뒤 공간으로 확보하고 있는 미술관의 내외부 공간을 어떤 작품으로 채우고 가꾸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이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들이 찾는 미술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미술관 주변에 시설물과 연계하는 벨트라인을 구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미술관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왼쪽의 부지는 시립공동묘지이며 오른쪽에는 러브랜드가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죽음과 탄생의 공간인 특수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자고로 미술문화란 분묘와 부장품에서 시작되었고 성(性)이 예술생산에 영감을 제공하는 하나의 창조적 원천이라 생각한다면 제주도립미술관은 삶의 예술을 숙고하기 위한 더없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환태평양의 눈’을 자처하면서 태어난 제주도립미술관이 시대와 환경을 비추는 문화발전소로 생장하기 위해 그 눈동자에 번뜩이는 안광을 찍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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