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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에 붙어있는 선, 공간 그리고 그림자 - 이성기

김종근

'나는 선을 띄우고 싶다, 나는 도대체 선이 평면에 붙어있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작가 이성기의 이 발언만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명료한 표현은 없다.
다분히 교조적이라 들릴 만큼 직접적인 이 발언은 그의 작품세계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미국생활로 아직 우리화단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작품들은 작년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미술아트페어에서 부분적으로 선보였고, 인사아트센터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울산의 작업실에서 본 그의 수많은 입체작품과 드로잉들은 그가 얼마나 전업작가로 살아왔음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 있지 않은 은둔의 작가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6-7살 시절에 이미 공작등 무엇인가를 만드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했다. 적어도 손으로 만드는 것들에 관한 한 그는 대단한 재주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그는 탱크와 비행기 등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의 진로는 부산의 사범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잠시 교편생활을 하다 1982년 그는 미국으로 갔다. 그의 체류는 2000년 5월까지 지속되었고 그는 뉴저지와 맨하턴을 중심으로 작업을 했고,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이러한 뉴욕에서의 체류는 그에게 미술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가 평면 회화에서 선의 기능을 버리고 그 선을 공간에 띄우고 싶다는 그의 예술적 의지는 다분히 반항적이고 혁신적이다. 왜냐하면 선은 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려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모더니스트들의 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예술에 있어서의 순수성이란 그 특정 예술의 매체의 한계를 기꺼이 수용하는데 있다.'(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 고 했다.




회화예술에서 평면이 갖는 2차원성은 회화예술이 어떤 다른 예술과도 공유할 수 없는 유일한 조건이다. 따라서 모더니스트 회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평면성 그 자체에로 향하는 것이다.' (모더니스트 회화) 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작업은 평면을 거부하는 아주 반 그린버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우선 그는 평면이라는 타블로 회화에 만족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 그의 대부분 회화작업이 삼차원적 입체의 세계와 기법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예를 들면 특정 오브제를 써서 평면 위에 붙인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성기는 평면 회화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더 정확하게는 회화가 꼭 평면에만 자리 해야 하는가에 대한 거부감의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평면을 바라보는 거부감은 일차적으로 일상적인 집 모습이나 삶의 풍경, 사람들의 모습이 평면 위에 입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여기서 다듬어진 선이나 감성이 돋보이는 형태의 화면 구성이 본격적으로 제기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선과 형태의 자연스러운 조화로 서정적인 풍경과 결합시키는 훌륭한 장식적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형상과 선들은 자유분방하고, 구성적이며 단순함으로 그 소박함의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이성기는 풍경이나 인물과 같은 전통적인 모습을 모티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절제된 선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평면과 입체가 한 공간에서 이렇게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원근법이나 실제적 공간감을 경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성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면의 명쾌한 단순화와 장식적 조화에 있지 않다.

그의 표현과 구성은 평면회화의 정신인 명석함과 질서를 가지면서 평면회화의 한계인 입체성에 미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명백하게 진정 '내가 만드는 공간에 살고 싶었다'고 했다. 이것은 나만의 회화공간을 만들겠다는 그의 강력한 의지의 발언이다.
그는 그만의 공간에서 표현 기법과 일상적인 평면을 거부하면서 입체가 만들어내는 본능적인 공간에 자기세계를 뿌리내리고자 했다.
그는 화면의 빈 공간에 알맞은 색채를 찾아내는 원숙함도 보이고 있다. 그는 그것으로 형태와 더불어 선의 아름다움을 부가하려 한다.
이러한 그의 완벽한 균형과 짜임새로 화면은 아름답고 경쾌한 건축처럼 이성기만의 독특한 매력적 공간이 연출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충실한 구성 능력은 명백하게 평면적인 회화성에 출발하는 그의 회화의 발견이다.

그는 여전히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듯 하다. 입체 속에서 연출해 내는 곳에 또 다른 그림자를 불러내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은 평면에 빛을 입체로 전이시키는 새로운 이성기의 작품이 추구하는 다른 질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성기의 회화는 명확한 자기 표현방식으로 형상화하는데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나치게 다양한 언어들이 오히려 그의 표현양식을 약화시키며, 너무 일상적인 풍경들이 그러한 연출들과 적절하게 호흡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선과 빛과 공간표현을 아우르는 최근작업들은 그의 예술세계에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모든 노력이 그가 평면을 뛰어나가고 싶어하는 강렬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물론 이성기는 입체파 화가들이 이룩해 놓은 입체보다 더 명료한 시선으로 평면에서 선을 불러내어 그 선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명백하게 평면에서 일탈한 선과 입체, 그것들은 이미 자유롭다. 그는 이 선들이 더 자유롭게 살아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술가의 의지에 따라 그것은 가능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 불가능한 현실을 가능한 현실로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이성기의 과제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평면에 선과 형태 그리고 빛으로 공간에 숨쉬게 하는 존재로 남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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