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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가들

박영택

'무한한 수요의 결과가 될 끊임없는 장소박탈에 대항할 가장 좋은 무기는 사람들이 장소에 대한 감성을 재생시키는 것이다.' (데이비드 브로워)

동시대 한국 사진의 상당수가 도시를 주요 소재로 해서 탐사하고 있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렌즈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묘사의 수사법으로 도시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포획한다. 도시는 현대인들의 유일하고 거의 모든 장소다. 그곳은 가변적이고 불확실하며 수많은 굴곡과 편차를 노정하면서 삶을 강제한다. 아울러 도시는 자본과 권력과 문화의 차이를 선명하게 윤곽지으면서 사람들을 소외, 분리시킨다. 그로인해 상처받은, 욕망의 충족과 결핍을 동시에 안기는 양가적인 도시의 속성에서 받은 심리적인 불편과 고통을, 사진하는 이들은 사진으로 대체한다. 사진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결핍과 부재와 소외, 부조리하다는 느낌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다.
지난 날 자연을 소요하고 산수에서 받은 인상과 감회를 그려내던 산수화의 전통이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곳곳을 누비는 체험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통사회에서 유람하던 산수자연이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의 조건과 의미를 그곳에서 찾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의미있는 기행에 해당한다면 지금 이 도시탐사는 다소 낯설고 당혹스럽고 알 수 없는 모종의 힘과 폭력에 대한 소외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에 귀의하고 그로부터 진정한 생의 조건과 존재의 참뜻을 헤아리던 차분하고 깊이있는 눈들이 이제는 돌아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헤매는 불안한 눈, 부조리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현재 작가들에게 도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삶의 조건이자 환경이 되었기에 그로부터 시선과 마음을 방치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매년 민사협에서는 도시를 테마로 해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의 사진 속에서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도시의 일상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를 헤아려보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 삶의 조건과 의미를 살펴보는 일과 맞닿아있다. 도시에서의 삶이 각자의 몸과 마음에 어떤 무늬를 남겼고 그로인해 파생한 감수성과 감각의 결들이 무엇인지를 보고자 한다. 사진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외부 환경에 대한 해석의 입장을 갖고 있다. 환경과 사물에 대한 반응이자 그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일이 결국 사진 찍는 일이다. 작가들은 사진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밀도와 속도를 묘사하고 있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운동성과 유동성을 풍경으로 보여준다. 풍경이란 객관적인 시각상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보여주는 대로 보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풍경을 본다는 것은 그 환경에 대한 우리들의 해석을 본다는 의미다. 철학적 혹은 개념적 공간 구조는 공간을 인식하는 사람의 경험, 지식, 교육 정보에 따라 다르다. ㄸ라서 유리의 공간개념은 환경, 문화, 기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따라 결정된다. 도시가 단일하지 않고 매우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만큼 사진들 역시 다양한 시선으로 도시를 들추어낸다. 다양한 사진들이 평면적으로 전개되면서 입체적이고 중층적인 도시의 여러 겹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 안에는 도시의 내부와 외부가 미시적, 거시적 시선에 의해 자리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와 동선이 그려져 있으며 도시가 남긴 상처 등이 기록되고 묘사되었다. 세계화된 삶의 양식을 모방하고 익명성, 경쟁, 다양성, 세련된, 편리함을 추구하는 한편 강력한 개발정책 아래 급격히 재편되면서 성장, 과학, 합리를 추구하고 또한 초고속 압축 성장을 행한 한국 현대사회의 도시 공간을 연구하는 일이 오늘날 사진의 중요한 몫이 되었다. 사진으로 쓴 이 기록은 자신들의 당대 삶에 대한 보고서 같기도 하고 내밀한 일기 같기도 하다. 15명이 쓰고, 찍은 이 도시기행문은 결국 자기 생을 비춰보는 거울 같은 사진이다. 그 거울에는 도시거주자들의 집단적 무의식이 음산하게 드리워져있다.

도시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술이 결집한 역사 문화와 인류 문명의 소산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해온 도시는 그 자체가 인간의 꿈과 삶, 발전과 활동, 생존과 진화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아주 복잡한 무대이다. 오늘날 도시에서 사는 인구 비율은 약 81%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도시를 삶의 거점으로 삼아 살아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시의 물리적인 침략이 삶과 문화, 사회적 부분을 거침없이 먹어치우고 있기에 우리들 모두는 도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동시대 작가들은 오늘날 도시가 무엇보다도 부조리하다고 여긴다. 알다시피 부조리는 자기 자신과 세계 사이에 연결될 수 없는 간격을 드러내는 경험을 말한다. 까뮈는 세계의 갑갑함과 낯설음을 부조리하고 칭한다. 자연스레 도시인들은 스스로 이방인이 된다. 그것은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이며 사건들은 나에 능력밖에 있으며 인간은 누군지도 모르는 것에 조종되고 거의 의미도 없는 권력의 그물에 잡혀있다는 느낌’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도시의 이 부조리하고 황폐하고 폭력적인 풍경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거기에 존재하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경험하게 되는 경관이 된다. 어처구니없이 거대하고 알 수 없다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느낌에서 무관심이나 무력감이 초래된다. 이처럼 도시의 왜곡된 환경은 우리를 왜곡시키고 그에 따라 우리는 경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도시에서 산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중심도 경계도 없으며 계속해서 정체성이 변화하는 공간에 직면하는 일, 늘상 익명의 사물과 공허하게 만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환경이 된 도시는 크게 키치와 기술중심적 가치관으로 이루어져있다. 단조롭고 혼란스러운 건물들의 의미없는 패턴은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도금된 ‘혼돈의 세계’이다. 다양한 경관과 의미있는 장소가 결핍된 일종의 ‘무장소의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고 따라서 장소감 역시 상실했다. 이 같은 문화적이고 지리적인 획일화는 장소경험의 빈약화를 초래한다. 그에 따라 현재 도시는 급속히 키치화 되고있다. 키치는 ‘장소가 물건으로 취급되는 진정하지 못한 태도’를 일컫는다. 이제 인간은 장소로부터 소외되었고 하찮은 것이 중요하게 되고 중요한 것이 하찮게 되며 환상적인 것이 현실이 되고 진정한 것이 평가절하되고 비용, 색깔, 모양 같은 피상적인 특징이 전적으로 가치를 평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키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서 성립하는데 여기서 사물은 오직 대중의 소비만을 위해 창조되고 생산된다. 더불어 매스커뮤니케이션은 경관의 획일성을 증가시키고 일반적이고 표준화된 취향과 패션을 조장하고 전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장소의 다양성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도시는 획일적인 욕구와 취향을 가지게 된다. 당연히 그곳에 사는 이들 역시 획일적인 욕구와 취향 아래 길들여진다. 타자지향적 장소를 창조하는 도시는 그 안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이국적인 장소, 저속하게 화려한 색깔, 그로테스크한 장식 등을 사용하는가 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의 스타일이나 이름을 무차별적으로 빌어오고 있다. 또한 실제 지리환경과 거의 관련이 없는 부조리하고 인공적인 장소가 역사. 신화. 현실과 환상의 초현실적 조합으로 번식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소비경관의 한 유형인 이른바 ‘디지랜드화’라는 환상적 소비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환타지랜드는 단조롭고 타락하고 무능력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장소이며 미리 보장된 흥분, 오락, 흥미를 제공하는 유토피아를 어느 정도까지는 진짜처럼 보여준다. 그것은 목적이나 관계에 어떤 패턴도 가지지 않고 인위적 구조물을 아무 생각없이 섞어놓는 일종의 ‘서브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다. 획일적인 도시 공간이 획일적인 욕구와 취향을 생산하듯 어떤 패턴을 이루는 목적이나 관계도 없이 모든 인공물들이 마구 뒤섞여있는 도시 또한 정체성의 부재를 초래한다.

도시는 우리가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의미 깊은 중심이다. 그 장소는 생활세계가 직접 경험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장소는 의미, 실제 사물. 계속적인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 이것은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정서적, 심리적으로 깊은 유대를 느끼는 인간 실존의 심오한 중심이 된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들 역시 언급한 현재 우리 도시가 지닌 여러 문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인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5인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몸과 눈으로 기행한 도시에 대한 반응을 사진으로 선보인다. 이들은 수직으로 솟구친 빌딩과 그 틈으로 보이는 하늘이 이루는 기하학적인 구성을 통해 남근적이고 압도적인 도시, 자본의 힘을 미학적 수사로 호출(강금순, 주명덕)하는가 하면 서울 도시의 기이하고 카오스적인 공간구성을 스펙타클하게 재현(한영신)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도시와 도시 외곽에 자리한 키치적 오브제들, 괴이한 서구의 환타치 장식들을 원경으로 자리시켜 그것이 이미 우리의 자연스런 풍경, 무의식적으로 수렴되어버린 환경이 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전은선) 서구 대중문화의 아이콘 인형이 도시를 무대로 실제 연기하는 듯한 장면을 환영처럼 보여주는 (김영수)것은 키치화 된 이곳의 허구적 장소성, 한국 현대사회의 물신화 과정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가하면 그 도시를 배경으로 수많은 대중들이 서로 다른 시선, 소외와 무관심, 고독 속에 지극히 개인적인 삶 속으로 수렴되는 상황, 그 심리상태를 순간적으로 포착해내는 사진( 방병상)도 있고 스키복을 입고 스노우보드를 든 체, 마치 외계인처럼 도시의 이곳저곳을 유령처럼 떠도는, 너무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정우진)과 도시의 밤, 클럽과 광장과 자신들만의 해방구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고 허기진 욕망을 해소하는 젊은이들의 동선을 추적(김수현)하는 사진, 그리고 소비와 관능, 욕망이 ‘쇼’를 하는 장소, 그 모든 것이 결국 한 장의 사진으로 찍히기 위해 전시되는 연출무대를 포착(박강훈)한 사진 등은 동시대 한국 현대사회의 일상과 도시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에 해당한다. 또한 도시의 경계,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개발과 철거의 장면을 기록한 사진들도 있다. 황량하고 폭력적인 이 장면들은 우리 사회의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가 남긴 상처를 환각적으로 증거하고 있다.(강홍구, 황선구, 한현주) 그런 와중에서도 가난하고 누추한 도시에서의 삶 아래 끈질기고 눈물겨운 살림을 이뤄가는 자취, 산동네나 가난한 동네의 골목과 담벼락 등을 서정적으로 길어 올리는 따스한 시선과 마음의 결이 느껴지는 사진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색채구성과 절묘한 프레밍으로 이룬 사진(김종엽, 문창화)등이 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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