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오피니언] ‘잿밥’에 빠졌던 미술계

김종근

미술대전 돈 비리로 만신창이·정부의 지원 중단은 자업자득

오랜만에 미술시장의 호황으로 지금 미술계의 분위기는 최고로 흥분되어 있다. 연이어 새로운 경매회사들이 생겨나고, 펀드가 만들어지고, 인사동에는 화랑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시장인 아트페어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매진되는 등 낭보도 줄을 잇는다.

이제 보릿고개를 지나 좀 살만 하려나 하는 꿈과 희망에 부푼 시점에 우울하고 부끄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문화관광부가 올해 초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해괴망측한 금품 수수 비리사건을 보고 대통령상은 물론 국무총리상 등 정부가 주는 상과 지원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국미술협회에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요청하면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는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돈을 받고 미술대전에 입상시켜 준 혐의로 전 이사장을 포함, 심사위원과 작가 등 49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입건됐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1949년부터 1981년까지 30회를 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후신으로 1982년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단체인 미술협회가 주관함으로써 관전(官展)의 성격을 떨쳐버리고 순수한 작가 발굴 및 육성에 진력하자는 게 제도 개편의 취지였다. 초기엔 국내 최대 규모의 신인작가 등용문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며 의욕도 많았다. 작품 심사를 까다롭게 수상작품 선정심사위원회를 2원화하고 심사는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등 아이디어도 속출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화가들의 욕심이다. 화단의 영웅들이 호텔 방에 앉아 돈 액수대로 상을 나눠주는 추태 속에 이미 예술가의 자존심은 없었다.

양심과 순수, 자존심을 가지고 평생을 매달려 왔고 가야 할 화가들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이미 권위가 없어져 버린 대통령상을 다시 부활하고 국무총리상을 가져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 이름으로, 국무총리 이름으로 상을 주겠다 하더라도 그것이 혹시 자신의 예술적 역정에 욕될까 거부해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다.

내가 아는 어느 원로 화가는 오래전 국전 출품 때 심사위원으로부터 자기와 같은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면 대통령상을 주겠다고 강력하게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그가 추구하는 화풍을 고집하여 국내 최고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가끔 그분은 이러한 농담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심사위원이 하라는 대로 했다면 원하는 대학의 교수는 물론 학장도 하고 지금보다 훨씬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잘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제는 더 이상 염불에는 흥미가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이상한 미술 판이 안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대한 정부의 지원 중단 결정은 미술계의 자업자득이다. 정부가 지원을 중단하기 전에 미술계가 먼저 이제 지원은 사양하겠다는 모습을 보였어야 할 일이다.

예술가는 다만 다가올 다음 세대를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고 했던 고흐. “너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케이크를 먹으면서 얼굴에 잼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라고 동생에게 편지를 썼던 그가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고,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붓이 그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절규하며 자살했던 고흐가 새삼 그리운 이유이다.

- 조선일보 2007. 6.23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