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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박영택

조선시대의 백자 접시 속에 얼음에 박힌 딸기가 담겨있다. 차가운 냉기와 신선함이 동시에 다가온다. 더러 초록의 잎사귀들도 그 얼음을 뚫고 삐져나와있다. 무슨 냉장고 선전에나 나올 만한 이미지들이다. 생명체의 한 순간이 얼음으로 박제된 것도 같고 차갑고 혹독한 시련 속에서 여전한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자연의 힘과 치유에 대한 메시지 같은 것도 떠오른다. 그런가하면 순백의 백자와 투명한 얼음, 빨간 딸기와 초록의 이파리, 접시/완의 외부에 그려진 절파풍이 완연한 매화가지와 잎, 그리고 해학적인 장식문양과 정교한 용 문양 등이 대비를 이루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이 그림은 작가에 의해 연출된 ‘메타픽션’이다. 마치 실제 대상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가상의 장면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조선백자, 도자기에 대한 한국미술계의 오랜 취향 및 한국적인 미감에 대한 일련의 인식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존 정물화의 틀 안에서 색다른 연출로 과일을 담아내고 있다. 다소 초현실적 발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극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다분히 미니멀리즘적 구성에 한국적 소재가 혼융되어 연출되고 있다. 이런 방식이 최근 극사실주의 그림의 상당수에 해당한다. 여기서 얼음은 곧 서서히 녹아내릴 것이고 딸기와 이파리들은 고체상태에서 풀려나 다시 싱싱하게 살아날 것을 연상시킨다. 새삼 이미지는 죽음, 부동과 관련되어 있다는 (정물 역시 그렇다) 사실을 보여준다.
여하간 최근 극사실적인 정물화들은 이전에 비해 분명 의미를 간직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여전히 기존 정물화의 유형과 틀 안에서 이를 용인하면서 진행된다. 그것은 모종의 주제를 아우르면서 다분히 한국적, 동양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장애가 없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정교한 손의 놀림, 수공적 솜씨가 얹혀져야 한다. 현재 우리 화단은 겉으로는 회화의 부흥기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스타일이나 방법론의 획일화나 유사한 작업으로의 경사 등도 눈에 띄고 단지 손에 기능이나 묘사력에 의존하면서 일을 회화의 복원 내지는 손의 회복 같은 거창한 의미로 포장하거나 작업의 알리바이로 삼으려고 한다는 생각도 든다. 새삼 미술행위가 눈이라는 감각기관과 관계되어 이루어지는 형국을 조망하고 그 눈속임에 기반한 조형행위의 여러 상황들을 통해 미술의 가장 오래된 본성이 지금 부활하는 이유 및 그 전략과 어법, 특성들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최근 그림들이 이전의 그림들과 어떤 변별성을 지니고 있는지 또한 회화에 대한 어떤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성민의 매력적인 정물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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