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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 사진으로 꿈꾸기

박영택

이지영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상상한 것을 찍었다. 현재 자신의 마음상태나 생각하고 있는 것들, 그러니까 머릿속과 마음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서술적인 장면과 상황은 자신의 삶에서 연유하는 다양한 상념을 가시적인 풍경으로 펼쳐보인 것이다. 사진은 피사체가 존재해야 가능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촬영할 수 없다. 상상이나 환상 같은 것 그리고 구체적인 대상이지만 그로인해 번져 나오는 상상되어진 것들, 보고 싶은 것 말이다. 그러나 본다는 것, 그리고 보인 다는 것은 단지 망막에 의해 확인 가능한 것들만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마음으로 보고 의식으로도 또는 기억과 꿈속에서도 본다. 본다는 것은 경계없다. 사진이 실재하는 사물, 대상, 풍경에만 머물 수 없는 이유다. 하긴 모든 사진은 구체적인 사물을 보여주면서 그로부터 번져나오는 또 다른 장면을 상상하게 해주는 한편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보여준다. 낯설게 본다는 것은 주어진 대상의 표면에서 빠져나오는 일이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연상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지영은 자신이 보고 싶은 상황을 연출했다. 연극무대나 설치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사진으로 찍히는 순간, 절정을 기다리며 지연된다. 작가는 손수 만들고 그리고 칠하면서 공간을 ‘셋팅’한다. 이 조각/설치는 자신의 심리적 드라마를 재현하고 현실에서 겪는 자신의 상황을 은유하는 여러 내용을 재현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사진이 지닌 인증의 효과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이지영의 작업은 가상적으로 꾸며낸 이미지가 실재의 세계를 대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외형적으로 베르나르 포콘, 샌디 스코글런드 등의 작품에서 엿보는, 이른바 구성된 사진(constructured photography)혹은 연출된 사진(staged photography)에 해당한다. 사진 매체의 순수성이나 특권성을 지우고 이른바 ‘만드는 사진’ 등 예술사진이 그것이다. 이는 사진과 그밖의 조형예술과의 경계가 와해되어 버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상황의 영향 아래 배태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인위적인 조작 없이 그대로 찍어 필름 위에 스트레이트하게 정착시킨다는 모더니즘의 전략을 지운 자리에서 피어난 그 사진은 스스로 무대를 꾸미고 연출하고 연기하거나 가공의 세계를 구축해서 사진으로 찍어나가는 태도를 보여준다. 단지 사진을 찍는 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획, 연출을 하고 이른바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도 그리고 조각하고 나아가 실제 퍼포먼스를 하는 다중의 작가로 환생한다. 사진과 작가에 대한 기존의 상식은 지워진다.
이지영은 가공의 현실을 구축하거나 연극배우처럼 자신이 어떤 역할을 연기하거나, 조각과 회화와 인스톨레이션과 퍼포먼스 같은 이질적인 매체와 소재들을 혼합하거나 인용해서 만들어낸다. 이미 기존의 세계, 이미지, 사물에 저당잡히지 않고 그로부터 더 나아가 보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찍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 사진의 재현능력에 대한 불만, 동시대 시각문화의 현란한 과잉,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무수한 생각거리와 상처, 고뇌의 파장이 너무 크고 이를 표현하기에 사진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그것은 현실공간이 무수한 이미지로 둘러싸여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좀더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앞으로 쎄게 밀어낸 경우다. 더불어 인간의 내부와 외부, 주체와 타자, 현실과 환영, 실재와 가공, 표현매체간의 장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동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그것은 또한 이미 보아왔고 경험했던 이미지들의 차용이거나 동시대 시각문화의 제도 속에서 길들여진 시선의 관습과 기억을 반영한다. 동시에 이미지를 빌어 자신을 표현하거 말을 하는 적극적인 서사의 수단으로 사진을 활용, 도구로 쓰고자 하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사진을 고상한 예술이거나 순수한 매체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미지, 동시대의 무수한 시각문화의 하나로 여기는 경우다. 세계는 온통 이미지로만 되어있고,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이 세계와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그러한 이미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 욕망 그리고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모색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등에 대한 생각을 이미지화하고 이를 실제로 연출한 후 사진으로 담았다. 작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문제를 시각화한다. 여기서 사진은 그것을 증거하고 드러내고 발설하는 매체가 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사회 현실 속에서 주위 환경과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개체로서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되돌아본 자신의 모습을 찍고자 하며 이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사진에는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무수한 상념들과 고민, 불만, 심리적 상처 등에 좌절하기도 하고 더러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는 작가의 모순적인, 분열적인 자화상이 어둡고 우울하게 펼쳐져있다. 덧붙여 학교를 다니는 현재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한, 독립된 성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성년 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의 곤혹스러움과 불안 등도 스며들어있다. 무대처럼 연출된 세트장은 현실 혹은 현재 자신의 마음 속 풍경을 형상화 한 것이자 심리적 드마라를 재현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 위치한 단독의 인물/여자는 작가 자신/분신이다. 일종의 ‘셀프포토레이트’이자 퍼포먼스인 셈이다. 또한 이 작업은 혹독한 시간과 노동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해내면서 한 장의 사진으로 찍히는 순간을 기다리는, 고통을 참는 행위는 다분히 마조히즘적이자 일종의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 시간으로 보인다.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면 그간의 고통스러운 수고의 결과물은 일시에 사라진다. 지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같은 공간에 또 다른 상황이 연출되기를 반복한다. 반복을 통해 자신을 좀더 알고자 하고 상처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며 자기 존재를 대상화하려는 것이다. 자신을 하나의 풍경으로 본다는 것이 무척 어렵지만 의미있는 일, 필요하다는 사실을 들려주고 있다.
유난히 꿈을 많이 꾸는 작가는 꿈속에서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하기도 하고 원하는 데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영화에서나 등장할만한 장면을 만난다고 한다. 꿈은 현실계의 억압과 갈등, 불만과 상처를 치유해준다. 작가는 현실/비현실계의 완강한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꿈꾸기, 상상하기를 통해 억압되고 힘든 삶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 가운데에 그녀의 사진/작업이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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