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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희 / 내 안의 별

김영호

우리는 별을 품고 살아간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은 환상의 별이다. 그 별은 검은 비로드 커튼에 박힌 보석처럼 빛을 내며 육체의 방에 머무는 영혼을 밝혀준다. 때로 별빛은 구석진 욕망과 본능을 자극하는 생명현상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내 안의 별을 느끼는 순간, 그것은 영혼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며 환희와 노여움과 사랑과 즐거움의 감정이 숨쉬고 있음을 알게 되는 때일 것이다. 그리고 별이 내게로 다가와 의미가 될 때 그것은 예술의 길로 통하는 은밀한 문이 열리는 순간이 된다.

예술가는 별의 이미지를 펼쳐 보인다. 내면에 품은 환상의 별을 토해내는 것이다. 세월 속에 잉태하고 키워낸 생명과 삶의 메시지들이 별이라는 기호를 통해 작품으로 발현된다.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조각적 형식을 빌려 남다른 상념의 세계를 구현한다. 예술가들이 쏟아내는 별 이야기는 다양하다. 천공의 별자리에 나오는 동물이 되기도 하고 신화 속 인물의 이미지로 나타나거나 동서로 빗겨 흐르는 은하수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아니면 색면 추상의 순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할 것이다.




작가 조성희는 오래전부터 별 이야기를 중심 화두로 삼아 작품을 제작해 왔다. 별과 작가의 인연은 숙명적인 것이었을까. 그의 이름이 별 성(星)자와 빛날 희(熙)자로 되어있는 것은 별과 연관된 환상적 자의식을 갖게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일찍이 조성희의 작업을 눈여겨 본 평론가 이경성 선생은 그를 “원래 초현실계통의 내재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화가”로 규정하고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마음껏 실현해 왔다고 평하고 있다. 조성희에 있어 별은 환상적 꿈을 실현하는 기호였다.

1980년 서울의 미국문화원에서 개최한 초대전에서 조성희는 별의 기호를 우주와 천체의 질서감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드리핑된 물감의 바탕위에 기하학적 도상이 다양한 형태로 배치되어 광대한 우주공간을 지배하는 대자연의 질서감을 나타낸 것이었다. 평론가 이일 선생은 전시 서문을 통해 조성희의 작품세계를 ‘도식적인 형태 속에 동화된 우주를 꿈꾸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출품작에 붙인 제목이 이나 그리고 등으로 되어 있는 점을 보면 조성희가 꿈꾸는 우주관은 존재론적인 뉘앙스를 동시에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성희는 자신의 우주관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새로운 조형세계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1988년 서울에서 가진 귀국전에 즈음해 그의 작품 형식은 평면을 넘어 3차원의 입체로 확대되고 있다. 이경성 선생은 전시서문을 통해 미국에서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얻은 조형감각은 명쾌한 표정과 독특한 기법에 의해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하고 있다. 가령 주제의 큰 면을 까맣게 처리하고 그 주변을 분할된 세부적인 방법으로 대치시키는 이른 바 대위법을 사용한다든가, 주제를 궤변이나 다변으로 처리한 것이 아니고 커다란 목소리로 단순명쾌하게 처리하는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별의 주변으로 펼쳐진 광휘의 빛을 통해 별의 환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조형 기법은 이후에도 조성희의 작업에 계속해 유지되고 있다.

평론가 이구열 선생 역시 조성희의 작업에 대해 일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1994년 로이드 신 갤러리 개인전 서문에서 그는 “아주 특이한 자기몰입과 놀라운 창조적 상상력을 지닌 예민한 감성의 여성미술가”로 칭송하였다. 사실 조성희가 표상한 별의 이미지는 특정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회화, 판화, 조각, 도예 등을 통한 자유롭고 독특한 형식의 조형방식으로 다양한 의미를 보여주었다. 이구열 선생에 따르면 작가 특유의 내밀한 환상적 성품은 “짧은 선과 점의 장식적 전개”로 실현되었고 자연적 서정성으로부터 순수한 추상 형태에 이르면서 자기확신을 나타내었다.

이번 서울의 조선화랑 개인전에 즈음해 조성희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평창동 작업실의 두개 층 전체는 발 딛을 틈 없이 물감박스와 캔버스와 작업대로 채워져 있었다. 벽마다 몇 겹으로 세워진 100호가 넘는 대작들과 목재소 판목처럼 무더기로 쌓여 있는 소품들은 그 동안 작가가 작품제작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닥에 나뒹구는 물감의 파편들과 겹겹으로 쌓인 드리핑 흔적들로 작업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처럼 보인다. 나는 근자에 들어 이렇게 치열한 노동의 현장을 본 적이 없다.

작가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하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별이에요. 빛나는 별(My name is twinkling Star)'. 나는 그 별의 정체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지나온 그의 작품과 자료들을 펼쳐 보며 그 속에 담긴 사연들이 답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시도하고 있는 환상적인 별 이야기를 차츰 헤아리게 되었다.

조성희는 가슴속에 품은 별을 캔버스의 표면에 뿌린다. 캔버스에 분사되어 박힌 물감의 분말들은 어느덧 광대한 천궁에 흩어진 별무리가 된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표면은 분화구 같은 언덕이 솟아오르고 아무도 밟아본 적이 없는 대지의 일루전으로 바뀌어 간다. 이러한 마티에르는 분사된 유성 물감이 마르기 전에 그 위를 다시 후려치듯 뿌려댄 물방울 효과에 의한 것이다. 결과된 캔버스의 표면은 마치 한지처럼 풍부한 마티에르를 품게 되고 물과 기름이 반응하며 생겨난 기포 자국들은 보는 이를 환상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이렇게 조성된 캔버스의 표면에 작가는 의도적인 형태로 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두꺼운 종이로 오려붙인 별이다. 그것은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아와 같은 별자리가 되기도 하지만 구태여 설명적일 필요는 없다. 고부조의 콜라주는 조성희의 작업에 중요한 조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빨강과 파랑 혹은 백색으로 얹혀진 별의 이미지는 때로는 열려 있어 내부가 드러나기도 한다. 별의 형태와 그것의 자리매김은 작가의 조형능력을 보여주는 요소인 것이다.

조성희의 캔버스에는 은하수가 흐른다. 오일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는 매질이 드리핑 기법으로 분사되어 내려앉을 때 화면은 맑고 투명한 빛의 효과를 나타낸다. 캔버스에 얹어진 크고 작은 점들은 무한한 공간에 흐르는 은하수로 변신한다. 그 위에 작가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별의 이미지를 순수조형의 형상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은 별 하나에 나 하나를 빗대어 헤는 환상의 천궁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성희의 근작에는 자신이 추구해 온 세계로의 동질성과 일체성이 여전히 묻어있다. 그러나 별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이전과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초현실적 환상에서 순수 추상의 형식으로 모습을 갖추었던 별의 이미지가 그의 내면으로 다시 돌아와 둥지를 튼 것일까. 우주에 자신의 이야기를 실어 보내었던 작가가 이제 스스로가 별이기를 바라는 사연은 무엇일까. 자신과 별이 일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는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진정성의 문제와 연결 되는 대목으로서 향후 작가의 작품을 해석하는 하나의 근간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20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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