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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부문 / 관념과 드라마 사이의 풍경

박영택

관념과 드라마 사이의 풍경


눈 덮힌 겨울산이고 눈 내리는 겨울바다다. <산수>와 <낙산>은 둘 다 모두 눈이 깃든 풍경이다. 눈은 풍경을 지우면서 채운다. 기이하다. 겨울바다에 눈이 투항하듯 내리면서 그 바다의 적막과 서늘함과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차가운 산 속으로 눈들이 스미고 쌓여 나무와 풀과 돌을 뒤덮어 지우고 남겨두면서 겨울산의 풍경은 종료된다. 산은 정면에서 피하지 않고 차오르듯 자리한다면 눈 내리는 바다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부단히 지워가면서 격렬하게 더러는 느리게 흔들린다. 눈이 내리는 것은 현재의 시간이고 그것은 찰나의 순간들이다. 눈은 망막에 보여지는 순간 이내 사라지고 흩어진다. 바다는 그 눈을 죄다 삼킨다.

해서 눈은 소멸되는데 사진 속 풍경에서 눈은 순간 정지되어 사라지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을 잔영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낙산>은 <산수>에 비해 좀 더 감성적이다. 사선으로 비처럼 내리는 풍경보다는 수직으로, 마치 슬로우모션으로 보는 영상이미지처럼 내리는 눈의 모습이 부드럽고 어딘지 아스라하고 이내 쓸쓸하다. 반면 <산수>는 눈이 그치고 난 산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눈을 가득 덮은 산은 역설적으로 자기 몸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요체만을 강직하게 드러낸다. 겨울산은 눈을 통해 비로소 나무와 줄기, 암벽과 돌만을 신경이나 뼈대마냥 들추어 보여주는 것이다. 산의 본질이, 그 진정한 얼굴이 겨울산 아래 비로소 차갑게 드러난다.

산은 컬러사진으로, 바다는 흑백사진으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그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거의 무채색에 유사하다. 주명덕의 그 의도된, 일부러 시꺼멓게 만들어나가 관념취로 물든 겨울산과 그로부터 역으로 온통 희뿌옇게, 가늠하기 어려운 모호한 회색톤으로 끌고나가 시선을 조바심나게 하는 민병헌의 사진,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듯, 그러니까 자연 그 자체의 본래 모습을 드라마없이 찍고자 했던 정동석의 컬러로 찍은 겨울산 사진 그 어느 사이에서인가 권부문의 사진은 위치해있다. 컬러와 흑백의 중간쯤에 머무는 것도 같다. 관념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선 그 어딘가에 있다.

분명 이 사진은 실제 풍경의 재현인 동시에 그로부터 조금은 멀어져 보인다. 우리 눈이 볼 수 없는 카메라만이 가능한 오랜 응시의 시선으로 산의 디테일에 근접한다. 그로인해 늘상 보던 산이 묘하게 다가온다. 불쑥 안긴다. 빠르고 느리게 내리는 눈에 의해 드러나는 바다풍경 역시 바다라는 대상을 보는 시선, 신경줄을 잡아당겼다 늦추었다 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지각을 교란한다. 따라서 이 사진 역시 눈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지나친 인위성, 작위성으로 풍경이 오염(?)되는 것은 피한다. 지나친 관념화를 피하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사이 어디에 자신의 풍경을 설정한다.

의도적인 관념취를 지운 체 있는 자연풍경 앞에 보는 이들을 정직하게 대면시키지만 동시에 그 풍경이 매혹적임을 부인하기 어렵게 만든다. 권부문의 산과 물, 겨울산과 겨울바다는 무척 픽춰레스크하다. 이 지점은 그의 모종의 타협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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