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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날의 전시들

박영택

날이 너무 더우면 전시장 다니는 일이 무척 고생스럽다. 전시장 안이야 시원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여름에는 많은 전시장을 가지 못한다. 올여름에도 전시는 그닥 많이 보지못했다. 전시를 보려면 온전한 하루를 비워놓아야 하는데 우선 그 시간을 내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고 그 다음 다리품을 팔아 이곳저곳을 싸돌다녀야 하는데 이 또한 보통 부지런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시간과 몸이 다 마땅치 않았다. 특히 몸이 가쁘고 지쳤다. 명색이 미술평론을 한다면서 그리고 누추한 잡문을 끄적이는 처지에 전시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는 것은 분명 죄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다. 사실 나는 오로지 그 죄의식 때문에 책을 보고, 전시를 보고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늘상 더 많은 죄의식을 심어줄 뿐이다. 빌어먹을 죄의식! 그래도 꼭 봐야할 것 같다는 전시나 대충 챙기고 나머지는 도록으로 만족했다. 여름이고 휴가철이며 방학이래도 우리집 우편함에는 거의 매일 전시를 알리는 인쇄물로 가득하다. 집에 돌아와 그 우편물들의 옷을 벗기고 뜯어내는 일은 마치 의식같이 진행된다. 비닐과 종이봉투를 걷워내고 속살같은 도록과 엽서를 통해 누군가의 전시소식을 접한다. 그것들은 꼭 와서 봐달라는 투정아닌 투정을 은밀히 감행한다. 아니 투정하지 않아도 당연히 가서 봐야할 것 같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간 봐야한다는 생각과 솔직히 볼만한 전시가 없다는 느낌이 길항한다. 서로 싸운다. 여전히 전시는 무성하고 온갖 아트페어가 연이어 열리고 시장은 뜨겁고 재기발랄하고 손재주 뛰어난 작가들은 풀처럼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미술이 아니다’라고 다짐같은 생각이 흐른다. 죽은 박이소가 번역한 책제목이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였다. 우리가 미술이라고 알고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를 위시해 다 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그림이 미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은 근대에 태동된 개념이고 근대 이후 우리는 ‘미술’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체득해오고 있다. 근대 이전에 존재한 이미지들은, 우리가 미술이라고 여기고 있던 것들은 사실 미술이 아니라 주술적인 물건이거나 종교적 오브제들이었다.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미술이란 한 개인의 주관의 산물, 독창성 혹은 미술이란 개념과 제도를 의식해서 만들어낸는 그 어떤 것으로 지칭된다. 미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 질문을 내재화해 이를 작업으로 구현하는 일이 그것이다. 작품이란 주어진 매체의 조건에 대한 작가마다의 입장과 그에 대한 선택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의 미술사의 궤적과 좌표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는 것과 맞물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늘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인류전체의 미술사의 기록에 개입하고 간섭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를 덧칠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동시대 작가들은 저마다 미술에 대한 생각,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 결국 작업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사유의 구조를 또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이란 우리에게 한 작가가 자신의 미술에 대한 생각과 그 미술이란 것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 지를 예리하게, 절박하게 더러는 흥미롭고 진지하게, 소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만나는 일이다. 한 개인이 간직하고 품고 있던 모든 것들이 육체 밖으로 외화되어 나오면서 그것들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던 미술/이미지에 대해 또 다른 발언과 감각과 감수성의 총화로 서늘하게, 아찔하게 삐져나오는 것을 목도하고 만나는 일이고 알아채는 일이다. 그것이 미술감상이고 전시장 가는 궁극의 목표다. 나하고는 다른 이의 감각과 사유를 만난다. 그를 통해 나는 한 수 배운다!

한 여름 우편함에 가득한 전시 홍보물을 보면서 나는 한 수 배우고 싶은 미술의 부재에 머뭇거린다. 내가 받아본 도록의 대부분은 극사실적인 묘사에 목숨을 걸고 있거나 팝아트와 유사한 작업들, 그것도 대부분 중국현대미술의 아류 같은 것이거나 희한한 눈속임과 재료의 연금술 같은 것으로 볼거리, 상품을 만드는 작업이다. 별다른 고민없이 화면에 들러붙어서 무아지경으로 그려대는 일이거나 자본주의시장의 ‘신상’처럼 시장에서 선호될 만한 것, 선호되고 있는 상품에 기생하는 것이 오늘날의 미술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 미술이 아니다’. 미술이 아닌데도 미술이라고 강변되거나 논의되는 한편 심지어 너무 잘 팔리기까지 한다. 작품을 산다는 것은 한 작가가 지닌 독창적이거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그만의 미술에 대한 생각과 감각을 사는 일이다. 정신을 산다고 해도 무방하다. 몰론 놀라운 손재주를 살 수 도 있다. 그러나 그 손은 한 작가의 미술관을 보여주고 드러내고 육화하는 손이어야 한다.

전시를 본다는 것은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을 쳐다보듯 ‘아이서핑’ 할 수도 없다. 그 일은 자신이 직접 작품 앞에 서서 온 몸의 감각밸브를 죄다 열고 반응하고 기다리며 읽고 느끼고 생각에 잠겨야 하는 일이다. 전적으로 자신과 작품이 만나서 파생되는 사건이 작품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시간을 요하고 마음의 여유로움과 풍만한 감성으로 찰랑거리는 몸, 그 액체성과 휘발성의 육체가 유지되어야 한다. 놀러가듯이, 모험을 하듯이 다니는 일이며 빽빽이 꽂힌 책 사이로 미끄러지면서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도서관의 스릴과 공들여 문장과 문장을 횡단하는 즐거운 독서와 어느 순간 숨이 멈춰서 적막과 충격이 관통하는 체험이 동시에 교직하는 그런 경험이 전시 관람이다.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한 작가의 근작을 보는 일은 한 작가의 성숙과 현재 생활과 심리의 변화, 관심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이다. 반면 새롭게 접하는 작가들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일이며 그로인해 새로운 정보와 한 인간의 감성과 감각, 기억과 상처 등을 접하는 것이다. 너무 격한 변화는 불안과 헷갈림을 주고 지나친 불변은 완강한 관습의 힘과 정체감을 준다. 수 십 년 동안 똑같은 작품을 하면서도 여전히 아직도 다 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죽을 때까지 해여 될 것 같다는 작가도 있고 그런가하면 거의 매년 작품이 바뀌는 작가도 있다. 그러니까 전시 때 마다 새로운 것을 발표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작가나 오로지 한 가지 소재, 주제를 거듭하면서 그것 자체로 작업의 정당성을 삼으려는 이들이 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재능 없음을 무모한 노동으로 때우는가 하면(이를 손작업의 회복, 회화의 새로운 부흥이라고 부추킨다) 어떤 이는 급변하는 현대미술의 여러 이슈들을 적절히 끌어들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거듭하며 지속해서 주목을 받고 살아남으려는 연출을 해낸다. 사실 그림 그리는 일도 결국 세상사는 일과 마찬가지라 그림 그리는 일 역시 저마다 작가라는 지위, 화단에서의 명망성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전략에 다름 아니다. 사람마다 다 살아남으려는 처절하고 절박하고 더러는 야비하고 속이 보이는 행위가 미술과 관련지어 나오는 곳이 바로 화단이다. 그래서 학벌과 경제력, 화단에서 권력을 행사는 이들과의 친목이나 인간관계 등은 그래서 미술인들에게 핵심적인 문제다. 작업을 하고 전시를 만드는 일, 도록을 제작하고 평론가의 글을 받고 오프닝을 하고 그 오프닝에 온 사람의 수, 그리고 전시 소개가 신문, 방송에 실리고 잡지에 리뷰가 기재되는 모든 일은 바로 한 작가가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작품이 팔리고 생활을 하고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욕망이 쟁점화 되어 부딪치는 곳, 비록 겉으로는 평온하고 고상하고 우아함이 흐르고 마냥 순연한 예술이 욕망만이 자존하는 곳 같은 전시장도 사실은 인정받고자 하는 가장 세속적인 욕망이 연출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전시장을 다닌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만 보고 오거나 한 작가를 알고 오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이 얽혀있는 장을 파악하는 일이다. 전시장에 걸린, 가설된 작품이야말로 동시대의 핵심적인 미술교과서고 텍스트다. 그곳에 바로 현재의 미술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술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그렇게 표명하고 있는 작가들이 생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 누가 미술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의미심장하고 기억해두어야 할 만한 말을 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부지런히 찾고 만나고 그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무더운 여름날 전시를 알리는 무수한 홍보물을 보면서 기억하고 싶은 이를 찾는 일이 무척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전시장 가는 발길이 머뭇거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자신의 게으름이 우선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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