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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점선의 삶과 예술

김종근


내가 젤 좋아하는 그여자, 김점선

내가 제일 존경하는 화가는 폴 세잔느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이다. 그러나 내가 아주 좋아하는 화가로는 너무나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황창배 형님. 그리고 그 다음 내가 젤 좋아하는 여자 화가가 바로 김점선이다.
왜냐하면 첫째는 그 여자는 막힘이 없이 탁 트인 것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큰 화가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 여자의 그림만이 우울에 빠져 있는 나를 가장 기분 좋게 만들거나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엔돌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난 그녀의 그림을 보면 거의 무조건 신이 나고 걱정이 없어진다. 일단 그림이 너무도 쉽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처럼 지나치게 철학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아 전혀 골치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1987년인가 나는 그의 개인 전시회를 박여숙 화랑과 공동으로 했고 거기다가 그녀에 관한 서문을 썼다.
그 때 나는 그녀의 그림에 대하여 “그림일기의 명징성과 단순미”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그녀의 그림일기를 인용했다.
“이것은 말이다. 아무리 그려도 말 같지 않아서 ‘이것은 말이다’라고 써서 냈다” 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말을 그렸는데 도대체 아무도 그것이 말이라고 믿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림에다가 ‘이것은 말이다’ 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무궤도적인 순수한 발상과 그대로 보고 느끼는 시지각적인 시형식에 주목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17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그의 그림은 깊이와 운치와 매력이 더해 그림만 팔아먹고 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기를 누리는 유명화가가 되었다.

그러기에 작가 김점선은 현재 우리나라 여류화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그림만 팔아서 먹고사는 전업작가이자 가장 열심히 작업과 전람회를 한 여자 축에 속하는 보기 드문 여걸이다.
단 한 번도 미술실기 대회에 나간 적도 없고 상을 타 본적도 없는 여자. 그러나 김점선은 그림과 인생에서는 단순하고 너무나 솔직하다.
가죽 공예를 하는 남자에게 노래를 잘한다고 처음 만나 청혼해서 결혼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거침없고 탁월한 끼로 뒤덮여져 있다.

또 하나 그의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너무도 밝고, 경쾌하고, 토속적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그렇게 영어를 잘하면서도 외국물을 한 번도 다녀 온 적이 없는, 한국말보다 영어 원서가 더 편하다는 순 토종 화가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는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행여나 자기 이름을 잘 모를까 언제나 작품 아래에 대문짝만 하게 점선이라고 써제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렇게 쓸 필요도 없어졌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 화가는 자기 그림을 산 사람이 500명을 넘으면 평생을 먹고 사는데 나는 86년 이미 500명을 넘었다”고 공공연히 자랑을 할 정도로 그는 베스트 5에 작가에 포함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명시절 “84년 당장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그림을 팔아 정부미 두 포대를 살 때가 그립다. 그림을 팔았다고 해도 누가 즐거워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라며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린 마음을 가끔씩 비추기도 한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에 창설된 약칭 한화미학(한국 화투미술학회)의 부회장인가 뭔가로 취임했다고 하여 놀란 적이 있다. 생전 감투라고는 써볼 것 같지도 않고도 좋아하지도 않는 그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화투를 너무 너무 잘 그린다는 것이다. 물론 회장자리는 그보다 먼저 화투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하여 회장은 화수 조영남에게 양보한 것 같다.
그는 또 화투가 왜 천박한 놀이냐고, 오히려 싸고 재미있고 예술적이고 아름답고 작고 가볍고 운반하기도 편한 민중예술이라고 주장, 조영남과 장단을 맞추며 기발한 김점선용 화투 그림을 공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물론 성인용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말이다. 그 정도로 그는 엉뚱하고 기발하고 상큼하다. 그러나 나는 요즘 그녀 생각에 잠시 우울해 했다.

생전 아플 것 같지 않은 남자 같은 여자인 그가 오십견인가 심하게 아파 거의 작품을 할 수 없다는 소문이 미술계에서 떠돌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어깨에 통증이 생겨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그가 알기나 하는지 아니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다니… 그러나 팔을 못 쓰니까 고통을 잊어 보자며 붓과 캔버스대신 컴퓨터와 마우스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니까 너무 좋더라고 컴맹인 조영남 앞에서 잘난척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화가로선 치명적인 질환으로 고통받던 컴퓨터 그림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전시된 그 그림들은 물론 장관이고 예술이었다.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로 선을 그으며 색을 칠하는 김점선을 생각하면 너무 안 어울려 상상이 안되어 웃음이 나온다. 화가에게 팔은 그림을 그리는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런 김점선에 관한한 나는 그의 그림 그리는 일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거의 못 해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능력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1987년 그녀를 내가 처음 만나 강렬하게 느껴 표현했던 것처럼 바퀴가 없어도 굴러 갈 수 있는 기차 같은 여자, 굴러가지 않으면 뒤에서 밀며 갈 수 있는 여자, 바로 그가 김점선이기 때문이다.

그녀만 생각하면 연민보다는 웃음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왜 그녀는 늘 엉뚱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곧잘 벌리기 때문이다.
“기존의 존재하는 문화에 대한 반항만이 나의 힘”이라는 그의 일상생활에 모토를 가지고 그림과 글 실험을 일삼으며 ‘강렬하고 올바른 삶’을 추구한다고 그는 떠벌리고 있다. 나는 그 당당함과 배짱이 사실은 너무 마음에 든다. 얼마전 서울 강남의 150여평 대형 전시장에서 열린 개인전.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팔리지 않은 대작들만 모조리 모아 펼친 것이다.





그는 예쁜 그림들만 그리지 않는다. 그가 그리고 싶어하는 것을 그린다 . 그는 주로 무엇을 그리는가 ? 그것을 아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초기에 그는 소박하고 담백한 정물과 갈기와 꼬리를 휘날리는 말 그리고 오리, 거위, 개, 코끼리 등 동물은 물론 붓꽃, 모란, 맨드라미, 백합 등 동·식물을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선보였다. 이 모든 그림들은 솔직, 담백 간결하면서도 눈물겹도록 정겹고 따뜻한 작품들이다.
그의 그림들은 한 두개 대상만으로 화면을 채우는 온통 명료한 선의 말 그림뿐이었다. 이것으로 곧 그는 유명해졌다. 그 스스로가 최상의 말로 지목한 너무나 ‘간결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그림들 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점선 회화의 특징은 평면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원근감도 거의 살아있지 않고 때문에 그림자는 더더구나 생각할 수가 없다. 그의 그림이 평면적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는 어린아이 그림 같은 선과 투명한 색채를 바탕으로 동화적 작품세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영감’이 예술가의 영혼이라는 견해도 거부한다. 화가는 영감을 얻은 후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과정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화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좋으나 좋은 그림을 팔아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난 전업화가로서 자생이 불가능한 우리의 현실에서 김점선은 단 한 번도 지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세계에 깊이를 더해오면서 그는 한국의 최고 화가로 성공해 있다.

그런 그를 어떤 사람들은 ‘순수한 자연인’이라고 했고, 여류 소설가 강석경은 그를 일컬어 “외로운 거인”이라고 했다.
정말 홀로 외롭게 작업을 하면서, 현대미술을 쭈욱 꾀고 있을 정도로 유식한 그녀.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유식한 척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내가 그녀를 매력적인 여자로 보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아는 화가 글쟁이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맛깔 나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뿐만 아니라 말솜씨 또한 청산유수이다.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의 말솜씨는 너무 귀엽고 촌철살인으로 배꼽을 잡는다.

몇 년전 강남의 한 전시장에서 내로라 하는 인사들 - 그들 중엔 국회의원도 있었지만 - 에게 “눈깔이 있으면 보면 되지 뭘 그림을 설명해 달라느냐고. 백화점에서 넥타이를 고르는 것처럼 그냥 마음에 들면 사면 되는 것이지 기분 나쁘다” 며 부시시한 옷차림으로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 주최측과 사회자를 황당하게 한 적도 있었다.
오죽하면 그와 한 동네에 살았던 소설가 박완서는” 나는 지금껏 김점선처럼 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생으로 드러내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너무나 정상적인 기행에 찬사를 보냈을까 .

이러한 그의 성격은 사실 그대로 그의 그림에 나타난다. 그의 전시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아주 평화롭고 부드러운 그림을 그리는 인간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는 분명 속마음은 너무나 따뜻하고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는 너무나 비꼬임이 없는 여자이다. 그러나 머리칼처럼 헝클어지고 뒤범벅이 된 파괴적이면서 충격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작가이다.
그는 독백처럼 “혼자 유치 찬란한 그림을 그리다가 왕따를 당하던 시절, 이런 사람들이 내 생의 늪에 심을 박아 주었다” 고 했다.





그에게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넌센스다. 그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가장 부러워한다. 화가는 돈을 받으면 그림이 눈앞에서 없어져 버리고 “그러면 심장이 뽑혀 도둑맞은 듯하다. 그럴 때 나는 하염없이 운다. 없어진 그림을 그리워하면서….” 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의 말(言)은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녀가 그린 수 없는 말(馬)들 또한 그가 행복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품들이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김점선의 말과 동물들은 한결같이 너무 행복하다. 슬프지도 않고 눈물 흘리지도 않고, 아주 고즈넉하게 졸고 있거나 행복에 겨워 눈을 지긋이 감고 아주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그림을 그는 오늘도 그린다. “그냥 그림을 그렸다. 내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기도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기도를 하듯이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근데 난 궁금하다. 아들 마저 독립한 요즈음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지… 천재화가의 기도.
나는 우리 나라에서 천재화가를 단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두말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김점선을 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그림이라는 어떤 형식을 철저히 무시하고 무시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재능과 기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無法이 筆法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 관한 책도 한권 꼭 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황창배는 밀가루로는 수제비만 끓이는 것이 아니라 국수도 해먹고 빵도 해먹는다는 수제비론으로 닫혀있던 한국화의 세계를 넘어섰다.그러나 천재에게도 아쉬움이 있듯이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며 늘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 왜 그의 그림에는 평화와 기쁨과 경쾌함만 있지 어떤 그 자신의 알 수 없는 슬픔이나 그리움이 없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텔레비전 방송국 ‘그것이 알고 싶다’에다가 주문하면 혹시 가르쳐 줄래나 ?


KB 국민은행 웹진 ‘For You’ 200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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