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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영 / ‘당신의 집’ 프로젝트

김영호

[나의 집]
우리들 대부분은 유년시절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마을 어귀의 은밀한 구릉, 아니면 매립지역의 공터 따위에 어설픈 재료로 집을 짓던 기억이다. 마당이나 옥상 구석의 공간을 텐트로 둘러치고 그 안을 들락거리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집안 장소가 허락되면 다락방을 나만의 공간으로 숨어들어 책에 빠지던 날들이 있을 법도 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갈망하는 일을 본능이라 했던가. 안락했던 자궁에 대한 그리움은 성인이 되어도 유지되고 있음을 본다. 가족에서 학교 그리고 도시로 공간이 확대되고 공동의 집단에 대한 윤리가 심화될수록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나만의 장소를 욕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이 지배해 소유하려는 것이 나의 집이다.

[당신의 집]
채지영의 작품 <당신의 집에 초대합니다>은 소유 본능이 억압되거나 나의 공간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사색을 권한다. 작가는 ‘자신의 집’을 지어 ‘당신의 집’으로 명명한 뒤 그 문을 대중들에게 열어 놓았다. 그의 1인용 조립식 이동주택 프로젝트는 공간에 대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성인의 욕망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장소로 제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서 집을 짓고 타자들이 그 공간으로 들어와 사유할 것을 권한다. 채지영의 집은 자동차 한 대의 주차공간에 올려진 이동식 조립주택이다. 목재로 건축된 이층집 입구에 들어서면 내부 공간은 창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세면대와 침대 그리고 거울이 자리잡고 있다. 식사를 위한 간이식탁 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전기밥통 그리고 커피포트도 놓여있다. 실용적으로 구획된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음악감상을 위한 오디오 기기와 함께 휴식을 즐기기 위해 제공되는 소품들이다. 이층 공간으로 오르면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고 실내 공간에 는 그물침대가 매달려 있다. 작가의 집은 초대받은 당신에 의해 한시적으로 소유된다. 그리고 나의 집이 당신의 집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집은 작가와 대중 모두에게 특수한 사색의 공간이 된다.

[우리의 집]
채지영은 ‘당신의 집’을 해체해 다른 장소로 옮겨 놓았다. 집을 처음 세웠던 고양의 창작스튜디오에서 서울시내에 자리잡은 쿤스트독 갤러리로 전치한 것이다. 집이 놓인 주변 상황도 바뀌었다. 야외 주차장 공간에서 실내 전시장 공간으로의 이동이다. 작가의 집짓기 프로젝트가 이제 복합적인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심 속 집안으로 옮겨진 집은 자연공간에 대한 기억을 품은 채 복합적 의미 생산의 얼개 속으로 엮인다. 특수한 공간 혹은 특정 장소에 연계된 특별한 체험이다. 타자의 공간에 초대되어 들어와 일정한 시간동안 나의 공간으로 머물기 위해 관객은 ‘임차계약서’를 요구받게 된다. 채지영이 특수공간 설치작업 프로젝트로서 집은 이렇듯 다중적 의미의 기호가 되었다. 나의 집과 당신의 집, 야외공간의 집과 집안의 집, 자연의 집과 도심의 집, 임대한 집과 입차한 집 따위가 문맥 속에서 생겨나는 의미이다. 작가는 향후 이 집짓기 프로젝트를 도심의 광장이나 농촌지역 마을의 공터 따위의 장소로 확대할 계획이라 한다. 개인에게 제공된 집은 이렇게 다수에 의해 공유하는 ‘우리의 집’이 되었다.

[존재의 공간]
채지영의 ‘당신의 집’ 프로젝트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작가 자신은 ‘인간 자신의 공간에 대한 욕구를 심도있게 이야기 하고 서로 공유해보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특수한 집을 찾은 관객들이 일상적 공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심연에 자리잡고 있으나 오래되고 잊혀져 가는) 욕망의 공간을 체험하고 그 체험의 과정을 글이나 사진 따위의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벽면에 전시함으로써 공간과 장소에 반응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생각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공간 소유의 욕구와 그 특별한 체험을 통해 시도되는 장소에 대한 물음은 어떤 의도에서 온 것일까? 작가의 작업노트에 따르면 그의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응시와 소통을 통해 존재의 다양한 방식과 그 가치들에 대해 성찰하려는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된 ‘나의 집’과 ‘당신의 집’ 나아가 ‘우리의 집’으로 변주된 공간에서 체험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이다. 그것을 예술이라는 이름의 아우라로 축성된 특수한 집에게 묻는다.

[욕망의 장소]
채지영의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 프로젝트는 존재와 소유에 대한 성찰 너머 그 저변에 흐르는 인간의 공간 독점 욕망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개인의 은밀한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대중적 공간에 이르는 다양한 공간에 대한 성찰이다. 특정지역의 장소는 그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더불어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 파생한 의미를 품고 있다. 그 의미는 해석의 주체에 따라서 그리고 장소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문화적 메시지를 제공한다. 작가가 추진하는 집 프로젝트는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반복되는 일상에 의해 관심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개인의 방에서 아파트 주변 그리고 간판으로 도배된 빌딩의 도심에 이르기 까지 무관심의 대상이다. 채지영이 작업은 이 우리의 무관심에 종을 울리는 시도다. 우리가 누려야 할 장소와 공간을 향해 원초적 욕망의 촉수를 활성화시키려는 것이 그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응시]
채지영의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들은 2000년 이래 지속되어 오고 있다. 저간에 생산된 자료를 살펴보면 일시적인 거주를 통해 그 장소의 특정적 속성을 심리적 맥락에서 드러내는 작업 외에도, 작가가 선택한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들의 삶을 드러내는 다양한 설치적 경향의 작업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사건들, 그리고 그 속에 거주하는 인간과 생물, 무생물들의 활동들과 그 모든 환경의 조화로움을 포괄하여 인지되어진다’고 말한다. 버려진 집이나 물류창고 그리고 닭장이나 호수의 공간 등을 매체로 삼아 그것을 예술의 이름으로 의미화 시키고 그 안에서 다중적 삶을 응시하려는 것이다. 최근 채지영은 개인 작업을 넘어 타 장르의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융합을 통해 소리와 행동 그리고 이미지를 합성하고 그 행간에서 특정장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 지반이 되는 삶의 공간이 어떤 의미를 드러내는 삶의 기호로 더욱 활성화될지 주목해 볼 일이다.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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