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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미-색으로 이루어진 절대 풍경

박영택

정종미의 작업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재료와 색을 하나의 결정으로 응축하는 작업이다. 그 결정은 이미지와 색의 이분법으로 구분되거나 전통과 현대의 절충으로 가시화되거나 물성 자체의 강조와 질료의 정신화를 분절화 하는 선에서 가능한 벗어나 있다. 정종미의 그림은 재료가 지닌 고유한 성질의 증좌이자 그것이 다시 색과 조형적 고려에 의해 수렵되고 융합되어 가능한 최상의 상태로 지향되는 지점에서 운영된다. 그림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와 안료가 시간의 결과 아늑한 손의 체취 아래 서로 삼투되어 삭혀지고 발효된 상황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로 규정되기 어려운 미묘한 색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작업이자 그림의 바탕이 되는 화질, 바닥 또한 그 자체로 충분한 미적 대상이자 매력적인 이미지/물질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둘 다 기존에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들과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다. 그만큼 그림의 바탕과 근본에 대한 철저한 체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를 토대로 조형적 체계를 구축해나가는 일이 작가의 작업이다. 작가의 작업은 ‘바닥’에서 가능한 이루어진다.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추진된다. 추상산수시리즈와 어부사시사, 종이부인으로 대변되는 명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통적인 동양의 산수화의 세계를 색채추상으로 환원시키는 작업과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색상과 재료의 콜라주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 그리고 민화와 초상화(미인도)를 부조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종미의 작업은 전통회화의 중요한 목록을 대부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이를 전통적인 재료와 천연 색 으로 번안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른바 정종미라는 현재에 살고 잇는 한 작가이 몸을 통해 ‘필터링’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그리기와 만들기, 선비 화가들이 사의적인 회화관과 장인들이 수공 기술을 한 세계로 맞물려놓았다. 여기에는 여성들이 손 솜씨, 바느질과 염색, 한복을 만드는 공정 모두가 또한 얹혀져있다. 다분히 여성적 감수성과 기술, 나아가 페미니즘적 요인들도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종미 작업의 핵심은 색채에 놓여져있다. 작가가 발화한 색상의 체계는 한국적인 색 혹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의 세계다. 미의식을 상징하는 ‘기억 속의 심상’의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가 바로 색이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고유의 색채적 심상이 정종미가 추구하는 색이다. 고유색 또는 조선색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색이란 보편 너머의 특수가 자신의 저다움을 드러내는 눈빛과 같은 것이고 조선색이란 좁은 의미의 한국의 색깔을 넘어 넓은 의미의 한국인의 기질을 나타낸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은 밝고 맑은 색, 즉 명도와 채도가 아울러 높은 색들일 것이다. 정종미의 작업은 그런 색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와 한 쌍으로 특정한 색의 체계로 결코 수렵되지 못하는 아스라한, 경계를 무한히 넘나드는 야릇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는 색의 스펙트럼 또한 풍부하게 시각화해준다. 그 같은 색은 색색의 콜라주, 모자이크로 이루어진다. 색의 바다에 색의 섬들이 부유하고 있는 인상이다. 한국적인 이미지의 색이란 하나하나의 색깔에 한국적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색깔이 지각공간에 어떻게 구성되느냐의 정도, 이른바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색으로 이루어진 이 풍경 앞에 서면 우리를 둘러싼 색의 세계, 자연이 품고 지닌 색의 맛과 품위, 전통적인 한국의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현묘한지 아마 절실하게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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