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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정 리 / 사물을 통한 꿈꾸기

박영택

헬렌 정 리에게 사진은 삶의 주변에서 쉽게 지나쳐 버리거나 간과되는 수많은 사물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이자 그것들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아내어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단지 사진이 기록과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다. 사진적 시선은 우리 눈이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장면을 환각처럼, 가상이지만 실제처럼 혹은 무한한 연상이미지를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의 눈과는 다른 사진적 시선에 대한 흥미로부터 그녀의 사진은 출발한다. 그러니까 작가에게 사진/사진기는 사물을 통해 꿈을 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 도구인 셈이다. 알다시피 사진은 현존시키는 대상 또한 대상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분명 사진적 이미지다. 그러니까 작가의 관점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피사체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놓여있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사진은 늘상 사물자체가 아니라 사물의 다른 모습, 다른 질서를 찾는다. 그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낯설게 보고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으며 이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꾸면서 자유로움을 호흡하는 일이 결국 예술행위일 것이다.
작가의 근작은 전복껍질의 표면에 근접해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신비스런 색상과 결, 광채를 지닌 전복껍데기를 통해 이런 저런 풍경을 떠올려준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인공물은 시각적으로 정돈되지 않으면 마냥 불편하지만, 자연의 자연스러움에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차원의 정밀한 계산과 매력이 들어 있다. 전복껍질/피부 위에 서린 색채와 결, 이미지는 그 자체로 매혹적인 풍경이고 신비스럽고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오랜 시간 물과 햇살과 바람이 만들었을 그 색상, 무늬에 매료된 작가는 그 사물을 사진으로 담았다. 여기서 사진은 익숙한 대상을 무척 낯설게, 당연한 모습을 기묘하게 비튼다. 사물들의 낯섦은 사물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사이 시공간적 거리의 변화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와 관계를 만드는 그 거리가 핵심이다. 그것은 결국 작가의 눈과 마음에 의해 가능하다. 작가는 근접 사진을 통해서 숨어있다고 여겨지는 이미지를 드러내고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또 다른 현실적 장면으로 돌려세웠다.

캔버스의 표면에 사진이미지를 올려놓고 혼합재료로 가공한 이미지는 사진과 회화의 접목과 혼재 속에 독특한 이미지로 환생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러 장면들에 작가는 무척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제목을 붙여주었다. ‘아침향기’, ‘파란 새벽’, ‘끝없는 기다림’, ‘전원풍경’ ‘가을 꿈’, ‘쌍둥이 산’ 등이 그것이다. 이 사진그림은 마치 실재하는 장소를 재현하거나 몽상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결국 전복껍질에서 보고자 열망했던 환상적 이미지인 셈이다. 작고 하찮은 전복껍질의 피부에 깃든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발굴하고 길어 올려 만들어낸 풍경화다. 그것은 일종의 몽환 풍경이다. 사진으로 꿈을 꾸고 그 꿈을 시각화한다. 사진이란 보이는 대상을 찍는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의 피부에 달라붙는다. 기계적인 사진이미지는 그런 의미에서 레디메이드이고 세상에 이미 그렇게 존재하는 것의 표정을 담아낸다. 그러나 이 작가의 사진이미지는 분명 현실계에 존재하는 대상, 사물, 자연으로 부터 출발하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무성한 장면을 선사한다. 결국 작가의 작업은 자연에 내재된 신비스러운 미적 조화와 놀라운 색채, 무늬를 발견하고 이를 사진으로, 아니 사진과 회화의 결합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피사체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아내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누구나 그 사물의 피부를 보고 이런 저런 상념과 상상력을 부풀려 낼 수 있다. 사실 자연이란 인간에게 몽상과 상상을 마냥 허용하는 근원이자 원본들이다. 작가 역시 이를 통해 더 많은 상상과 환영에 젖어 자신이 보고 싶은, 보여지는 이미지를 추출하고 이를 안착시켰다. 이때 사진과 함께 또 다른 조작을 통해 그 환상성을 더욱 강화한다.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들을 Lazertran이란 독특한 기법으로 캔버스에 옮긴 후,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자신이 상상했던 다채로운 화려한 색을 입혀 각각의 이미지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마술과도 같은 유희다. 그러니까 작가는 사진에 회화적 기법을 가미시켜 현실과는 다른 추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주술과도 같은 일이다. 하찮고 버려지는 자연물에 개입해 그것을 또 다른 존재로 환생시키는 일이다. 작가의 눈은 한 사물에서 또 다른 사물과 상황을 연상하고 추출하는 그런 눈이다. 사진이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제시한다면, 이 사진은 이미 있는 것에서 또 다른 존재를 찾아 나선다. 주어진 대상을 그것대로 보거나 그 사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 혹은 우리 삶에서 관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지운 자리에 피어난다. 나로서는 그런 눈이 한 사람을 작가이게 한다고 믿는다. 헬렌 정 리의 사진회화는 바로 그런 눈의 소중함과 흥미를 전해준다. 우리 눈은 유독 호기심이 많은 기관이다. 그리고 이 눈은 학습되고 기억된 것들로 인해 그 관계 안에서 사물을 판독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부단히 이탈한다. 헬렌 정 리의 눈이 바로 그런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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