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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조각세계 - 자연과 생명의 시메트리

김영호

문신의 조각세계 - 자연과 생명의 시메트리


I.
문신이 국제 조각계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70년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은 해양도시 포르 발카레스(Port Barcares)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 초대되면서 였다. 모래밭에 세워진 미술관이라는 의미의 <사장미술관(Musee des sables)>을 주제로 내건 조각심포지엄에 문신은 높이 13미터의 거대한 목재 조각 <태양의 인간(Man of the Sun)>을 현지 제작해 설치했는데, 이는 반구형 덩어리가 12단계로 반복되어 오르면서 탑모양을 이루는 야외 조형물이었다. 이 데뷔작은 당시 47세의 나이를 지닌 문신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화가로서 노정을 시작한 그가 이제 조각가로 예술의 외연을 넓히는 공식적 계기였으며, 향후 조각가로서의 업을 세우기 위한 자기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국내 조각계의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로부터 전해온 문신의 낭보는 아직도 전시실 공간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국내 현대조각의 범주를 환경미술 또는 공공미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데 일조했다.

발카레스에서 일군 문신조각의 성과는 18년이 흐른 후 서울에서 절정에 이른다. <태양의 인간>을 통해 보여준 대형조각의 서곡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제작된 높이 25미터의 작품 <올림픽 1988>로 이어지면서 당대 최고의 규모와 기념비적 위용을 자랑하게 된 것이다. 38개의 반구형 볼륨이 반복적 패턴으로 이어지는 <올림픽 1988>은 외형상 이전의 작업과 동일한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당시 파급되기 시작한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선택하면서 환상적인 다이나미즘의 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세계현대미술제 운영위원의 자격으로 입국해 올림픽조각공원의 조성에 기여했던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e Restany)는 이 작품이 올림픽공원내의 조각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그 이유를 그 작품이 지닌 ‘현대성’에서 찾았다. 동시대의 서정과 정신을 보여주는 조형물이라는 진단이다. 나아가 그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이 뿜어내는 강렬한 은색의 리듬은 ‘우주와 생명의 음율’을 전한다고 칭송했다.

지구촌의 양쪽 발카레스와 서울에 세워진 두 작품은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송신탑이 되어 다양한 의미의 신호를 교환하고 있다. 해변과 녹지를 지키며 자신이 품고 있는 수직상승의 힘과 절대에 대한 경외감의 메시지를 양국의 대중들에게 끝없이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평론가 작크 도판느(Jacques Dopagne)는 문신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경외감을 ‘샤머니즘의 범신론적 영감의 세계’로부터 연유된 것이라 보고, 나아가 토템조각의 범주로 그의 조각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관점을 인정한다면 목재로 된 <태양의 인간>은 전래적 조각의 형식을 취하며 자연 속에 세워진 원시토템의 현대적 발현이며, <올림픽 1988>은 철재로 변주되어 도심의 풍경을 끌어안은 현대토템의 예술적 성취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토템조각의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유기적 생명현상의 발현을 시각화 하는 여러 장치들이 들어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태양의 인간>은 직경 1미터 20센티의 반구체들이 단면을 서로 마주하며 연결된 파상형의 반복적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마치 세포줄기가 쌍으로 분열하여 끝없이 증식되는 모습을 연상케 하고 영속적으로 생성되고 이어지는 생명의 신비를 암시한다. 받침부 상단과 상층 마지막 덩어리는 구체를 사분의 삼의 비율로 깎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조형적 완결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연속된 반구체의 표면에는 유려한 선들이 돌출되어 있어 마치 팔뚝에 불거져 오른 핏줄을 연상케 하고 작품에 생명의 이미지를 심어내는데 기여한다.

그것은 조각의 육질에 생명의 맥을 뛰게 하는 혈관이자 작품이 설치된 공간의 주변으로 존재감을 확대시키는 에너지의 표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몽촌토성의 영내에 세워진 <올림픽 1988>의 구조 역시 장엄한 규모와 더불어 스테인리스 스틸이 반사하는 태양빛에 의해 그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작품의 주변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추면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이미지로 흡입하고 있다. 피에르 레스타니가 이 작품 앞에서 느꼈던 ‘우주와 생명의 음율’은 간결한 추상의 형태와 유기적 볼륨 사이로 흐르는 빛과 바람의 유희에서 발견한 미적 감흥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II.
문신이 조각을 시작한 것은 잘 알려진 바처럼 도불 후의 일이다. 파리에 처음 도착하던 1961년부터 문신은 생업을 위해 파리 근교에 위치한 라브넬 고성의 보수와 개조작업을 하면서 건축과 조각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 경험은 그에게 순수 형태와 볼륨에 대한 각성과 실험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회고한다. 프랑스에서 일시 귀국해 활동하던 1995년과 1967년 사이에 문신은 폴리에스테르 재질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빛과 건축적 공간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라브넬 고성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67년 프랑스로 재차 건너가 정착하면서 문신은 조각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순수 조형의 내재율을 넘어 점차 자연과 생명의 원형적 구조에 대한 연구로 방향을 잡게 된다. 1970년에 제작된 <태양의 인간>은 이 시기의 결정물이었다. 이후 문신의 조각세계에는 유년시절의 자연관찰에서 연유한 유기적 형상들이 등장하며 개미나 해조 등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그 안에 내재된 추상적 시메트리 구조를 결합한 자신만의 어법을 세우게 된다.

1980년 문신은 20여년의 프랑스 생활을 청산하고 영구 귀국했다. 그리고 생명의 원형적 구조로서 시메트리에 기반한 작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1984년 제작된 <화(Unity)> 시리즈와 1985년에 시작된 <우주를 향하여> 시리즈는 이 시기에 생산된 문신의 대표작 들이다. 귀국 후 새롭게 도입한 재료로서 스테인리스 스틸과 주제로서 발견한 시메트리 개념의 융합은 문신으로 하여금 조각세계의 전성기를 누리게 했다.

1984년에 제작된 <화(Unity) I>는 문신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이 작품의 형태는 마주보는 한 쌍의 비둘기 혹은 소나무 씨앗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정작 작가의 의도는 구체적 대상을 묘사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문신은 이에 대해 “단지 선과 선들로 연결된 원, 타원, 또는 반원만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의 성과는 동물 혹은 식물의 외관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순수조형에 의해 보다 본질적인 영역에 다다르려는 작가의 의지가 제대로 표현되었다는데 있다. 문신이 작품을 통해 탐구하는 본질적 영역이란 그가 탐구한 생명현상의 근원적 원리로서 시메트리의 세계였다.

그는 생명현상의 영역으로 확대된 시메트리의 개념을 <화(Unity)>라는 제명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즉 작품을 구현하기 위한 형식으로서 통일, 조화, 화합의 구조와 나아가 단일, 일관, 종합의 원리로 시메트리의 세계를 표상코자 한 것이다. 따라서 문신의 시메트리는 대칭의 형식 속에서 변화와 균형 그리고 통일의 원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며, 그 결과로 탄생된 작품은 이 모두를 포함한 개체로서 단일의 존재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논리를 인간 세상에 접목시키면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개체와 집단의 융합, 나아가 음과 양의 합일을 구가하는 동양사상의 근간을 발견하게 된다. 문신의 작품이 예술적 성과를 넘어 철학적 존오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이에 연유한 것이며 그 철학적 심오함이 시메트리라는 미학 형식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시각을 달리하면 <화(Unity) I>의 특성은 재료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반사효과는 시메트리 구조와 더불어 문신을 이 경향의 거장으로 이끈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의 작품 <화(Unity) I>를 들여다 보자. 조각의 중심에 자리 잡은 두개의 구체 덩어리에 비친 이미지는 마치 물고기 눈에 비친 세상처럼 광각으로 펼쳐져 있다. 이는 날개의 표면에 비친 이미지와 차별화 되면서 주변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안내해 준다.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이처럼 자연을 다양한 이미지로 비추어주는 작품 앞에서 흥미로운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적 감흥은 단순한 거울보기와 그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어느덧 자연과 생명현상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원리로서 시메트리의 구조가 만들어 내는 효과에 모아지기 때문이다. 대칭과 비대칭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차이와 합일의 관계는 보는이들에게 대자연의 법칙성과 그 안에서 진행되는 신비로운 생명의 의미를 제공해 준다.

1988년 문신은 <화(Unity) II>를 제작했다. 이 작업은 작가가 채택해 온 시메트리 조형관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견 이 작품은 외관상 비대칭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거기에는 좌우 균형 그리고 조화로 묘사되는 대칭의 개념이 동시에 담겨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개의 생명 있는 것들은 외관상 대칭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으나 동시에 그 대칭의 구조를 파괴하면서 자신의 개성과 특성을 만들어 나간다. 가령 인간의 얼굴이나 몸 그리고 식물의 새싹은 대칭의 원리를 따르지만 특수한 환경적 조건에 대응하면서 다양한 비대칭의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여기에 진화와 변태를 거듭하는 생명현상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화(Unity) II>는 대자연의 이치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상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과연 문신의 조각은 외관상 좌우대칭의 구조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파괴함으로서 자연의 숨결을 받아드리는 열린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대칭과 비대칭 사이의 관계를 유기적 생명현상으로 보았으며 대부분의 작업에 이러한 오차를 허용하고 적용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화(Unity)>시리즈는 문신조각의 시메트리가 갖는 미학적 해석의 정수를 가장 대담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문신은 이 작품을 통해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시도하는 한편 부드러움과 강인함 그리고 날카로움과 여유의 감동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었다.



III.
대칭과 비대칭의 통합적 원리를 보여주는 문신의 작업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타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중 2006년 독일 바덴바덴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독일의 젊은 작곡가 안드레아스 케어스팅(Andreas Kersting)이 문신에 대한 헌사곡 을 작곡해 바친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문신조각이 지닌 비대칭적 균제미에 특별한 감흥을 얻고 관현악곡을 썼는데 이 과정에서 조각과 음악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공조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문신의 작품에 대한 헌사곡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의 작곡가 보리스 요페(Boris Yoffe) 역시 전시회가 열린 후에 <달의 하나됨과 외로움>이라는 제명으로 헌사곡을 창작했으며, 볼프강 마쉬너(Wolfgang Maschner) 역시 <예술의 시메트리>라는 제명의 헌정곡을 창작했다. 이들 세 작곡가의 작품은 조각과 음악 사이를 잇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공통분모란 다름 아닌 시메트리 구조에서 파생된 미학개념으로서 화(Unity)이며 나아가 화의 단일성이 품고 있는 조화, 일치, 협조, 화합, 절제, 배려의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신에 있어 시메트리의 개념은 단순히 조형적 대칭의 구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학적 의미로 확대된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은 두개 이상의 단위가 상호 작용하며 파생하는 조화와 균형의 관계를 의미하며, 두개 이상의 단위가 단일성을 이루는 통일과 합일의 개념을 아울러 갖고 있기도 하다. 시메트리의 확대된 개념들은 결국 조각 뿐만 아니라 음악 나아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대자연과 생명현상의 이치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범주가 넓어지고 있다. 문신의 조각세계가 지향하는 지고의 가치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라 할 수 있다면 시메트리는 이러한 지고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문신의 고유한 조형형식이 된 것이다.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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