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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인 / 풀꽃의 상징 언어

김영호

오랜만에 화백을 찾았다. 남한강 자락 강하면 인적 드문 곳에 자리 잡은 100여평의 화사(畵舍)는 완공된 지 14년 세월이 지나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며 안착되어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다. 실내로 들어서면 외부가 훤히 내다보인다. 거실의 대형 유리창 너머 낮게 펼쳐진 정원 너머 텃밭에는 온갖 화초들과 야채 들이 자라고 있다. 화사를 배경으로 겹겹이 서있는 장대한 뒷산은 화백의 소유가 아니나 그 경관을 전용으로 즐기니 주인이 따로 없다.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소식을 전해주는 앞마당 건너 실개천 또한 그러하다.

이곳은 박동인 화백의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다. 그림의 소재인 각종 화초들이 사철 때맞추어 자라는 자료실이자 그 미물들의 존재를 통해 자연의 비밀을 체험하고 표상하는 연구실이다. 작품이 빽빽이 채워진 작업실과 야외 목공실이며 그 이층에는 조그만 전시실 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창작의 산실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듯하다. 이곳에서 화백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화사는 자연과 접하는 공간이기를 바라며 지어졌지만 이미 이곳이 자연이 되어 있었다. 그 속을 살아가는 화백의 이마를 덮은 백발도 칼칼한 들풀처럼 자연스럽다.




돌이켜 보면 박동인 화백은 일찍이 그림을 시작한 이후 자연풍경이라는 일관된 소재 속에서도 새로운 조형실험을 지속하는 삶을 살았다. 1963-1970년 서라벌예술대학에 재학하면서 구상전과 목우회를 통해 화가로서 등단할 당시 그는 국내 화단에 실험되던 반추상적 어법으로 화조(花鳥) 등의 자연물을 표상한 원(園) 시리즈에 몰두해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자연풍경에 철로와 신호기를 배치한 작품으로 작가의식이 개안되면서 상징적 어법을 향한 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야생 들판 위로 펼쳐진 먹구름과 그 사이 공간에 배치된 철로, 잡초에 감싸인 신호기, 철로 위를 나는 신문지와 뒹구는 깡통이 극중 인물처럼 배치된 그의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당대 사회의 단면을 발언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그의 실험성에 대해 1976년 ‘새로운 형상성’을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새로 단장한 ‘한국미술대상전’은 특별상으로 화답했다. 대상의 충실한 묘사에 근거하면서도 초현실적인 화풍을 보여주었던 철로 시리즈는 이후 세대에 영향을 끼쳐 한국화단의 극사실 회화를 유행시키는데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화백은 ‘미디엄 효과를 통한 자연의 해석’에 몰입하게 된다. 그것은 캔버스 천과 나이프와 붓의 도구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건조한 풀잎이나 부드러운 꽃의 이미지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갈색 모노톤을 기조로 한 들풀의 작가로서 박동인 화백의 명성이 화단에 재차 부각되었고, 그의 밀도 있는 조형능력과 치밀한 묘사력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로 양분되어 있던 한국화단에 새로운 경향의 형상미술의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건조한 풀잎을 표피적으로 묘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연의 생명성을 표상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화백에 있어 들풀과 꽃들은 조형적 실험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관조와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의 외관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의 본성에 대한 경외감에 관심을 두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백에 있어 작품관의 변화는 세계관의 변화에 따른 귀결이었으며 자연 속에 작업장을 마련하면서 갖게 된 자연스런 변화이기도 했다. 신비로운 자연의 생명성에 대한 성찰은 화백의 작품에 화려한 색채와 음율을 부가했으며 캔버스를 오색찬란한 빛으로 변모시켰다.




이번 개인전에는 2000년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이 소개된다. 대학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전시회임에도 불구하고 미발표 신작들로 채워져 있다. 출품된 작품의 경향을 기법상으로 크게 분류하자면 회화와 드로잉 그리고 목조로 구분된다. 화백은 이번 처음으로 선보이는 목조작업에 특별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회화에 기반을 둔 입체작품’으로서 조각의 차원이 아닌 그리기의 행위를 부조형식으로 확대시킨 작품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우선 회화작품은 들풀과 들꽃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묘사된 것 이상의 형상으로 처리된 저간의 형식을 따르는 것들이다. 때로 장식성이 두드러져 보이는 신작들은 꽃의 이미지를 변용함으로서 자연이 연출해 내는 ‘생명의 절정과 환희 그리고 그 축제의 신비와 조우’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의인화된 꽃의 개체적 상징을 ‘꽃의 영(靈)’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자연의 비밀을 담은 미물에 대한 예찬의 의식이며, 생명을 수태하고 성장시키는 대자연에 대한 예찬의 차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화백의 꽃 그림은 고유한 형식논리를 지니고 있다. 캔버스 표면에 석분(石粉)을 섞은 안료를 올려 촉각적 질감의 강도를 조절하고 그 위에 유성 콘테와 아크릴 물감 그리고 먹을 적절히 운용함으로서 장식적이면서도 회화성이 강한 독자적 느낌을 만들어 낸다. 한편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화가들처럼 최근 그의 화면 형식은 전면성을 띠고 있다. 이전의 작품에 등장하던 ‘대칭형의 화면구도’는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그 자리를 중심과 주변이 없는 균일한 화면 구성으로 채워놓고 있다.

또한 눈여겨 볼 만 한 것은 꽃의 다양한 이미지에 대한 관찰과 표현의 방식이다. 화백이 그리는 것은 야생 꽃과 풀들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도 계절과 시간이 있다. 그는 절기(節氣)에 맞추어 각각의 환경을 살아가는 미물의 표정을 담아낸다. 화백이 그린 꽃 이미지들은 한결같아 보이나 캔버스마다 계절에 대한 작가의 향취가 다르게 녹아 있다.

화백의 표현방식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색을 제거한 꽃의 형상이다. 드로잉 작업에서 이러한 기법은 한층 명확하게 표현되는데, 화면에 그려진 꽃을 먹색으로 채우거나 백색으로 남기는 대신 그 주변의 색을 강화시킨다. 마치 꽃에서 빠져나온 화려한 색은 마치 연회장의 조명처럼 주변의 공간을 화려하게 물들이며 장식한다. 화백이 그리는 꽃의 향연은 이렇게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색의 배치를 통해 독자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한편 화백의 드로잉 작업을 보면 화면에 올려진 선은 표피 속에 스며드는 듯한 깊이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콘테로 선을 그린 후 그것에 압력을 가해 화면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서 상감기법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번 처음으로 선보이는 화백의 목조 작업은 캔버스 공간의 외적 확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꽃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논리를 지니고 있다. 나무판 위에 조각된 꽃의 이미지가 주는 볼륨감은 실재 꽃의 입체적 이미지와 연계되는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화백으로 하여금 목각에 전념하도록 만든 보다 중요한 요인은 ‘손의 예술가’로서 화면을 대하는 화가의 태도, 즉 붓과 나이프로 칠하고 긋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예술가로서의 자기 성취감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무를 선택하고 깎아내고 사포질하고 물감을 덧칠하는 과정에서 체험하는 재료적 물성과의 만남은 조각을 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좀처럼 이해되기 힘든 대목일 것이다. 손의 예술은 힘든 노동을 동반한다. 남들이 정년을 마치고 그간의 기법과 예술적 성과를 회고하며 안주하려 할 때, 화백이 이 힘든 육체적 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그에게 예술을 위한 실험의 열정이 식지 않고 맥박 뛰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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