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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근 / 돌로 이루어진 피부

박영택

고명근은 조각을 사진으로 찍는다. 특정한 시점에 의해 저당잡힌 입체물은 평면위에 안착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다시 입체적인 공간으로 재연되거나 새로운 시선에 의해 분리되어 평면에 안착된다. 사진으로 촬영한 원래의 대상이 지닌 3차원, 입체를 다시 대상이 존재하는 공간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복제하는 동시에 본래의 상황에서 부분적인 절취를 감행하여 주름과 굴곡을 펴고 있는 것이다. 사진과 조각을 합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한편 세부적인 시선의 ‘따냄’에 의해 낯설게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본질적으로 평면일 수 밖에 없는 사진이 입체를 평면으로 만들고 그 평면을 다시 입체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부분적인 시선에 의해 본래의 문맥으로부터 절취된 낯선 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그는 사진이 평면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찍어서 이를 입체로 재구성한다. 혹은 데칼코마니를 통해 기이한 형상의 왜곡과 변주를 실험한다. 놀이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진이 평면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우리가 보는 대상과 공간, 그리고 시간 등의 여러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결국 대상에 대한 새로운 지각 체험과 감각의 유희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자신의 의도 아래 이미지를 변형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주는데 사진이 흥미롭게 쓰여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입체를 평면으로 전화해내면서 그 사진 안에서 왜곡과 착시, 기이한 감각이 전이가 일어나는 것을 극화하거나 충돌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사람은 사물을 바라보고 인식하는데 있어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험에 의한 학습과정 등을 거친다. 인간이 시각적으로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질문은 그에게 매우 중요해 보인다. 작가에게 사진이라는 매체가 특히 중요한 것은 사진이 평면이라는 점과 재현이라는 점 때문이고 사진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미지를 전환하거나 변형하는데 매력적이기 때문인 듯 하다.

고명근이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서구의 고전 조각상들이다.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완벽하며 이상적이고 도달해야 할 기준으로 제시된 서구고전주의 조각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조각을 전공한 그에게 이 조각상들은 무척이나 친숙하고 이상적인 대상이다. 그는 마음껏 그 대상을 탐닉한다. 사진이란 매체로. 육체를 만지고 오랜 시간을 음미하고 아름다움을 향유한다. 사진은 그러한 쾌락을 기꺼이 허용한다. 그가 찍은 조각상은 완벽한 인체의 재현이자 부분적으로 훼손되고 상처 난 고대 세계의 파편들이다. 무수한 시간을 저장하고 있는 물질이다. 그런가하면 뼈와 살로 이루어진 구조로 표현된 조각상이다. 이 그리스 조각상이 보여주는 누드는 대담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더 없이 훌륭한 끝손질, 섬세한 이음새, 단순히 기계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 소조의 정확성, 흰색 대리석을 평평한 표면이나 완만한 곡선, 또는 날카로운 돌출부로 만들어낸 솜씨를 감상한다. 흰 대리석에서 지극히 관능적인 매력을 발견한다. 보는 이들은 살과 근육의 특성과 감촉에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이렇듯 미술관에 놓인 고전의 파편들은 계속 영감을 불러 일으키며, 누드는 항상 잠재력을 잃지 않는다. 그 조각상들은 한결같이 흰 대리석을 정교하게 깍고 다듬어 실재하는 인간의 피부처럼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매우 감각적인 오브제이기도 하다. 돌로 이루어진 몸, 돌로 만들어진 얼굴들은 실제 말랑거리는 살을 환영적으로 떠올려준다. 사진은 그 살을 눈앞으로 옮기고 소유하고 절취하게 한다. 아득한 시간의 결들을 두르고 있는 돌의 표면을 작가는 여러 각도에서 더듬어나가면서 그 일부를 촬영했다. 사진이 시간을 저장하고 기록하는 것이라면 이 오랜 세월을 살아남은 조각의 피부에 새겨진 시간을 그의 사진 또한 증거하고 기록한다. 인간의 말랑말랑하고 연약한 피부와는 대척지점에 위치한 차갑고 단단한 돌의 표면에 무늬가 진 그 살은 가짜 살이고 환영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조각상의 외피는 보는 이의 눈을 마냥 현혹한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상아로 새겨놓고 그 대상에 매혹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에 대한 비너스는 감화는 상아로 만든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전이된다. 비로서 피와 온기가 통하는 살이 되었다. 서구의 고전적인 조각은 그러한 환영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사진으로 찍혀진 이 고대의 조각상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처럼 시선에 호소한다. 사진은 그러한 환영감을 더욱 증폭한다. 입체를 평면으로, 굴곡과 주름을 펴내고 모든 면들을 밋밋한 피부로 만들어 보여준다.

고명근은 사진을 통해 조각상의 세부를 근접해서 촬영해 그것이 실재하는 인간의 살이자 피부인지 혹은 돌인지 구분이 잘 안가도록 우리 눈을 현혹한다. 그는 눈앞에 현존하는 여러 조각상을 2-3시간 동안 모든 각도에서 수없이 촬영했다. 그리고는 이를 투명한 플라스틱 위에 올려놓아 공간에 위치시키기도 하고 입체적인 조각상의 외부, 그 피부를 관음증적으로 더듬어 찍었다. 부분적인 절취와 클로즈업은 돌과 살의 경계를 순간 무화시킨다. 사진은 환영의 도구가 되고 보는 이의 눈과 감각을 순간 현혹한다. 그러나 깨지고 부숴진 조각상의 피부와 대비시키거나 접목시켜 놓아 그것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놓기도 한다. 이렇듯 작가는 조각상의 여러 부위들, 그 디테일을 촬영했다. 몸이 접히고 휘고 눌려서 만든 기이한 틈과 자국, 혹은 몸/돌로 근접해서 달라붙은 시선으로 인한 매끈하고 균질한 질감이 우선적으로 감촉된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촉각성을 흡인해낸다. 또한 조각상의 모든 부위를 은밀한 시선으로 훑어나간 그 시선은 상당히 관음적이다.
'바라보고, 보여주는 쾌락 속에서 눈은 성적인 영역에 속한다.'
(프로이트)





부분적인 시선으로 인해 전체상이 깨지고 불분명해지면서 야룻한 단서들만이 남겨져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건드리고 유혹한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입체로 된 조각상이 아니라 돌, 살의 피부만이다. 사진은 그 피부를 확대하고 몰입해서 오랫동안 응시하게 한다. 그런가하면 미끈하고 완벽한 조각의 피부와 깨지고 절단된 부분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착시와 환영에 물든 눈들을 순간 되돌려놓는다. 인간의 피부가 된 돌과 그것이 돌임을 증거하는 피부가 한 쌍으로 맞물려 있기도 하다.

알다시피 프로이트가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자아를 끌어내려 신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정신분석학을 창시했듯이, 디디에 앙지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피부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자아를 재현한다. 누군가가 나의 피부를 만지는 것을 느끼고, 내가 누군가의 피부를 만짐으로써 자아는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피부자아(심리적 싸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아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체적 자아인 셈이다. 그것은 표면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표면의 투사이다. 신체와 피를 담아주는 피부의 능력!

만지는 것의 억압, 금기시 된 미술관에 있는 조각상의 피부를 작가는 사진으로 더듬는다. 사진기, 렌즈가 만지작거리는 돌의 피부, 신체의 부위는 아름답거나 관능적이거나 매혹적이다. 그는 돌의 피부에 말을 건넨다. 응시의 교류를 사진으로 담고 이를 다시 투명한 박스로 일으켜 세워놓거나 인화지의 표면에 밀착시켰다. 반들거리는 피부위로 시선은 미끄러지고 달라붙는다. 피부는 의미 있는 상호교류의 최초의 신체기관이다. 이 사진은 그러한 피부를 새삼 주목한다. 생각해보면 사진 역시 피부에 불과하다. 그것은 세계를 오로지 피부로만 보여줄 뿐이다. 이렇듯 그는 조각의 디테일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전체상을 찍는 데 동원되기 보다는 부분을 절취하는데 이용된다. 디테일은 때로 조각 전체의 내용을 집약할 수도 있으며, 전체로서의 조각에 미세한 틈을 만들어내면서 섬세한 의미의 변주를 이루기도 한다. 때로는 과도하게 관객의 시선을 끌어 조각 전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붕괴시킴으로써 조각 자체를 전복시켜 버리는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체로서의 조각에 드러나지 않는 내밀한 메시지를 은밀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디테일은 조각을 다시 보게 해주면서 조각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부재하는 이미지를 눈앞에 옮겨 놓기 위하여 그렇다. 가까이서 보는 것, 뜯어먹는 시선은 내밀성의 감정을 한 층 부각시킨다. 사진이 그러한 눈의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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