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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취향과 기호의 박물학

박영택

“모름지기 열정이란 혼돈과 가까이 있는데, 수집가의 열정은 기억의 혼돈에 가까이 있다.”(발터 벤야민)

“수집은 실천적인 상기의 한 형식이며 ‘가까이 있는 것’의 온갖 세속적인 현현 중에서 가장 구속력이 강한 현현이다. 사물들이 그를 불시에 습격한다. 근본적으로 수집가는 한 조각 꿈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을 생생하게 현전시키는 진정한 방법은 그것들을 우리의 공간 안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수집가가 바로 그렇게 한다. 세계의 축도를 배치하는 것, 어떤 물건을 전유하는 것은 곧 그것을 자기 이외의 다른 모든 인간에게는 신성시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그것이 자신에게만 ‘관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N.구테르만)

최초의 수집가는 노아일 것이다. 그는 전나무로 만든 배 한 척에 목숨이 있는 온갖 동물 한 쌍을 수집했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어쨌든 그로부터 인간의 역사는 수집의 역사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그 사물을 내 것으로 하고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잉여의 신체로 작동시키는 한편 그것과는 무관한, 완전히 심미적이랄까 혹은 완상적인 사물의 수집과 분류로 나아간다. 서구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의 만개와 더불어 린네와 뷔퐁의 분류법이 등장하면서 수집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난다. 수집이 규모 제일주의를 포기하고 일정한 체계에 따라 분류하고 구성하는 과학적 면모를 갖추자 분류의 구성을 전담하고 진열실을 관리하는 작업도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큐레이터의 기원이라 하겠다. 19세기 유럽의 민족국가와 함께 태동된 뮤지엄은 이른바 민족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유물 약탈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후 상품대량생산이 본 궤도에 오른 20세기는 수집이 너나 할 것 없이 즐기는 일반인의 취미가 되었다. 수집을 통해 개인의 역사나 상흔 혹은 취향을 표현하는 이른바 수집의 개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급속한 삶의 변화와 새로운 상품의 등장은 비로소 지난 시간대의 사물들에 대한 일종의 회고와 추억의 감정을 거느리고 상실되거나 급속히 폐기된 것들에 대한 소멸의 감각을 잉태하면서 그것과 자신의 관계를 사유하게 한다. 너무 이른 사물의 죽음과 너무 빨리 도래하는 것들 간의 사이에서 시간, 속도, 그리고 취미와 취향, 기호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결국 수집가들은 모두 죽음과 소멸의 공포와 싸운다. 망각되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자 내면에 잠복한 열망과 공허함을 건드린다. 사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문명의 변화와 그 역사의 이정표 같은 구실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도구의 표정과 기능 깊숙이 어떤 시대정신을 품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눈들이, 그 사물을 편애하는 손들이 사물을 수집한다. 작고 사소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물을 통해서 어떤 거대 담론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역사와 생활의 핵심을 통찰하고 부재한 시공간의 아우라를 안스럽게 봉인하고자 한다. 수집가들은 사라지는 것들에 유난히 민감한 이들이자 덧없는 생의 잔해를 헤집는 이들이다. 그래서 수집가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서 기억이나 공감, 애정을 담는 이들이다. 그를 사로잡는 것은 정신적인 위로, 즐거움, 기록의 사명감과 자부심 같은 정서이자 학구적 열정 등이다. 동시에 자신이 취향과 기호, 감각을 보다 견고하게 하거나 이를 응고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수집가는 촉각적인 본능을 가진 사람이다.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치 못하고 자신의 몸으로, 손으로 어루만지고 애무를 통해 그 존재아의 일체감을 부단히 꿈꾸는 이들이다.

수집된 사물은 한 개인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시각화한다. 그는 사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그 사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사물이 이제 한 개인의 서사를 대신 써나간다. 자신의 서사를 기록하고 봉인하는 일이 사물의 수집이자 그 사물을 애용하고 이를 자기 몸과 결부시키는 일은 자신을 또 다른 존재로 밀로 나가는 일이 된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수많은 사물들을 수집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삶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사물과 또한 그 기능적인 연관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전적으로 자신이 남과 다른 취향이나 감수성의 소유자임을 가시화하거나 자신의 안목과 감각을 증거 하기 위해 색다른 사물들을 편집증적으로 수집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수집은 자본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취향의 차별화를 노골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른바 계급적 차이를 공략한다. 한편 사물의 수집은 공허하고 권태로운 삶에서 오로지 사물과의 자폐적 관련 속에서만 의미를 찾으려는 병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소유하고자 하는 사물을 사들이고 수집하고 타인의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수집목록에 올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끊임없이 사들이고 쌓아두고 다시 새로운 것을 사들이려는 지치지 않는 욕망에 결박되어 있다. 그것은 소비사회에서 요구되는, 강제적인 삶의 시스템이기도 하다.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기억의 풍경>전은 수집이 개인의 취미 생활인 동시에 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지형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전시는 수집이 갖는 사회적, 예술적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80여명의 수집가와 8명의 작가들이 수집한 실제의 사물과 사진들, 그리고 수집한 사물을 이용해 만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부분적으로 수집품이 들어오지만 그것보다는 이를 촬영한 사진이 천에 프린트 되어 걸개그림처럼 전시되었다. 나로서는 실제 전시보다는 전시장 입구에 쌓아놓은 인쇄물이 무척 흥미로웠다. 전시를 본 이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사물들의 목록, 인쇄물을 챙겨간다. 한정된 숫자에 국한되는 이 선택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수집행위를 추체험시킨다. 적극적인 참여가 동반되는 것이다. 온라인 공모를 통해 선정된 수집가들은 자신들의 수집품의 목록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일상의 숨겨진 가치를 돌아보면서 그것이 넓은 범주의 시각예술행위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결국 이 전시는 개인의 영역에 머물렀던 수집이라는 행위를 공적인 전시공간, 영역으로 끌어들여 예술적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수집에 담긴 개개인의 기억에서 새로운 시각의 역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특정계급만이 혹은 경제적 능력을 갖춘 이들이 골동이나 미술작품 등을 수집했다면(물론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나 특정 사물들을 수집하고 완상하며 즐긴다. 단 미술작품이나 골동들이라기 보다는 상품이 압도적이다. 옷과 구두, 신발, 핸드폰과 전자제품, 그밖의 온갖 것들을 탐욕스럽게 수집한다. 그것들로 자신들의 집안을 매력적으로 꾸미고 몸 또한 그렇게 치장한다. 대중매체와 잡지, 백화점과 홈쇼핑은 그런 욕망을 창궐시킨다. 사물의 소비행위는 결국 기호의 소비이고 그것은 타인과 구별되고 싶은 욕구의 표출에 해당한다. 현대 도시인들은 다양한 방식의 소비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고유성을 드러낸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 지으려는 인간의 허영심과 그것을 이용한 산업자본주의의 소비사회의 논리가 결합한다. 소비자의 소비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산업자본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이 걸린 문제다. 새로운 상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아케이드, 백화점, 잡지, 신문, 인터넷과 대중매체 그리고 영화와 같은 대중예술이다. 대중매체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소비자들이 기호가치가 옮아간 새로운 상품을 계속해서 사들인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시각경험’이다. 이른바 소비사회는 필요 이상으로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환각의 체계이다. 사물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 그것을 반복해서 수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이다. 사물에 대한 욕구에는 특정한 대상이 없다. 나는 어느 특정의 물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욕망한다.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대신하거나 재현하는 그 무엇이 바로 기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옷/사물이라는 실제의 물건이 아니라 가상의 혹은 허구의 이미지를 욕망한다. 소비 역시 하나하나의 기호들(소비들)을 배열하고 통합하여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만들어내는 의사소통이 수단이며 교환의 구조인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소비행위는 그 사회의 코드화된 교환의 체계 안에 들어가는 일이며 그 소비는 타인과 구별되고 싶은 욕구의 표출이다. 여기서 “취향은 사회적 방향감각으로 기능”(부르디외)하는 것이다.

오늘날 작가들 역시 자신들의 수집한 다양한 물건들을 가지고 이를 작업으로 전화시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일예를 들어 장난감과 만화책, 인형 등을 수집하는 현태준이나 다양한 물감을 수집해 이를 회화로 번안해내는 박미나, 길가에서 주운 온갖 오브제를 연결시켜내는 이길렬, 음반수집과 홍경택의 그림, 클래식음반수집과 특히 성악에 조예가 깊은 주명덕의 흑백사진, 역시 음악매니아인 이기영의 동양화작업, 우연히 주은 나무나 돌의 파편들로부터 조각적 이미지를 찾아나가는 김창세, 김구림이나 변종곤, 강익중과 같은, 사물을 빌어 초현실적인 몽상을 유도하는 오브제작업을 하는 작가들 역시도 그런 범주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백자항아리 수집에 일가를 이루었던 김환기와 도상봉의 백자항아리그림, 아프리카조각과 가구를 수집하고 이를 응용해내는 신상호이 도조작업, 탁월한 감식안을 지닌 골동수집가인 권옥연과 김종학의 그림 역시 그 색채나 이미지는 그 수집품과의 깊은 영향관계를 보여준다. 그런 식으로 찾다보면 너무 많은 작가들의 작업이 자신들의 수집품과 깊은 상호관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동시대 젊은 작가들은 특정한 취미나 기호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소비사회에서 욕망하는 상품으로서의 사물들을 직접적인 작품이미지로 차용하고 형상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명품 가방과 화장품과 향수, 구두, 시계, 자동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수집과 관련해서 참고한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발터벤야민, <보들레르의 파리>, 조형준 역, 새물결, 2008
필립 블롬, 수집,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 이민아 역, 동녘, 2005
알렉스라이트, <분류의 역사>, 김익현.김지연 역, 디지털미디어리서치, 2010
이광표, <한국의 컬렉션, 한국의 컬렉터-명품의 탄생>, 산처럼, 2009
조성관, <민관식컬렉션탐방기-실물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 웅진씽크하우스, 2005
윤광준, <윤광준의 생활명품>, 을유문화사, 2008
현태준, <아저씨의 장난감일기>, 시지락, 2002
김혁,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 갤리온, 2007
김갑수, <지구위의 작업실>, 푸른숲, 2009
서은영, <서은영이 사랑하는 101가지>, 그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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