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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성당 순례/ 몽블랑의 테라스에 앉은 아시의 성당

김종근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 근처. 정확하게는 프랑스 동남부의 파씨지역.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몽블랑 산으로 오르는 길 한켠의 양지바른 언덕에 아주 작은 성당이 앉아 있다. 스키를 타다 지루해서 우연히 들렀던 이 작은 아시(Assy) 성당에서 내가 교회와 미술이 어떻게 이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가를 본 것은 놀라움과 즐거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샤노아느 드베미 신부와 마리 알렝 쿠튀리에 신부는 전란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곳 아시 성당을 새롭게 단장하기로 했다. 물론 아시의 고원은 지적인 생활과 종교적인 삶을 고양시켜주는 풍부한 자연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1920년 말부터 요양소로도 이미 유명했다.
1935년 샤노아느 드베미는 아시 성당 건축을 제안했고, 1937년에 건축 공모를, 1938년에 짓기 시작해, 1946년에 공사를 마쳐 마침내 1950년 축성식을 했다.
28미터 높이의 거대한 종루와 함께 자리한 이 성당 건축은 종교적인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만드는 과정은 여느 성당과 판이하게 달랐다. 드베미와 쿠튀리에 신부는 이 성당을 최대한 예술적인 성당으로 짓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예술감독에 M.오트 쾨르를 선임하고 참여할 예술가들의 리스트를 함께 작성했다.
두 신부는 이 성당을 아름다운 예술과 함께 완성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권리와 자유를 그들에게 위임했다. 그렇게 시작된 성당의 건축은 아시 사람들에게는 ‘혁명’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성당은 건축 사상 유례없이 종교적이면서도 예술가들의 작품이 중심이 된 신성한 보고가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1940-50년대의 현대 작가드이었다.


문제는 후원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스타일의 성당 건축에 절대 만족하지 못했다.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의 형태와 이미지들은 지나칠 정도로 작가적인 성격과 특색이 강렬하게 드러났고, 색채 또한 너무 원색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속에서도 성당은 아름답게 만들어 졌다.
우선 이 건물 건축은 건축가 모리스 노바리나(1907-2002)가 맡았다. 프랑스 예술원 회원이며 레종 드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 플汐茱珦?가진 그는 오트 싸보아의 통농 레 뱅에서 태어나 국립 에꼴 드 보자르에서 미술과 건축학위를 받았고 그로노블 시청, 파리시청, 알베르 빌의 대학 등을 지었다. 또 사우디 아라비아 수도인 리야드에 텔레비전 센터를 지을 만큼 국제적으로 알려진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영예로운 이름을 안겨다준 것은 바로 이 아시의 성당이었다. 아시의 성당은 건축과 조형예술 사이를 가장 절묘하게 결합시킨 금세기 뛰어난 종교적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당의 구조는 정면에서부터 특이하게 여섯 개의 돌기둥이 성당 지붕을 떠 받치고 있다. 성당 정면에 장식된 화사한 琉꼭?페르낭 레제의 모자이크 작품이다. 또한 성당 정면은 152평방미터의 넓은 공간에 마리아를 중심으로 8개의 성모호칭기도를 기록하어 있어 이 성당이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엄청난 크기의 규모에 모리스는 건강한 윤곽선으?레제의 특징을 살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벽에 덧붙인것이다. 레제의 이 모자이크를 사람들은 색채와 풍부함이 뛰어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격찬 했다. 외관의 예술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은 내부로 들어서면서 더욱 빛이 난다. 본당 성가대 정면에는 모더니즘 미술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쟝 뤼르사(Jean Lurcat)가 제작한 거대한 크기의 타피스트리(직조공예) 작품이 있는데 해산의 진통을 겪는 묵시록의 여인과 여인을 공격하는 용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용과 여인의 모습을 격정적이면서도 낭만적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성당 오른쪽 고해성사실 옆에는 쟈크 립시츠의 아름다운 조각이 있어 세례실 입구를 자연스레 알려주고 있으며, 세례실 종 아래에는 성서를 테마로 한 세례의 모습을 담은 마르크 샤갈의 세라믹 작품이 있다. 또한 샤갈은 두 개의 얇은 대리석을 이용해 의식과 세례의 상징을 부드러운 색조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제르멘 리시에(1904-1959)가 만든 성당 내부의 브론즈 십자고상은 아주 예외적인 작품으로 부려지고 잇다. 전후 유럽인들의 고통을 불에 탄 나무껍질 모양의 십자가로 표현한 것으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의 십자고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조각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성스러움이나 숭고함보다는 지쳐 있고 궁핍하게 보이는 말라빠진 십자고상이라는 평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로댕이 만든 발쟈크상이 그의 이미지가 없다고 오랫동안 창고에 내 팽개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고통의 십자고상과 함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우리는 죠르쥬 루오 (G. Rouault 1871-1958)를 빼놓을수 없다. 언제나 성스럽고 종교적인 테마를 즐겨 그린 그는 성당 정면 아래 창문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장면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설치되어 있고, 또 벽면에는 마르크 샤갈의 ‘홍해를 건너서’라는 작품이 있다. 또한 성서를 주제로 한 죠르쥬 브라크(1882-1963)의 ‘성찬의 상징’이 있고, 그 위에는 앙리 마티스의 단순명료한 수묵선으로 단순하게 제작한 성 도미니코상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프랑스의 아시(Assy) 성당은 쟝 바젠(Jean Bazaine), 브라크(Braque), 마티스, 샤갈, 립시츠(Lipschitz), 리시에(Richier)등 당대의 대가들에 의해 아름답게 꾸며졌다.
물론 이 건물에 설치된 예술작품들은 아시 지역의 사람들로부터도 건축 당시 모두 불만족스럽게 받아들여졌으나 이제는 우수한 예술성을 지닌 역사적인 기념물로 알려져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시의 작은 성당, 그러나 세기의 위대한 거장들의 예술이 숨쉬고 있는 곳. 그래서 아시를 방문하는 것은 종교적인 순례를 넘어서 20세기 신성한 예술의 심장으로의 여행을 의미한다.

출처 / 생활성서 200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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