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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의 작품 세계-존재와 부재

박영택





김아타의 사진은 그 스케일과 거대한 주제의식 속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힘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사진을 통해 단지 피사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모종의 힘과 정신을 발산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진이 가시적 세계에 맺혀있는 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사진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관념과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가 그의 관심이다. 단지 대상을 낭만적 혹은 정서적으로 찍거나 대상화하는데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에 심취하고 정신적 훈련, 이미지 트레이닝과 불교적 사유에 매료되는 시간을 거쳐 촬영한 초기작 <해체>시리즈(1992-1995)는 겨울과 봄 사이 씨를 뿌리기 위해 갈아놓은 논밭이나 길가, 황량한 벌판, 폐선이 뒹구는 겨울바다, 혹은 고속도로 위나 유적 발굴 현장 등을 무대로 벌거벗은 인간의 몸을 빨래처럼 널어놓듯이 부려놓고 촬영한 사진이다. 그 육체는 자연과 공간 속에 다른 개체들과 구분없이 존재한다.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관념적이거나 이상적인 완결된 신체가 아니라 ‘세계 속에 던져진’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 모델들은 작가 자신이 직접 섭외하고 설득해서 벌거벗겨놓은 이들이고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는 의미에서 이 작업에 참여한 일종의 퍼포머들이다. 아울러 그것은 광활한 원초적 자연에 속한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존재임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말해 인간과 자연, 문명이 대립적이거나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구분없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후 그는 <뮤지엄 프로젝트>(1995-2002)시리즈를 선보였다. 여기서 시각적 충격은 더욱 상승한다. 붉은 천으로 감싸인 공간에 다양한 직종의 인간 군상들이 투명한 플렉시 유리상자에 갇혀있다. 특히 법당 안의 벌거벗은 남녀모델이 투명 아크릴 박스 속에 앉아서 마치 참선하듯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눈길을 끈다. 모든 욕망을 잠재우고 세속적인 자취들을 정화시켜야 법당풍경에 느닷없이 쾌락과 욕정의 몸 풍경이 환각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몸은 인간 본질이자 욕망의 정체이자 박제된 인간을 뜻하기도 하다. 그리고 육신이 들어간 네모난 박스는 서양적 가치관. 미학. 사전적 의미의 박물관 등을 의미하며 나아가 일종의 자신의 사상적 울타리로서의 포르말린이자 인식적 거리 두기를 가시화 하는 장치의 구실을 한다. 그런가하면 틀에 박힌 사회적인 관습. 규범. 제도. 지배이데올로기. 의식의 통제. 고립, 안과 밖,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등 다양한 것을 암시한다. 문명으로 상징되는 아크릴 박스 속에는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 들어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인간은 더 이상 관념적이거나 이상적인 완결된 신체의 인간이 아니라 세계 속에 던져진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벗는다는 것은 다시 원초적인 인간으로 되돌리는 행위이고 여기서 나신의 육체는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된다. 어떠한 사회적인 신분도 나타내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신체, 서로 다른 익명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알몸을 드러내는 이러한 과정은 진정한 자기 발견, 해방의 증표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자기 자신을 세계에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고정관념이나 틀을 제거하고, 가능한 의식에 앞선 우리의 몸과 세계가 직접적으로 맞닿는 순간, 바로 그러한 ‘참 자유의 세계’를 포착하려는 것이란 얘기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관념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나와 타자가 진정으로 교감하는 세계, 자기동일성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그것이다.

이후 진행된, 디지털 편집기술을 이용한 이미지 중첩방식과 카메라 장노출촬영기법을 병행해 만든 <온 에어프로젝트 > 역시 그의 오랜 화두인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자신의 신념을 시각화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1시간 동안의 커플의 섹스, 2시간의 축구경기 장면이나 비무장지대, 뉴욕의 도심풍경, 얼음조각이 녹아서 사라지는 장면 등을 8시간 장노출로 촬영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속에는 고정된 물체는 그대로 있고 반면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죄다 사라져버리고 뿌옇게 흐려져있거나 흔들리는 자취로만 남는다. 그는 이렇게 시간의 밀도를 통해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존재와 부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유가 그의 작업의 주제인 셈이다. 여기서 그가 8시간을 고집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그에 의하면 이 시간이 사물의 밀도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시간이며 인간이 활동하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이자 최초의 사진을 찍기 위해 소요된 시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최초의 시간이란 알다시피 카메라를 발명한 니세르 포엡스가 파리의 풍경을 찍기 위해 8시간의 노출이 필요했던 그 최초의 시간을 암시한다. 그의 사진은 8시간이란 시간이 주어진 인화지 표면위에 누적되어 있다. 시간이 함축되어 만들어진 이 사진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결국 우리에게 시간을 보여주는 그러나 그 시간은 흐르고 사라지는 시간이자 고정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인다라>시리즈는 특정 대상을 하루에 1만 번 이상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기록된 각각의 이미지들이 모여 미니멀한 모노크롬 추상회화처럼 만들어 보이는 독특한 사진이다. 재현에 충실한 사진기술을 이용해 대상을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모여 텅 빈 화면, 추상화면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무척 흥미롭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분명 무수한 사연,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데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너무 많은 것을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사진인 것이다. 그는 지속해서 인간과 사물, 자연, 우주의 모든 생성존재의 이유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분히 동양적 세계인식과 사물에 대한 인식을 사진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이 지향하는 것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관념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나와 타자가 진정으로 교감하는 세계를 추구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아타의 사진 전시는 그간의 중요한 작업들을 한 자리에 모아본 의미 있는 전시다. 그의 관념과 정신이 어떻게 사진으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동시에 물리적 세계의 외관에 맺혀있던 사진이 그를 벗어나 어떤 식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역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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