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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시대의 미학을 향하여

김영호

Toward an esthetic of unity

모더니즘의 가치가 쇠락해진 1980년대 이후 예술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형식실험과 본질탐구에 기초한 엘리트적 사고가 지배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일상과 현실에 근거한 세계관과 그 표상에 가치를 두는 방향으로 범위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예술이 삶이요 삶이 곧 예술이라는 등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창작과 해석의 지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삶의 터로서 환경과 자연 그리고 생명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도시, 기술, 과학, 기후, 재앙 따위의 화두가 부채살처럼 가지를 펼치며 예술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제 예술가들에게는 다양한 삶의 편린과 사상들을 녹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의 위상이 요구되고 있다.

삶의 예술이 확산되는 오늘날 문화의 중심 화두는 융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구리와 납과 주석 따위의 비금속(卑金屬)으로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처럼, 오늘날 다채로운 기술과 사상의 융합은 예술의 위상을 풍요롭게 해 준다. 기실 융합의 원리는 문명사의 원동력이었다. 그리스와 동양의 문화가 서로 만나 헬레니즘이 출현했듯이 융합의 개념은 역사에서 거대한 힘을 과시해 왔다. 인류사는 지역과 지역, 대륙과 대륙사이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교류의 역사였으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지구촌은 경제문제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진단할 수 있다. 21세기를 상징하는 최대의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혼혈 대통령의 출현은 인종 융합의 구조가 아메리카 합중국을 넘어 지구촌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원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화적 화두로 제시한 융합이란 여러 뜻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술 분야의 용어로 쓰인다면 그것은 녹아 합친다는 fusion의 개념보다 결합하다는 unity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개의 면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화합과 균형 그리고 조화의 개념이다. 융합이란 개체적 속성을 상실하고 수동적으로 뒤섞인다는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다. 오히려 개체의 존재를 존중하는 뜻을 동시에 품고 있다. 가령 적색과 녹색은 보색으로서 서로 반대되는 색이지만 융합을 이룰 때 시각적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붉은 장미꽃이 붉어 보이는 이유가 주변의 잎과 줄기가 녹색으로서 상대색의 기운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인 이치와 같다. 적색과 녹색은 각자가 고유의 순도를 유지해야만 융합의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적색과 녹색이 뒤섞이면 매우 탁한 색이 되어 순도와 채도를 동시에 잃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융합은 뒤섞임이 아니라 자기정체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화합과 균형과 조화의 개념인 것이다.

분당국제아트쇼가 이번에 제시한 화두로서 융합미학은 이렇듯 21세기 예술의 가능성과 그 비전을 제시하고 모색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융합미학은 특정 지역의 미술제에 국한되어 사용될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거대담론은 분당국제아트쇼가 추구해야할 가치와 그 실천에 하나의 표준을 제공해 준다.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작품을 해석하는 비평가나 작품을 감상하는 일반 대중, 나아가 화상, 후원자, 문화행정가에 이르기 까지 융합미학은 모두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할 가치다. 그 이유는 예술이 삶으로부터 온 것이며 오늘의 삶은 다원주의로 규정되는 시대정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예술이 소박한 여가선용이나 정서활동의 차원을 넘어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활동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한 단계 올라서 있다.

분당국제아트쇼는 융합의 산실이자 실천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정신으로서 융합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을 실천하는 실험장이 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이념과 기법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개개의 가치를 존중하고 비교를 통해 상대적 가치를 진단하는 적극적 소통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참여해 지역간의 문화적 차이와 동질성을 몸소 느끼며, 나아가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기관과 단체 사이에 공유점을 발견하는 융합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희망이 비록 이상주의자의 꿈에 불과할 지라도 우리는 그 이상을 향한 소명과 실천의 과정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은 시대가 만들어내는 위기와 혼란 그리고 상실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구원과 치유의 행동양식이 되었다. 기후와 생태 등 인류의 삶의 조건 자체가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해 예술문화에 거는 기대는 바로 그 현실을 반성하는 일이자 미래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한 대안적 활동으로 소명이 주어져 있다.

21세기가 융합의 시대라는 점은 최근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세기의 키워드를 통해서 확인된다. 가령 전환점에 선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미국의 사회 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최근 제시한 <공감>의 개념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공감의 시대>를 통해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무한경쟁의 패러다임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지구촌 위기를 대체할 새로운 개념으로서 공감을 내놓았다. 그가 주장하는 공감의 개념은 관계, 소통, 화합, 균형, 조화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최근 회자되는 통섭의 개념과 다르지 않은 의미를 품고 있다.

이제 4회로 접어든 분당국제아트쇼는 분당이라는 신생도시의 특성에 비추어 융합의 개념을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행사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수도권 중심부의 지리적 조건과 자연환경 그리고 자족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 융합도시로서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당국제아트쇼가 분당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이를 근거로 타 지역과의 열린 구조로 교류의 창을 확대한다면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융합미학을 실천하는 최적의 문화적 장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작가뿐만 아니라 대중 일반의 관심 속에서 더 큰 결실을 거두기 바란다. (분당국제아트쇼 2010, 성남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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