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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자연과 인간

박영택

강경구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산과 그 산과 함께 살아온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의 질감 같은 것을 그려왔다고 기억된다. 물론 이렇게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좀 곤란하다. 그의 작업의 스펙트럼이 꽤나 넓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그런 것도 같다. 그는 한결같이 자연과 인간을 그려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서울풍경과 여전히 그 주변을 오랜 시간 지켜왔던 인왕산과 북한산 등이 그가 즐겨 그려온 대상이다. 이 대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그의 화면위로 호명된다. 그러니까 거의 일관되게 산과 사람을 그려왔다. 산은 멀리서 조망되기도 하고 그 내부(숲)로 육박해 들어가기도 한다. 산만 그려질 때도 있고 산과 건물과 사람들이 함께 그려지기도 하고 숲속에 사람들이 풀처럼 나무처럼 자리하기도 하는가 하면 사람의 얼굴만 단독으로 산처럼 일으켜 세워지기도 했다. 사람의 얼굴도 시간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독자한 풍경이다. 산은 자연이고 전통이자 역사이며 삶을 둘러싼 환경이기도 하다. 특히나 동양문화권에서, 미술사에서 혹은 한국 전통미술의 맥락 안에서 여러 의미를 풍성하게 거느리고 있는 대상이다. 우리에게 산은 단지 산이 아니다. 아울러 그 산들은 이 땅에서 살다간 이들의 숨결과 생애와 목숨의 자락들을 죄다 기억하고 있는 공간으로 설정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산들은 수 억 년의 시간을 살아온 존재이기에 그 산을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의 두께를 의식해내는 일이다. 동시에 그는 그 대상을 반복해 그려나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설정한 어떤 정점을 향해 육박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산/자연은 그런 수행의 매개로 자리한다. 그것은 관념적이거나 다소 추상적인 산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뉘앙스를 가진 산이자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그 산들과 함께 해온 아득한 시간의 겹들이 그의 중첩된 붓질과 붓질 사이로, 물감과 물감의 층위로 번지고 흐르면서 뜨거운 그 무엇인가를 안겨주었다. 껍데기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소재에 머무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적이랄까, 인문적이랄까 더러 전통과 역사를 의식한 그런 풍경이었다. 그 위로 다분히 동양화의 전통에 대한 해석, 모색이 얹혀져 있었다. 그는 그 모색의 가장자리를 최대한 넓히고 밀어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되 자신이 지닌 ‘회화관’을 일관되게 유지해나가는 작가다.
학고재에서 만난 그의 근작 역시 산과 사람이었다. 자연과 인간일 것이다. 그것이 그의 그림의 화두인 듯 싶다. 화두는 주문처럼 반복되어 중얼거린다. 산은 더욱 격렬하고 뜨겁고 드라마틱하다. 아득한 시간을 견뎌온 노년의 암산들이 흑백의 모노톤으로 조율되어 있다. 먹이 아니라 아크릴을 머금은 분방한 붓질이 범벅져있다. 형언하기 어려운 기운과 감정이 꿈틀거린다. ‘기운생동’하다! 쫄깃하게 달라붙은 붓질들이 종이의 표면을 애무하고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피부를, 육체를 격렬하게 촉각화시킨다. 수묵이 아니어도, 종이가 아니어도 그이의 그림은 동양그림이 대상을 그리고자 하던 본연의 의도와 느낌을 온전히 전해주는 쪽이다. ‘팔닥거리는’ 모필의 힘들이 종이의 단면을 두드린다. 종이는 여러 소리를 낸다. 청각과 촉각과 마음의 이런저런 곳들 또한 마구 두드리는 그림이다. 그래서 마치 그 산 앞에 실재로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동양의 그림이 단지 망막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통감각적인 그림으로 머릿속에서 실제를 강렬하게 연상시켜주는 것이라면 그의 그림 역시 그에 근접한다. 그런데 이런 산 그림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그림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것이다. 그것이 보다 원숙해지고 더 매력적이 되고 있지만 ‘스타일리쉬’한 느낌도 더러 든다. 사실 이번 전시에 작가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물과 함께 한 사람 그림일 것이다. 물 안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듯한 이 거대한 남자는 ‘저무는 바다’와 ‘썰물의 바다’에 ‘누워있거’나 ‘파도타기’를 즐긴다. 그는 알몸으로 유희한다. 목적의식적이라기 보다는 그저 바다라는 공간, 환경에서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에 순응한다. 마치 인물산수화에서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면서 우주자연의 이치를 궁구하거나 흐르는 시간을 헤아리고 덧없는 인생을 깨달아 가던 현자들의 느리고 부동에 가까운 몸짓을 연상시킨다.
그는 가끔 ‘바람소리’를 듣거나 ‘북서풍’이 오는 것을 망연히 응시하기도 하고 ‘물거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편 ‘허튼 날개짓’도 해본다. 어둠이 내리면 먼 ‘북두칠성’을 향해 몸을 밀고 나가보기도 한다. 바다, 물은 삶을 은유하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역사 또한 암시한다. 고독한 한 개인이 자연/삶에 대처하고 있는 이 퍼포먼스는 아마도 작가 자신에 대한 상징적 초상에 가까워보인다. 사실 그것이 익숙한 상징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삶과 그림의 길을 다둑이고 자신이 설정한 정점, 앞서 언급한 ‘화두’를 밀고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앞세우는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로서는 이 그림이 다분히 선언적인 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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