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신하순 / 기억의 유람기

박영택

신하순의 그림일기를 보노라면 옛 선비들이 남긴 유람기가 떠오른다. 산수를 유람하고 남긴 유산기 遊山記가 그것이다. 하루하루 빠짐없이 그날 있었던 일과 자신의 감상을 기록한 글이다.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시야를 확대하려는 의도 아래 자연을 소요하였고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었을 때 그 불화를 달래기 위해 풍경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옛 선비들은 도학실천의 하나로 우리 땅 순력과 사찰문화에 대한 탐구를 병행했는데 기실 그 유람이란 일종의 수행이었다. 옛 선비들은 공부하는 자들이자 여행하는 이들이었다. 어디론가 방황하는 이들이었다. 안주와 정박에서 풀려나 자기 육체를 고단히 몰고 가는 일이었다. 사실 여행과 그 기록은 인간만의 일이다. 어디론가 끝없이 헤매고 다니면서 현재의 자신을 벼랑 끝 같은 낯선 곳으로 몰고 가는 한편 특정한 목적 아래 자신의 행적과 생각과 견문한 사실을 남기고자 한다. 신하순의 그림은 그러한 여정을 진솔하게 담은 그림/글이다. 그의 그림은 자신과 가족의 여행기이자 유람기다. 이 가족적인 그림은 동시에 늘상 자신의 행적, 여정을 묻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여정은 일상적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혹은 국내를 벗어나 국외로 이어지지만 그 구분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옛사람들은 늙어서 다시 보기 위하여 산수를 찾은 흥을 시문으로 제작해두거나 훗날 와유의 자료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림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하순의 그림 또한 자신의 지난 시간과 경험을 기억해내어 간직하는 일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서 과거의 시간과 추억을 불러 모은다. 작은 수첩에 그려놓은 간단한 스케치와 메모를 바탕으로 그 순간을 환각한다. 그에게 모든 일상적 하루는 그림일기의 실마리를 풀어준다. 그에게 그림이란 모든 것이다.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현실의 삶, 생활습속을 기억하며 회상하고 반복하는 일상을 조용히 지켜본다. 그리고는 붓을 든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의 리듬을 찾고, 호흡을 이어주는 생명의 연장과도 같은 유희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요 기쁨이다.” (작가노트)
현실적 갈등이 없는 이상세계에서 깨끗한 삶을 추구하는 은일의식이 여행과 유산기를 남기고 산수화를 그리게 했다면 신하순의 그림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순간에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운데서 삶의 의미를 부단히 찾아보려는 이른바 근사적 시각의 소산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여행 중에 느낀 정감과 관람한 경치를 묘사한다. 자신과 가족들이 함께 했던 한 순간이 그림 속에 들어왔다. 그림 안에는 항상 경치를 바라보고 완상하는 자신의 모습, 그 모습을 기록하는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적이다.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그 시간과 공간을 사색한다. 그렇게 그림은 매 순간에 겨냥되어 있다. 그는 그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그것은 그리기와 쓰기의 연장선상이자 삶이자 수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분히 문인화적이다. 내용과 기법 모든 면에서 그렇다. 문인화에서는 무엇보다도 인위적인 기교가 드러나는 것을 삼가며, 열심히 노력해서 그린 티가 나는 것도 꺼린다. 그러한 자취는 보는 이에게 긴장을 주고 그 긴장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울러 너무 심각하면 참마음이 열리지 않기에 그것 또한 거부된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림을 놀이하듯 편안하게 그리는 것, 그것을 일러 문인화 정신이라고 한다면 신하순의 그림이야말로 고스란히 문인화이다. 그의 그림은 못 그린 듯 그려졌고 간략하고 소박하다. 특정 공간, 풍경에 대한 인상적인 분위기만을 간추려놓았다. 간소하고 소박한 선 맛이 일품이다. 무심하고 소략한 필선과 과감한 여백처리, 먹의 번짐과 감각적인 색채의 조화 등이 감미롭다. 그는 다양한 선 질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역할과 운치있는 어울림을 선사하고자 한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효과로 가득한 회화의 묘미가 그가 추구하는 경지다. 그래서 근작은 자신이 그린 그림에 아이가 와서 손대고 덧칠한 것을 그대로 끌어안으면서 기운과 선 질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아이가 목탄으로 망쳐놓았다고 여겼던 선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생한다. 또한 같은 장소를 다른 재료로 거듭 그려나가면서 그 차이와 느낌을 고려한다. 캔버스위에 과슈를 바르거나 혹은 장지에 과슈와 먹을 쓰는 식이다. 이미 그것은 동양화와 서양화라는 낡은 장르 개념에 머물지 않고 그로부터 부단히 벗어난 회화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쉬운 그림과 감정 표현이다. 현대미술이 지닌 난해함과 달리 그의 그림은 더없이 쉽고 보기 편하다. 그러면서도 묘한 운치가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대상의 재현과 달리 그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한 자의 인식 속에서 자연스레 부풀어 오르며 핵심만으로 발화하는 마음이다. 그는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사라지고 덧없이 소멸되는 기억과 시간에 맞서 그 한 순간의 경험을, 기억을 그린다. 자기 마음과 의식 속에 희미하게 남긴, 그러나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무엇이라 쉽게 칭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 안으로 조용히 불러들인다. 선의 표현을 통하여 기억의 흐름에 기대어 본다. 한 화면에 능동적인 감각과 자유로운 감성을 표출하여 기억이 움터오도록 한다. 그는 기억 속의 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즐거움을 찾는다. 그것이 그의 그림이다. 나는 수년간 그의 그림을 즐겨왔다. 그림 보는 즐거움, 깨닫는 마음을 전해주는 그림이 희박한 이 시절에 그의 그림이 마냥 위안이 되고 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