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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 자유와 비상을 향한 그녀의 꿈

김종근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닮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비극이다. 남자들은 아무도 어머니를 닮지 않는데 그것 또한 그들의 비극이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 1854-1900]는 이렇게 말했다.
작업실에 놓여진 이경의 작품을 보면서 오스카의 와일드의 이 발언을 다시 되새긴다 그것은 이경이 한지공예가로 출발해서 지금의 순수작가로 다다르기까지 겪어온 과정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8년전인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한지공예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문화센터나 교육원에서 강의를 할 정도로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순수화가로 변신하기까지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 우리 화단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 할 수 있다. 게다가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을 지켜가며 예술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예술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가 4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미술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이경의 작품들은 다음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한지를 작품에 중요한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적지 않은 작가들이 한국성이라는 점의 중요성 때문에 한지작업에 애착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한지를 이용하면서 그는 한국화를 선택하지 않고 서양화를 선택했다. 지나치게 한지라는 물성에 묶여 있지 않겠다는 그의 단호한 표현이다.
그는 한지를 농담이나 발묵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색이 있는 한지를 캔버스 면에 붙여놓고 색을 칠한다든가 , 한지로 인체의 형태를 만들어 붙인다든가 하여 한지의 원료와 특징, 그 느낌을 그대로 되살려내면서 독특한 질감을 획득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한지가 적절히 배합된 작품 속에는 재질을 그대로 살린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의 작품들이 눈에 뛴다. 장식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부드럽고 입체감 있는 작품들로 회화의 참맛을 전해준다. 특히 소품에서 그러한 회화성과 한지가 주는 담백함이 인상 깊게 그려지고 있다.


이경의 작품에서 아울러 눈여겨볼 만한 것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로서 여자의 표현이다. 그에게 여자는 나부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렇다고 나부가 전면적이거나 구체적인 형태와 색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나부는 그의 그림에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 여인들은 전반적으로 어떤 공통된 느낌을 주고 있는데 , 여자의 본능적이거나 갈등에서 보여지는 고뇌의 제스츄어와 인상을 담고 있다.
그 고뇌는 특별히 개인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여성들이 사회구조에서 겪게 되는 요소들에서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표현 할 때 조형예술은 인간의 생명력과 감정을 전제되는 것이 신체 표현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그 대상을 표현할 때 이미 작가들은 그것 자체에서 복잡 미묘한 여성의 본질적인 특성과 심경을 반영한다.
때로 누드가 탐미적인 대상으로서 아름다움을 주는 중요한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주는 아이덴티티의 대상으로도 나타난다.
이경이 화면에서 누드를 끌어들이는 흐름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러한 징후는 화면 속에 나부가 다분히 내면의 감추어진 욕망을 담아내는 것처럼 은밀하게 비유화 되어 있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거나 사회적 속박에 대한 반역성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소 고뇌하는 듯한 익명성의 표정과 암울한 색채와 이미지들이 그러한 감정들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있어 신체에 관한 표현은 소유와 억압을 초월한 자유의 상징적 형태로 읽혀지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 빈번하게 갇혀진 여인의 표정, 날개를 가진 새가 등장하는 중요한 부분에서 표식들을 주목 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들이 지시하고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수많은 명화나 걸작들이 그들의 정신적 상처에서 배태되어 승화된 것이라는 점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배경이야 전혀 다르지만 비천한 창기에서 화가로 변신하여 자아를 실현해 간 중국의 여류 화가 판위량(潘玉良, 1895-1977)의 예술 속에 누드가 그러하다.
그녀의 방황은 자신의 과거를 수용하지 않는 사회의 환경에 굽히지 않고 여성성에 대한 표현으로 누드를 선택하고 있다.
그녀의 운명은 비록 잔인하였지만, 그녀는 자신을 갈고 닦아, 마침내 위대하고 화려한 비상을 하게 된다. 이경의 작품 속에 담겨진 누드와 새의 모습은 판위량의 의지처럼 뜨겁고 격정적이다.
그 의지와 표현은 작품 전반에서 고르게 펼쳐져 있다. 그가 담아내는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지, (그 가운데 그는 특별히 보라색을 좋아한다.) 이것으로 그는 개성 있는 그만의 형태와 세계들을 엮어내고 있다.
어느 부분은 색채가 주가 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인체의 형상이 숨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회화적 요소들이 만나 이경만의 거칠면서도 주제가 돋보이는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 표현의 영역이 고르거나 세련되었다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경은 장식성과 색지를 구성하거나 , 면 분할로 우리 전통 한지의 멋스런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재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호소력을 주는 부분은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는 열정과 진지한 자신의 자전적인 표현이다. 아마도 그 호소력이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많은 고뇌가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나올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보기 드물게 한지공예에서 출발하여 작가가 된 그에게 한지의 특수성과 순수 회화가 자연스럽게 만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그러나 이경의 순수회화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열정적이지만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이 화면에 숨어 있다.
'내 안에는 고요하고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있다.' 고 한 고흐의 말처럼 그녀 역시 모든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면서 완성되는 그 순간까지의 고요하고 순수한 조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 조화란 화면에서 좀더 정리되고 정제된 표현일수도 , 거칠고 불완전한 구성도 그가 점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품에서 보이는 능숙함이 돋보인다. 색채의 조화와 부드러움이 생활 속에 놓여진 본능적인 격정과 만난다면 그의 세계는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일 것이다. 그림 속의 갇혀진 누드가 , 그림 속의 새들이 보다 높게 비상하여 이경의 꿈이 이루어지는 첫 개인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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