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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남 / 길고 긴 여정으로서의 회화

박영택

최근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 미술관의 로비 상단 벽에 이상남의 회화(풍경의 알고리듬)가 설치되었다. 몇 년 전 강남 역 주변에 위치한 LIG생명 본사 사옥에 걸린 대형 회화작업과는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었다. 회사 사옥 내의 로비와 회의실 등에 걸린 그의 회화는 그 규모와 볼거리에서 단연 인상적이었다. 다소 놀라웠고 워낙 강도가 쎈 그런 회화였다. 그러나 사옥 내 회의실이나 임원들의 사무실 주변에 걸린 그의 작품을 일반인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구경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로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반면 경기도미술관 로비 벽면에 엄청난 크기와 규모로 설치된 근작은 이 미술관의 상설전시이자 붙박이 오브제로서 건축 공간과 함께 영구적으로 보는 이들을 맞이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경기도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가장 오랫동안, 우선적으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미술관 건물이나 그곳에서 전시되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시선을 잡아둘 것이다. 한바퀴 휙하고 돌면서 1, 2초 정도의 시선을 주고 사라지는 관객의 눈과 몸/신경을 일정 시간 잡아두면서 자꾸보게 하는 힘, 그리고 보다 보면 이상하게 끌려들어가고 약간의 어지럼증이나 기묘한 환각 같은 것을 자극하는 한편 그 재질이나 공정 자체에 대한 경이로운 궁금증, 표면에 부유하는 기호, 이미지에 대해 알 것 같기도 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무엇을 재현한 것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한 추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해서 그 사이에서 방황하게 하는 그런 이상한 회화를 접할 것이다. 시선을 은연중 무력화시키는 한편 자꾸 덤비게 만드는 그런 회화다. 분명한 것은 그 회화 표면이 유혹한다는 사실, 다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다분히 고도소비사회의 감각적 이미지에 닮아있기도 하다. 익숙한 도상이나 기호들의 편집이자 증식인데도 불구하고 낯설고 어렵지 않고, 또한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복잡하고 정적이면서도 무척이나 리드미컬하고 유동적인 그런 이미지를 안긴다. 너무나 깔끔하고 기계적으로 마감된 그 숨막힐 듯한 치밀함으로 조율된 화면 속에서 나눗셈부호나 매듭 같은 또는 원과 선들이 음표처럼 경쾌하게 떨고 있거나 모니터의 신호나 전자파처럼 흘러다니는 환시를 준다. 그것은 마치 종교적인 도상이나 신비스런 주문, 부적의 도상들을 연상시킨다. 그 풍경을 가만히, 그리고 오랫동안 응시하다보면 흡사 옵아트의 표면처럼 착시에 시달리고 뇌에서 마구 진동하는 시각체험을 겪거나 혹은 반복되는 사이키한 음향 내지는 티벳 수도승의 주문을 외우는 소리에 적셔들어가는 듯한 몽환적 체험을 겪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더없이 신비스러운 체험을 안긴다. 마치 몽환적인 상태, 황홀경이나 엑스타시적인 경험지대로 내모는 듯도 하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중독성이 있다. 그 그림과 독대하고 있다보면 저 세계로, 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듯 하다. 그것은 마치 산수화를 감상하는 태도나 체험과 유사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곳은 기존 미술관 공간에 회화가 개입되고 가설되면서 새로운 비주얼 경험, 시각적 충격을 던져주는 한편 회화에 대한 또 다른 매력을 자아내려는 그의 전략이 야심만만하게 구현된 자리다. 1층과 2층을 번갈아 오르내리면서 올려다보고 내려다 보는 시각여행을 하다보면 평면회화가 이런 시각적 강도와 함께 여러 생각을 자아내게 해주는 통로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는 이들의 시선을 강하게 빨아들이는 공간으로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런 측면은 그가 여전히 평면회화가 오늘날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매우 치밀한 전략, 전술 아래서 구현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 현대미술이란 것 자체가 미술의 개념 자체를 부단히 갱신해나가면서 그 삶을 연장해오고 이를 정교한 논리로 뒷받침해왔던 역사임은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 따라서 이상남이 뉴욕 화단에서 자신의 그 전략을 나름 인정받고 알리바이를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생존해왔음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상당히 전략적인 아티스트이자 오늘날의 의미있는 회화를 만들어내려는 발명가이며 그 의미를 논리적으로 설파한 논객이자 변호사이며 동시에 인정을 받고 성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냉정한 승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논리와 그 결과물인 회화가 여전히 당대에 의미있는 회화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미술계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비평가나 미술사가, 큐레이터들의 지지가 있어야 하고 이들에 의해 신문과 잡지에 리뷰가 실려야 한다. 어쨌든 그는 냉혹한 현대미술계에서 회화에 대해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파들어가고 있는 작가로 인식되고 지지를 받고 있고 그만의 독자한 문법, 보이스를 지닌 이로 받아들여진 듯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이 경기도 미술관의 그 거대한 벽면에 야심적으로 결렸다!

회화란 단순하게 말해 일정한 평면에 일루젼을 주는 장치다. 그리고 이 개념은 매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당대의 테크롤로지와 이미지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회화는 사실상 무력해졌다. 구상과 추상회화란 이미 과거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러나 회화는 죽지 않고 매번 새롭게, 다르게 출현해서 다시 살아날, 죽어갈 기회를 엿본다. 이상남의 회화는 지금 이곳에서 유효한, 유효할 수 있는 회화를 질문하는데서 파생한다.
우선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도상, 이미지와 기호들을 죄다 호명한다. 몇년 전 여름 뉴욕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내가 다소 감동을 먹으면서 본 것은 그의 작품들이 아니라 십 수년간 그가 공부한 흔적, 그러니까 작은 드로잉북과 수첩에 빼곡히 쓰고 그려놓은 엄청난 양의 자료들이었다. 현대미술을 지독하게 공부하고 이 세상의 모든 이미지들을 그려가면서 결국 그 안에서 자기만의 독자한 형상, 이미지를 만들어나간 자취들이었다. 당시 그는 나에게 '나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 자료들을 죄다 읽어야 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주눅이 든 나는 속으로 언젠가 시간을 내서 그의 작업실에 한 몇 달간 틀어박혀 그 자료들을 죄다 읽어야 겠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뭇 비장하게 말이다.

오늘날 그의 트레드마크가 된 이미지란 사실 이미 존재한 도상들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이른바 레디메이드이미지들이다. 그는 각 문명권이 남긴 여러 도상들과 부호들을 수집하고 이를 마치 껍처럼 씹어대서 자기 식의 변종을 만들어놓았다. 기성이미지에 기생해 자기만의 매혹적인 도상을 만든 것이다. 인문학적이고 종교적이며 수학적, 과학적인 그 기호들이 그의 몸안에서, 의식안에서 착종되고 재배열되어 새로운 존재로 환생했다. 그러니까 그가 그려놓은 이미지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형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연에서 이미지를 추출했던 오랜 전통이 지워지고 이제 문명화된 사회에서 만들어낸 오브제들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얻는다. 그러니까 문화적인 형상 뒤에 숨겨진 문법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기억하고 씹어대서 만든 이미지다. 그만의 독해로 다르게 해석하고 씹어 만든 이미지란 얘기다. 이 하이브리드적인, 혼혈적인 이미지는 기원을 가지면서도 기원을 지우고 의미를 간직하면서도 그 의미를 해체시키고 결국 단호한 시각적 존재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이미지는 여전히 어떤 자취를, 그림자를 동반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보는 이들 각자의 자의적인 관심과 독해에 달려있다. 작가는 말하기를 문명화된 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그 기호, 이미지의 이면에는 한결같이 영혼을 불러내는 기구로서의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미지를 가지고 유희한다. 놀이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영적이고 신비스러운, 다분히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도상을 창조해냈다. 신비주의적 내음을 깔고 매혹적인 가공의 솜씨와 버무려내고 동시대 회화로서의 의미를 변호하는 논리를 갖춘 그만의 그림이 탄생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 앞에서 명상과 참선이 가능하기를 바란다. 특정 실내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정화와 치유, 명상과 재미까지 있기를 희망한다. 이른바 영성적인 회화말이다. 바람이 불면 영혼을 느끼듯이 그가 만든 이미지 역시 영혼을 만나게 해주는 그림이란 것이다.
주어진 평면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기이한 장소다. 물리적인 실체로서의 납작한 화면은 합리적인 평면, 표면인 동시에 무척이나 비합리적인 요소를 간직한 묘한 곳이다. 그러니까 이 평면 회화는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하고 꿈꾸게 하며 의식과 마음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여행, 여정을 가능케해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산수화의 화면 공간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림은 결국 정신적 활력 속에서 가능하다. 망막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활력 속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 다름아닌 동양화이듯 말이다. 이처럼 그의 회화는 보는 이들의 의식과 마음을 이곳 저곳으로 끌고 다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회화를 통해 관자들이 롱저니하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회화의 매력이다.
또한 그는 오늘날 이미지홍수 속에서, 도시의 비주얼한 폭력 속에서 어떻게 회화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둘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막강한 시각이미지 홍수에 길들여져 부동의 평면회화 앞에서는 단 5초도 못견디는 관람객들에게 좀더 시선을 연장시키고 몇 번씩이고 다시 보게 하고 접근시키며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화면을 궁구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매혹적이고 무서운 회화를 열망한다.

이번 설치적 회화는 스테인리스스틸에 아크릴우레탄으로 만들어졌다. 이른바 자동차도료를 통해 매끈하고 최상의 질을 지닌 그런 표면을 형성했다. 아울러 거대한 크기로 보는 이들의 신체, 의식을 흡수한다. 이른바 숭고함이라는 포스터모던 전략도 슬쩍 감지된다. 우리는 그 회화 안에서 이동한다. 동시에 빛/조명을 받으면 표면은 반짝이면서 육중한 무게감을 홀연 지우고 존재의 가벼움으로 출렁인다. 흑과 백의 색상 대비 역시 주변의 모든 색을 수렴하고 이른바 물성으로서의 색채로서 자족한다. 대단한 껍질, 표면으로서의 설치적 회화인 셈이다.

너무 강렬해진 건축과 미디어아트와 무수한 시가적 볼거리가 흘러넘치는 이 이미지과잉의 시대에 그와 맞붙어서 경쟁할 수 있는 그런 회화, 앞서 언급한 그 모든 것을 죄다 품고 흡수해 내는 회화, 동적이면서도 속도감이 나고 장소특수적인 작품으로서의 설치적 회화의 가능성을 간직한 그런 회화를 그는 열망한다. 그러면서도 당대의 테크롤로지, 그리고 인문학과 맞물려 빚어낸 이른바 통섭으로서의 회화, 아울러 명상과 참선이 가능한 회화, 무빙하는 회화, 보는 데서 머물지 않고 만지고 싶은 촉각적인 그런 표면을 지닌 회화, 이미지 괴물의 시대에 맞서 여전히 회화만의 매력을 지닌 그런 회화 또한 야심만만하게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의 꿈이 빚어내는 회화의 여정은 앞으로도 우리들의 시선과 의식을 마음껏 교란할 것이다.





<인터뷰>

: 오랜만에 보는데 몸이 무척 말랐다. 이번에 매우 야심적인 설치적 회화를 선보였다. 어떤 작품인가?
: 경기도미술관 로비벽면에 설치된 이 작품은 약 3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 대작이다.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든 큰 공사이자 설치하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렸다. 미술관건물에 회화가 위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지점을 모색해본 작업이다. 금세기에 와서 회화가 맥을 못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근 미술관건축이 작품을 적절히 수용하는 공간이기보다는 건축가 자신의 작품성이 강조되는 형국인 점에 착안해 그에 대한 대안을 생각해봤다. 새삼 건축과 회화가 서로 편하게 소통하는 한편 건축과 회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 단지 미술관 벽면에 걸리는 회화에 머물지 않고 공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그런 차원으로 최근 작업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가?
: 글쎄 꼭 그렇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이 미술관 건물에 그림이 들어오는 일이었기에 공간을 좀더 적극적으로 고려했다. 사실 평면회화보다는 공간에 더 관심이 있긴 하다. 나는 회화에서 설치적 매력을 적극 차용했다. 이번 작업은 건축가가 남긴, 곧 폐기되거나 이젠 별 쓸모가 없어진 건축도면을 가지고 작업의 아이디어로 삼았다. 상상의 시점이 그 도면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나로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된 기록화, 서사적인 벽화가 아니라 그야말로 주변 환경, 건축과 소통 할 수 있는 회화를 생각했다. 같은 무게로서 부딫치는 데서 오는 충격을 지닌 그런 회화말이다. 건축이 가지고 있는 요소와 함께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회화를 생각해보았다. 따라서 이번 작업은 단순한 벽화가 아니라 설치적 회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더 맞을 것이다.

: 경기도미술관 로비가 무척이나 산만한데 이 공간에 가설될 회화를 어떻게 고안했는지?
: 2층에서 내려다보면서 무빙하는 충격과 재미를 염두에 두었다. 흑백의 색감이 주변 색상을 죄다 흡수할 것이고 조명에 의해 반짝이는 표면은 존재의 가벼움을 주면서 육중함을 상쇄한다. 아울러 보는 이들이 신체접촉을 꿈꾸고 더듬어볼 수 있는 그런 시선을 유인해내고자 했다. 먼거리에서 보면 건축의 일부로서의 회화이자 건축의 단순한 데코레이션에 머물지 않고 관자들이 5초 이상 시선을 머물게 했으면 했다. 분명 회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 나는 이른바 비주얼한 롱저니를 할 수 있는 그런 회화를 생각했다.

: 벽면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 한마디로 1mm와의 전쟁이었다. 벽면이 고르지 않고 엉망이라 일자로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일일이 빔을 만들어 고무로 채워가면서 각 패널들을 퍼즐맞추듯이 이어붙였다. 한국의 건축노하우(외장처리)는 일품이다. 무척이나 섬세하게 완성되었는데 뉴욕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당대의 테크놀로지와 아트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본다.

: 본인의 회화는 다분히 전략적이란 생각이 든다. 왜 여전히 회화이며 당신이 생각하는 회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 전략적이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내가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양에서 온 한 화가가 회화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파고 있다는 인식을 주었고 그것이 그들의 관심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가는 칭찬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들이 내 작품에 관심을 갖게 하며 내 작품 앞에 불러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리뷰를 받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럭키한 존재다. 나는 나만의 문법, 보이스를 가지고 있는 회화를 만들었다. 발견했다고 본다. 나는 이미지 괴물시대에 여전히 의미있는 회화를 생각한다. 건축공간을 끌어들이고 미디어아트를 삼키고 모든 것이 가능한 그런 회화를 열망한다. 회화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꿈과 상상, 정화와 치유 그리고 명상과 재미까지 말이다. 회화만이 매력이라면 그것이 롱저니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 이른바 레디메이드이미지를 차용하고 껌처럼 씹어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부려놓은 기호, 형상들은 기존 문화권에서 사용한 것들이고 그것들을 배치한 표면은 기묘한 정신적 세계를 풍경처럼 만들어준다. 다분히 종교적이고 영성적 느낌도 난다.
: 사실 내 작품의 아이콘은 미술사에서 정리된 것을 가지고 한다. 말이 안되는 것을 가지고 말을 만든다. 아니 말이 되게 한다. 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합리와 비합리, 아날로그와 디지털, 회화와 건축,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샛길로 간다. 그 사이에서 산다. 회화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지 포용할 수 있다. 룰이 없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 영혼을 느끼듯이 내 그림 또한 영혼을 불러내기를 원한다. 그 같은 비합리적 요소들이 회화/예술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유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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