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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현-작업실을 그리다

박영택

화가에게 있어 작업실이란 공간은 세상과 절연된 자기만의 고독하고 내밀한 장소이자 실존의 공간인 동시에 외부로 향한 무수한 안테나들이 머뭇거리면서 발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얻은 소외를 내공으로 굳혀가는 곳이자 동시에 그런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힘들이 난반사되는 곳이다. 작가는 어쨌든 작업실이란 공간에서 오로지 ‘엉덩이의 힘’으로 버티는 존재들이다.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그/그녀들의 작업들을 보고 오지만 결국 기억에 오래 남아 숨쉬는 것은 그 작업실 공간에 대한 인상, 기억이다. 그곳은 작업 못지않게 작가의 모든 것을 단박에 던져주는 곳이다. 자신의 시간과 몸과 감정을 문질러 쓴 자취들이 고요히 썩어가는 작업실 공간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꿈과 상상과 기억들이 성형되는 주물공장이자 생각되어지는 모든 것, 보여주고자 애쓰는 무수한 것, 보이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그 많은 것들의 몸을 만들어 가시적 존재로 눈앞에 현존시키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런가하면 아예 작업실 자체가 작업의 소재가 되고 매개가 되기도 한다. 세상 밖으로 향한 눈들이 문득 작업실 내부로 수렴되어 그곳의 모든 것들을 재현하면서 작업의 의미를 묻고 미술을 돌이켜보고 자기 자신을 물끄러미 뒤돌아보는 것이다. 그때 작업실은 부푼 봉분같이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탱탱하다.




한지현은 자신의 작은 작업실을 그렸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또 보내야만 하는 그곳을 풍경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과 물감, 붓 그리고 이런 저런 사물들로 가득한 작업실 공간은 삶을 견디고 미술을 견디다가 순간 뚫고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이다. 일상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그 일상을 뒤로 하고 단호히 끊어내야 하는 곳에서 보낸 시간과 상념이 고스란히 그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작업실 공간에도 일상은 지속해서 물처럼 흐르고 수시로 스며들어 그 둘은 복잡하게 얽힌다. 작가는 그것들을 한 공간에 섞어버렸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 삶에 대한 미시적 관찰과 그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끌어안고 가야 되는 자기 암시적 제스처가 묻어나는 그림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독특한 해석 속에서, 복수의 시점 아래 재편된다. 원근법적 구도가 해체되고 평면적인 공간구성 아래 현실과 환상, 현재와 몽상, 중력과 시간의 법칙 아래 놓여있는 사물과 그로부터 이탈한 사물들이 뒤섞여있다. 원색이 평면적으로 분절되어 자리한 화면에 실루엣으로 형태를 유지한 사물들이 놓여있거나 부분적으로 칠해지고 묘사되다가 이내 선으로만, 연필드로잉으로만 위치해있는 형국이다. 그것은 그리다 만 흔적, 이야기를 하다 그친 모종의 상황성을 긴장감 있게 전하고 있다. 칠해진, 묘사된 부분과 캔버스의 흰 천, 바탕 면을 그대로 드러낸 부분간의 대비는 구체적인 대상 세계를 암시적으로만 보여주면서 보는 이의 상상력과 마음을 유인해내는 구멍으로 자리한다.


그림에 대한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오브제와 그려진/ 그려지고 있는 그림들, 실재하는 사물과 그려진 사물들, 현실적 공간과 가상의 공간, 실세계와 환상이 몸을 섞는 틈들이 혼재되어 있는 이 그림은 다분히 모순적인 공간, 풍경을 드러낸다. 작업실의 단순한 재현이나 묘사가 아니라 특정 공간을 빌어 자신의 마음과 머리속에서 부침하는 순간의 모든 것들을 기술한 문장에 가깝다.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 현재 자신의 삶을 담담히 바라보는 응시의 그림자가 덮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인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내부를 사진 촬영 후 이를 포토샵 라인 작업을 거쳐 화면에 옮기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포토샵 라인이 지닌 기이한 느낌을 드로잉으로 옮겨놓았다. 컴퓨터로 라인을 떠내는 작업은 선이 지닌 재미난 효과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실재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진동하는 듯 하다. 연필 선으로 드로잉을 한 후 그 윤곽선을 따라 검정 라인작업을 하고 부분적으로 착색작업을 거쳐 만든 이 그림은 다분히 팝 적인 소재와 색상, 평면적이며 장식성과 디자인적 경향, 사진의 회화적 응용이 낯설게 결합된 형국이다.

작가의 작업실에 놓여있는, 그려진 사물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도구, 연장들이자 그림으로 그려야 할 대상들이고 동시에 자신의 삶에서 필요로 한 물건들, 아이와 관련된 장난감 등이다. 물감과 붓, 장난감이 함께 있는 이 작업실 공간은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한 화가로서의 실존이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장소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공간은 모든 의무와 현실적 억압 등을 자유롭게 풀어헤치는 능동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죽어있는 사물(오브제)들과 살아있는 생물들의 대비관계를 보여주면서(물고기나 꽃의 우연적인, 예기치 않은 등장과 연결) 작업실 공간을 생태적, 유기체적 공간풍경으로 변이시키면서 작업실공간에서의 꿈꾸기, 활력의 모색, 유머와 위트 등을 적극적으로 감행하기도 한다. 아울러 고립되고 밀폐된 공간 안을 횡단하는 ‘탱탱볼’을 연속적으로 그려 넣어 정지된 그림 안에 움직임과 시간성을 얹혀놓기도 하고 동시에 늘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듯한 자신의 성격, 정체성에 대한 은유를 시각화했다. 유사한 지점에서 밝고 산뜻한 색상은 인공적인 사물들의 외피를 강조하고 밝고 낙천적인 자기 성향을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실 공간은 이 작가에게는 살아서 숨쉬는 유기체인 생물이자 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에 해당한다. 무생물에서 생명체를 떠올리고 바라보는 이 환각의 시선, 자신을 이루는 환경과 사물에 기생해서 또 다른 자신의 편린과 분신을 찾아나서는 접속적 상상력이야말로 한지현 작업의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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