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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환경의 변화에 관한 여섯 화두

김영호


미술환경의 변화에 관한 여섯 화두


I. 들어가기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미술의 경향은 동시대의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개되어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중세미술은 수도원과 교회의 영향아래 진행되었고, 르네상스 미술의 부흥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절대적인 것이었다. 바로크 미술은 궁정이나 귀족이라는 환경의 산물이었고, 대혁명 이후 미술은 국가와 정치적 환경에 종속되어 있었다. 근대미술의 영역에서 자본과 부르주아는 미술가들의 창작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작품 중계상으로 화상들의 등장은 미술 소비활동을 증가시켰다. 다양한 형식의 미술사조가 풍미하던 20세기 전반의 미술은 두 차례의 전쟁을 촉발시켰던 당대 사회의 정황을 배제하고 그 정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1960년대 이후를 풍미했던 후기산업사회와 그 결과로 대두된 대중문화는 팝아트에서 누보레알리즘 그리고 하이퍼리얼리즘 따위의 현대미술운동을 진단하는 배경이 된다. 이렇듯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술환경의 변화는 종교와 궁정 그리고 국가와 자본 따위의 시대적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진행되었다. 미술의 역사가 일반역사와 정치사 그리고 철학사와 사상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술은 시대의 아들이라 한다. 이러한 주장은 미술작품을 통해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조건을 거슬러 추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하며, 물질적 환경뿐만 아니라 시대를 구성하는 정신적 요인들로서 당대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사상을 읽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작품을 해석하는 일은 작품과 동시대의 시대상 사이에 관계를 읽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나아가 미술사란 과거에 벌어지고 종결된 사건의 기록이라는 진술적 가치를 넘어, 시간의 축을 통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당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미래에 어떻게 내려지리라는 것을 예측케 하는 비평적 혜안을 갖게 해 준다. 시각적 상을 통해 환경이 만들어 내는 비가시적 사상을 구현하는 미술에 인생을 걸었던 수많은 미술가들이 불멸의 존경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글은 미술을 둘러싼 환경 즉 미술환경의 변화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아울러 그 변화하는 환경을 수용 또는 대응하면서 펼쳐지는 미술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려는 것도 이 글의 의도다. 새천년 벽두를 살고 있는 오늘날 ‘미술환경’이란 미술활동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시설과 단체 그리고 행사를 포괄하는 용어로 이해될 수 있다. 미술관 같은 문화기반시설, 비엔날레 같은 미술행사, 옥션과 같은 미술시장,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 미술지원을 위한 문화재단, 진흥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 및 기업메세나는 미술활동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 환경이다. 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 따위의 언론, 문화예술진흥법과 같은 법규, 작품을 수집하는 컬랙터, 나아가 미술소통의 주체로서 대중 역시 미술환경의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필자가 평소 관심을 두고 있는 문화기반시설, 미술행사, 미술시장에 대해 언급하고 아울러 지적 환경으로서 미술이념, 글로컬리제이션, 공공미술 등 여섯 개의 화두에 국한해 언급하려 한다.


II. 물리적 환경의 변화

2000년대에 들어선 이래 우리나라 미술환경의 변화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우선 문화기반시설의 확산을 들 수 있다. 문화기반시설이란 미술관, 아트센터, 문화의 집, 창작스튜디오, 조각공원 따위의 문화활동을 위한 하드웨어를 말한다. 이렇게 문화기반시설이 전국에 걸쳐 경쟁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시행과 모더니즘 이후 야기된 미술개념의 내적 변화가 그것이다. 우선 제도적인 차원에서 1990년대 전반에 도입된 지방자치제에 따라 지방이 독립적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고, 주민들이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지역주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사업들이 선거공약으로 제시 되었다. 문화예술의 경쟁시대로 불리는 21세기의 상황과 맞물려 단체장들의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은 다양한 시설의 건립과 문화사업을 저마다 추진하게 되었다. 2010년 상반기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수가 광역자치단체(특별시, 광역시, 도)가 16개, 기초자치단체(시, 군, 구)가 230개인 점을 고려하면 문화기반시설과 문화행사의 경쟁적 확산현상은 당분간 가속화 될 전망이다.

문화기반시설이 확산되는 두 번째의 원인으로서 미술개념의 내적 변화란 이른바 엘리트미술 또는 형식주의 미술로 불리던 모더니즘의 시대가 지나고,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 미술이 실험되면서 나타난 현상을 일컫는다. 미술이 사회적 기능이 중요시되고 미술현상이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 속에서 확장되면서 공공적 성격을 지닌 문화공간이나 시설이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주장한 ‘미술의 사회적 기능’이 널리 통용되면서 이른바 ‘환경미술’로도 불리우는 ‘공공미술’이 지역사회가 추구하는 목적을 구현하는 하나의 예술적 방법으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대중과 예술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시설로서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그리고 문화의 집과 창작스튜디오와 조각공원의 건설이 줄을 잇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동안 팽창하던 민간 주도의 대안공간은 제도권의 대안적 공간에 대한 지원과 대체현상에 흡수되어 그 활동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문화기반시설과 더불어 2000년대 미술환경의 변화는 미술행사의 급증현상에서도 나타난다. 미술행사는 문화활동의 소프트웨어로서 비엔날레와 조각심포지엄 그리고 미술제 따위를 들 수 있는데 국제규모의 행사로 치루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선 최근 우리나라의 비엔날레는 전시되는 작품의 장르에 따라 미술비엔날레, 도자비엔날레, 공예비엔날레, 사진비엔날레, 미디어아트비엔날레, 디자인비엔날레 등으로 대별되며 지역적으로는 서울(미디어)을 비롯해, 광주(미술 및 디자인), 부산(미술), 대구(사진), 인천(여성), 이천광주여주(도자), 청주(공예), 공주(자연미술) 등 주요도시에서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문화기반시설처럼 미술행사가 증식되는 이유 역시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에 따른 현대미술의 지역확산 현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문화활동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미술의 공공적 기능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한편 조각심포지엄은 대개의 경우 조각공원의 조성사업과 연계를 가지며 치루어진다. 기존에 조성된 공원부지에 조각작품을 장식하거나 특정의 야산이나 계곡 따위의 자연공간을 설정해 예술공간으로 꾸미는 사업의 형태가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과천, 아산, 이천, 창원 그리고 가평 등지에서 조각심포지엄이 치루어졌다. <과천국제조각심포지엄>과 <아산국제조각심포지엄>은 각각 올해 3회를 맞고 있으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은 13회를 맞았다. 창원에서 열린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과 <가평조각심포지엄>은 각각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그 중 마산이 낳은 조각가 문신을 기리기 위한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은 미국의 로버트 모리스, 데니스 오펜하임과 일본의 세키네 노부오, 가와마타 타다시 등 현대 환경조각의 대표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데 일조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미술제가 김해, 강진, 인천, 울산, 경기, 경남 등지에서 열려 로컬 컬추어의 증대상황을 실감케 하고 있다.

2000년대 미술환경의 변화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술시장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시장은 자유경쟁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고 개인 각각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데로 선택할 수 있는 지위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개개인의 사익추구가 합해져서 사회전체를 이롭게 하는 불가사이가 있으니 이것을 밝혀낸 사람이 바로 애덤스 스미스다. 그에 따르면 개개인은 열심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미술시장과 관련해 미술품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과정에서 공공의 이익 증대를 발생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 대답을 오늘날 미술시장의 주체들인 화랑과 아트페어 그리고 옥션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앙브와즈 볼라르나 헨리 칸바일러 그리고 미국의 레오 카스텔리 같은 대화상이 활동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후반까지 화상은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통해 홍보하면서 미술의 새 기류와 경향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담당했다.

레오 카스텔 리가 사망한 1999년 이후 독점계약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관리하고 홍보하면서 당대 최고의 작가로 만들어내는 전략은 래리 가고시언, 제이 조플링과 같은 딜러들 역시 미술계의 근본을 움직이는 ‘안목과 배짱과 사업수완’을 지닌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술시장은 화상의 차원을 넘어 옥션과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옥션과 아트페어는 화랑의 폐쇄적 거래 시스템과는 달리 미술시장의 지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컬랙터들의 취향과 대중적 선호도가 경매라인을 통해 도표처럼 분별된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로 대별되는 경매회사의 경쟁은 인상파 이후 작가들의 작품가격을 고공행진으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1980년대 중반에서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되기 전인 1990년 사이에는 미술품 가격이 폭등하고 투자붐을 이루었고 일본의 투자에 의해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 신화가 탄생했다.

2000년을 전후로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현대미술경매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화랑들이 반격을 가하기 위한 연합행사인 아트페어가 전성기를 이루는 것도 이 시기다. 아트페어는 옥션과 함께 미술의 기류를 재단하는 권력이 되었다. 작품의 재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컬렉터뿐만 아니라 미술저널리즘과 대중에 이르기 까지 연동하면서 이슈포인트가 되었다는 사실은 2007년 검찰조사로 이어진 이중섭과 박수근의 위작시비를 둘러싼 사건에서 충분히 증명되었고, 미술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에서 삼성과 같은 거대자금의 운용자가 톱을 차지하는 보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공립 미술관 역시 아트페어와 옥션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게 되는 세태로까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은 작품가격, 유통구조, 대중의 의식에서 경매제도, 전속계약,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이에 대한 할 일이 많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한국 미술계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미술시장의 변화는 주목해야 할 환경이 되었다.

이상에서 보듯 200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의 미술환경은 제도적 변화와 더불어 크게 변하고 있다. 미술을 위한 기반시설과 미술제의 확산은 현대미술문화의 전국 확산을 야기했고 여기에다 전국을 2시간대에 끌어안은 교통시설과 인터넷 미디어에 의한 정보의 공유로 미술문화 역시 전에 없이 전국적으로 교류가 확대되며 평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의 확대 현상은 미술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 장치가 구비되어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한편, 일국의 문화현상을 변화시키는 요인은 물리적 환경이나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비가시적 대상으로서 정신적 현상도 간과될 수 없다.

III. 지적 환경의 변화

2000년대에 들어서 미술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지적요인으로 우선 미술이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담론이 아직도 마감되지 않고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미술사에 근대주의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조차 얻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미술의 원리로서 ‘근대주의’는 시간적 개념으로서 ‘근대’가 근대의 속성으로서 ‘근대성’에 이론적 틀을 형성하며 만들어진 어떤 이념체계이다. 따라서 근대주의와 근대성 그리고 근대는 서로가 다른 개념의 용어이면서도 불가분적 관계를 지닌 개념으로 다루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미술의 경우 근대주의는 근대성에 근거한 근대의 정신적 결실인데 한국에서의 근대라는 시기가 존재하는 한 그 속성과 속성의 체계화는 불가피하게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한국에 근대주의 미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서구의 근대주의 미술의 원리를 염두에 두고 그 원리가 한국미술에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형식주의와 본질탐구, 변증법, 전위론, 순수혈통, 환원주의 따위의 개념에 의해 규정된 서구 모더니즘 미술론에 빗대어 한국의 20세기 미술을 진단할 때 과연 체계로서 근대주의의 설정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불행스럽게도 구미지역의 모더니즘과 한국의 현대미술은 혼용된 채 쓰이고 있다. 가령 한국현대미술의 기원을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어법의 수용되는 1950년대 후반으로 기점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 전위적 추상미술 운동은 구미지역에서 모더니즘의 꽃으로 다루어지는 미술운동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들의 근대가 우리의 현대가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 한국의 미술가들은 국전중심의 구상계열을 극복하고 추상미술이 수용되는 시점을 근대와 현대의 구분점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러한 구분은 세계미술사에 통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글로벌리즘의 시대에서 한국에서의 근대와 근대의 극복으로서 현대는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화두로 남아 있고 이에 대한 연구성과는 변화하는 미술환경에 큰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아메리카 합중국에 흑인 혼혈 대통령이 등장하고 문화적 다양성의 담론을 넘어 융합미학이 주도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은 주체적 미술이념의 정립을 위한 미술환경이 어느 때보다 성숙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 2000년대 들어와서 변화의 기류를 감지할 수 있는 지적 환경이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대치 혹은 융합상황이다. ‘세계통합주의’ 혹은 ‘세계화’라고도 불리우는 글로벌리즘은 사용자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풀이된다. 우선 경제분야에서 사용되는 글로벌리즘은 최근 자본중심적 시각으로 ‘탈규제’와 ‘개방’의 경제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하자는 목표를 지닌 이념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뜻풀이는 1970년대부터 부각하기 시작한 경제적 개념인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 더불어 거대자본을 가진 미국이 지구를 지배하기 위한 이념이라는 해석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글로벌리즘이란 사회 문화일반에 적용되는 개념으로서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지구적인 규모의 상호의존과 교류가 활성화 되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하는 입장이 있다. 즉 정보통신 매체의 혁신으로 국가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망이 이전과 달리 나타나면서 세계화가 촉진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종, 평화, 복지, 환경, 핵위기 등과 연계된 통합이론으로서 다양한 담론을 전지구적으로 확대시킬 근거로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에 대해 ‘지역중심주의’로 번역되는 로컬리즘은 글로벌의 대안이자 또 하나의 전략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최근들어서 이 단어는 보다 유동적인 정체성을 표상하는 신생 용어로서 글로컬리즘으로 강화되고 있다. 글로컬리즘은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합성어로서 지역적인것과 세계적인 것이 서로 직조됨으로서 창출되는 지역화인 동시에 세계화를 의미한다. 미술에 있어 글로컬리즘은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미술이벤트를 통해 실험되고 있는 개념이 되었다. 이는 비엔날레의 전략과 기능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베니스비엔날레나 상파울루비엔날레 휘트니비엔날레의 경우도 가장 지역적인 장소에서 세계를 향해 발언하는 시각적 담론의 장소로 전개되어 왔다.

글로컬리즘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24회 상파울루비엔날레의 경우 근대화과정에서 유입된 다민족의 문화를 통합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브라질의 식인주의(카니발리즘) 전통에 근거한 ‘안트로포파지아’ 개념을 내세웠고 이를 통해 도시의 지정학적 정체성을 부각시킨 전시로 기억된다. 글로컬리즘의 문제는 ‘지역의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국내미술계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대안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지역의 역사적 지정학적 특성을 내세운 문화담론을 만들고 그것이 통섭과 융합의 논리로 승계되는 미술제에 거는 노력으로 실현될 수 있다.

포스트모던의 기치아래 미술환경의 변화는 미술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관심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른바 공공미술(Public Art)로 대별되는 미술현상의 특성은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공공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술의 공공성은 엘리트미술 또는 형식주의 미술로 불리던 모더니즘의 시대가 지나고,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 미술이 실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술현상이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 속에서 확장되면서 공적 공간이나 공공장소에 조형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공미술의 논쟁은 일반인들의 삶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을 내세우며 미술과 대중 그리고 사회의 관계로 논의를 확장시켜 놓았다. 공공미술이란 ‘공공적 장소에 있는 미술’과 ‘일반 공중과 소통하는 미술’의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공공미술의 출현 과정을 보면 1930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경제공황기에 미술 실직자를 위한 직업창출을 목적으로 벌인 공공사업이 기원을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공공사업으로서 공공미술의 개념은 도시건축과 미관에 기여하는 문화정책으로 발전되었고, 이에 따라 건축예산의 일정한 비율을 작품구입에 쓰도록 규정한 ‘퍼센트 법’이 프랑스에서 1951년 미국에서는 1963년에 각각 제정되기에 이른다. 1967년 존 윌렛은 그의 저서 <도시속의 미술>을 통해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를 출발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공공미술에 대한 비평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드디어 새 장르로서 ‘공공미술’이 태어났고 미술과 대중 사이의 소통에 중심을 두는 경향으로 정착되었다. 오늘날 공공미술은 수잔 레이시가 주장한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하여 보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직접 관련된 이슈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시각예술”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미술에 대한 정부차원의 관심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에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에 관한 규정이 권장사항으로 도입되었고 이에 따라 도시 문화환경 개선과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한편 서울시는 1984년 조례를 통해 연면적 1만m²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건축비 1%를 건축물 장식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을 마련했으며 이에 따라 서울 도심에 조형물들이 본격적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이는 1985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즈음해 도시미관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 후 정부차원에서 법령으로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1999년에 이르러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연면적 2만m²까지는 0.7%, 그 이상은 0.5%를 장식물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령은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 제고와 더불어 문화예술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크게 기여했다.

통계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미술장식품 설치 건수는 모두 10,684점이며 금액은 5,461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법령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고 이에 따라 정부는 2009년 개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보칙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2014년 12월 31일까지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의 적절성을 전면적으로 검토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미술환경을 변화시키는 공공미술 정책은 <건축물 미술장식제도> 외에도 <공공미술 지원사업> 분야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2006년 문화관광부는 산하에 공공미술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본격적인 공공미술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탐색을 시도했고 이른바 복권기금을 운용해 문화소외지역에 대한 공공미술품 설치사업을 전개했다.

서울시 역시 공공미술위원회와 도시디자인본부를 출범시키며 도시 전역에 공공미술품을 설치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된다. 최근 공공기관에서 주도하는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사례로서 문화관광부가 15억원의 복권기금을 투입해 추진한 ‘아트인시티 2007’를 들 수 있다. 이 사업은 서울, 인천, 안양, 태백 등지에서 일반공모사업을 통해 시행한 사업으로서 문화소외지역 주민들의 향수권을 신장하고 주민참여에 의한 공동체 의식 함양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같은 해 서울에서도 공공미술위원회를 발족해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이 사업에 따라 덕수궁돌담길에서 인사동입구에 이르는 공공장소에 작품 설치와 전시를 개최했다.

미술의 공공적 기능과 더불어 주목받는 분야가 자연, 생태, 환경 으로 확산되면서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도 공공기관 차원에서 높아지고 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는 2010년 3월 DMZ 생태자원에 대한 관심 증가에 따라 생태보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평화벨트조성방안>을 마련했다. 한편 경기도에서도 경기문화관광공사내에 DMZ 프로젝트 전담부서를 두어 관광과 연계한 사업을 추진토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임진강 수변 경계선 철조망 철거에 따른 폐자재 및 군 경계시설을 재활용하기 위한 사업과 예술공원조성사업 그리고 예술행사 등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도라산역 인근 도라산평화공원과 미군공여지 등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추진이 계획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근대성의 중심적 구조에 의해 소외되었던 주변과 지역 그리고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던 감성과 타자 그리고 소수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던과 글로컬리제이션 그리고 다양한 정부주도 혹은 민간 차원의 공공미술을 둘러싼 미술의 공공성 개념과 더불어 미술환경을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 환경은 가시적인 대상이 아닌 이유로 실체가 명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미술현상을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정신이라는 차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루이 알튀세르의 주장처럼 미술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을 위한 이념을 형성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IV. 나오면서

2000년대에 들어 변화하는 미술환경에 따라 미술인들은 창작과 비평의 영역에서 변화를 요청받고 있다. 예술은 작가의 삶으로부터 온 것이고 작가의 삶은 그가 속해있는 환경으로서 시대와 공간이 주는 영향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역으로 미술이 환경이 되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물질적 환경의 변화와 정신적 환경의 변화 이외에도 우리 앞에 놓인 환경적 요인들이 적지 않다. 작가의 고유한 취향과 정서 그리고 지적 수준과 소명의식에 따라 환경에 대응하는 태도와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그 중 미술계에 만연해 있는 좌와 우의 대결구도를 분쇄하는 일은 당면과제일 것이다. 또한 미술이념의 측면에서 아직도 문화식민지 상황에 놓여있는 비평이론과 미술사 담론들도 극복해야할 과제라 생각된다. 본론에서 언급한 공공미술을 위한 제도의 정비도 시급한 문제다. 도시공간의 미관을 해치는 조형물들을 정비하고 장기적으로 대안을 세우기 위해 현재 입법예고된 바 있는 미술장식품 설치를 기금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과 같은 사안들은 작지만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당면과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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