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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집에 대한 단상

박영택

갤러리 소소의 아름다운 집/공간에는 아주 작은 집의 형태를 지닌 도자가 가득 가설되었다. 집안에 그 집의 꼴을 모방, 반복하는 무수한 집들이 서식하고 있는 셈이다. 개별적인 집이란 공간을 암시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가득 모여 있는 특정한 거주 공간, 집단거주지를 조감하게 한다. 엄청난 양과 다양한 크기, 색상을 지닌 도자기 집들은 오늘날 집과 거주공간, 도시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독자한 시각적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로서는 집과 관련된 메시지보다 도자의 표면에 얼룩지는 여러 효과, 색채의 솜씨에 주목한다.
사실 집은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집 하나하나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살고 있을 사람들의 몸과 생존의 행태를 암시하게 해준다. 문화적이고 심리적이자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복합적인 공간이다. 작가가 만든 이 작은 집들은 하나씩 어디론가 분양해나가듯 팔려나갈 수도 있고 그 개체들이 모여 군집의 거주공간을 지도화하기도 한다. 마치 아파트 모델하우스 안을 둘러보면서 자신들이 살 집을 상상하고 선택하는 행위를 떠올려준다. 그러나 그 엄청난 경쟁과 경제적 부담 대신 관람객들은 이곳에 잉크병 크기 만한 집들을 어렵지 않게 구해갈 수 있을 것이다. 집 없는 이들과 아파트청약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집의 구매라는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해프닝에 해당한다.
전시장 벽에는 도판 드로잉이 걸리고 바닥에 직접 놓여지거나 좌대 위에 올려져있다. 경사진 지붕면과 정면에 뚫린 출입구/문을 암시하는 기본적인 집의 꼴을 지닌 이 도조는 조각으로 자존하면서도 그 표면에 스며든, 착색되고 얼룩진 매력적인 색채와 줄무늬, 크랙 등에 의해 하나의 회화로 다가온다. 따라서 그것은 흙의 물성과 특성을 색과 표면의 균열 아래 통어하면서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환생시키는 편이다. 따라서 이 흙작업은 조각/부조, 회화와 설치 등으로 확장되고 아울러 동시대 삶의 이슈내지는 문제의식을 발화하는 매개로 삼는 다양하고 다각적인 전략아래 놓여져있다. 지극히 사적이고 밀폐된 공간, 세상의 끝이자 세상 밖으로 열려있는 유일한 공간, 가족과 가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곳이며 출산과 생육, 교육과 훈육, 금기와 억압, 자본과 노동,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끝없는 갈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다소 처연하고 복합적인 공간은 무엇일까? 바로 집이다. 그래서인지 이경주의 작업은 동일한 집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집을 찾아서>,<그 남자의 집>, <그 여자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 이미 제목 자체가 집이란 공간이 여러 맥락에서 해석되는 공간, 장소임을 증거하는 동시에 보는 이들이 각자 집에 대한 단상을 떠올리고 상상하도록 권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또 다른 몸으로, 성적 정체성과 연관되어 다가온다. 모든 공간은 그 공간에 들어와 사는 이들의 몸과 정신을 일정하게 훈육하고 길들이고 체계화한다. 집, 방이란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사인성의 공간이자 사회와 분리되고 경계지워진 곳이며 사회적 삶으로 나가기 위한 휴식과 충전, 도모가 진행되는 곳이다. 자신의 구체적인 삶, 누추하고 비근한, 그러나 매일 매일의 삶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곳, 매일의 사유와 경험이 진행되고 축적되는 곳, 그러한 집을 통해 일상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건져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에게 고립되고 유폐된 공간에서 공간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거나 밖의 세계와의 은밀한 소통을 욕망하기도 할 것이며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에서 탈출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그런가하면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그 추억의 장소에서 한 가족, 가정의 일상사를 기억시키는 역사적 공간인 동시에 매우 은밀한 가족 구성원들의 호흡이 서린 곳이 다름아닌 집이기도 하다.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곳, 피의 소중함이 명분으로 강제하는 것, 가족과 연인 그리고 나만의 절대적인 고립된 공간, 익숙함과 친밀함,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곳,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이질적이며 두려운 공간이기도 하고 타자에게는 완강하게 밀폐된 공간이기도 한 것이 집이다. 이경주는 집,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읽어보는 한편 동시대에 집에 대한 관심과 재현이 무엇 때문에 뒤따르고 있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렇게 여러 의미를 줄줄이 매달고 있는 전시지만, 또한 전시공학적 측면도 흥미롭지만 그것보다는 이 도자의 피부를 이루는 아름답고 견고한 색채가 돋보인다. 그는 회화적인 숨결과 색채의 미감을 흙 안에 함께 공존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그것은 굳이 집이란 형태안에서만 머물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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