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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자 / 탄생에 관한 비밀스런 기록

김종근

조민자의 280 days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면 그에게 숙명인 두 가지 사건이 그의 예술세계를 결정짓고 있다. 하나는 18살 때의 돌이킬 수 없는 교통사고이며, 또 하나는 멕시코 최고의 벽화작가로 불리는 리베라와의 숙명적인 만남이다. 조민자의 최근 작품을 보면서 프리다 칼로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하나의 사건이 그의 작품 세계를 한순간에 바꿔 놓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사건이라 함은 그가 지닌 극히 사적인 비밀스러운 탄생에 관한 부분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탄생에 관한 진실을 약간의 의문만 가지고 있을 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의 탄생에 관한 비밀스런 진실을 접하게 된다. 그 진실이란 그를 낳아준 부모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이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올 만한 한 화가의 운명적인 탄생에 관한 가슴 찡한 이 이야기가 바로 조민자 작품세계의 키워드이다. 즉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떻게 태어났으며, 나의 부모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과 근원에 대한 질문이다. 만약 본인의 탄생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면 ,이 궁금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본능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출발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말했다. <<피 280일/조민자>> 이번 전시회 “280일”은 인간의 임신기간 동안 뼈, 장기, 피, 근육등 신체기관과 brain 과 spirit 를 동시에 형성하며, 작가 내면에 잠재된 기억과 인간의 의식은 잠재된 무의식의 수면 위에 떠오른 표면과 늘 충돌하고 상충하는 과정 이라고 즉 “1시간에 10cm 자궁을 향해 헤엄쳐가던 창조를 위한 최초의 순간을 써가는 본인의 일기” 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 누구도 기억하기 어려운 자신의 탄생에 관한 이 280일이라는 엄마 뱃속 기간의 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일종의 다큐형식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280days>는 벽면에 한꺼번에 설치되는 280개의 작은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나의 연작 형태로 연결된 이 작품은 피 빛으로 배어져 나오고 불빛이 뒤에서 비추고 있다. 마치 페인팅 된 면의 천은 어머니의 월경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고, 한장한장 바느질 되어 드로잉 된 작품에는 오려져 겹쳐져 마치 태내의 280여 일의 모습이 엑스레이 필름처럼 이어져 있다.
이것을 그는 스스로 “바느질로 드로잉 선을 그리며 지구를 3바퀴 돌 수 있는 길이의 인간의 핏줄을 쫓으며 찔리며 피를 흘리는 것이 나를 찾아가기 위한 방황과 갈등과 모색의 행위”라고 불렀다. 마치 프리다의 <나의 탄생>에서 보여지듯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조민자의 이 280일간의 작업은 그 탄생과 성장, 그리고 현재와 과거에서 만나는 고통스러운 탄생의 모든 기록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피의 흔적과 피를 매개체로 이 작업을 지속하는가를 아주 진지하면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인간의 정신이란 결국 육체로부터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듯 그의 정체성을 찾아 간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조민자는 그림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자화상 이전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얀 천 위에 낭자하게 흐른 피의 흔적, 임신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변화와 과정은 마치 스크린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어린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인물들을 끄집어내어 조각 천으로 꿰매고 붙이며 그 기억들을 맞추어 가는 데” 그는 집중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피범벅 속에서 자궁과 출산으로 질을 뚫고 태어나는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다. 그 이외에도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가족들의 모습도 아주 진지하게 형상화 되어 있다. 그 형상은 성모 마리아가 아이를 안고 있는 성상이나 종교화의 분위기를 연상 시키며 모성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작품은 대부분 백색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거기서 핏줄로 형상화되는 바느질 드로잉은 하나의 생명을 암시하는 유기체이자 그 자신의 실체적 초상인 것이다. 그래서 그 모습은 어쩌면 평생 자화상을 최고의 예술 모티브로 삼은 프리다의 예술적 모티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민자는 이렇게 여성적인 테마를 거부하고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자신의 세계를 리얼하게 담아낸다.

280여 점의 그림 속에 조민자의 우울함은 없는 듯하다. 다만 그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과 스토리를 극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자신의 탄생에 관한 집요함을 보여줌으로서 이 행위가 명백히 어떠한 이즘이나 경향을 넘어서서 한 여자의 운명적인 삶에 대한 기록 이상으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림으로 그 자신의 탄생 과정을 담아내는 방식은 오히려 모든 생명의 미학적인 완성도를 얻어내는 것처럼 숭고하기도 하다. 조민자의 이 거침없는 자신의 보고서적인 표현의 중심에는 피의 색채로 얼룩진 아름답고 가슴 에이는 고뇌와 혈연, 핏줄 등 모든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직결 되어 있다.

만약 그의 그림이 시간이나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성에 공감을 준다면 이것은 인간의 탄생이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조민자의 이 생명에 관한 비밀스런 이야기는 마치 탄생을 향한 붉은 세레나데의 아다지오를 듣는 듯 숙연하다. 그가 모든 언어를 바느질이란 매체로 언제까지 엮어낼지 모르지만, 피와 천으로 대립되는 숙명적인 화면의 대립은 그의 마지막 작품들 수정, 생장 번식들 시리즈로 지속 될 것이다. 그가 280일은 제게 아주 특별한 의미를 띄는 작품이라는 것처럼.

“인간의 핏줄을 그리는 것이 내 작품의 주요한 키워드” 라는 작가의 이 발언. 누군가 프리다, 그녀의 예술은 폭탄에 묶여 있는 리본과도 같다. 그렇다면 조민자의 작품은 탯줄에 묶여있는 아름다운 장미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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