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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성 / 자연에서 얻은 꿀벌의 질서와 조형

김종근

때로 작가의 발언은 비평가들의 시선에 우선한다. 그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더욱 더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강덕성의 발언은 그의 그림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시사적이고 지시적이다.

'꿀벌은 밀월여행, 수벌제거, 그리고 벌집의 재건축이라는 현상들을 종족보존과 집단유지라는 과정에서 철저할 만큼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측면을 동원해 수행한다. 모순과 갈등이 만연된 현대사회를 꿀벌의 사회성을 빌려 드러내고자 한다(작가노트).'

우리에게는 1981년 중앙일보미술대상 수상을 시작하면서 화단에 알려진 그는 국내에서의 활동을 접고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1988년 스페인으로 이주 후 유럽과 스페인에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보였던 작가는 7년만의 개인전에서 그가 추구해온 회화의 세계를 이렇게 변론 했다. 그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교조적인 시각의 세계의 작품으로 화두를 던졌다. 현대인이여, 꿀벌에게 배우라는 것이다. 부지런함도 있겠지만 가장 잘 화합하고 체계있는 꿀벌들을 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회화의 세계에서 지목한 것은 꿀벌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가 만들어 놓은 것은 꿀벌들의 집 형태를 기초로 형상화 한 그림들이다. 물론 전부가 그러한것은 아니다. 먼저 육각형을 픽셀로 한 기하학적 추상작품들은 화려한 색채의 대비와 육각형의 공간에 지어놓은 건축 형태를 보여준다. 작가가 말하듯이 육각형은 벌집의 형태에서 빌려온것으로 그것은 그의 회화에 주요한 모티브이다. 그는 꿀벌 사회의 성실함, 조직적이고 논리와 지성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사회성을 빌려 모순투성이 현대 인간 사회를 재건축하고 싶다는 욕구를 논하고 있다. 그가 비록 이런 견해를 피력한다 하더라도 그의 회화는 여전히 시각적이며 일류전의 이미지를 추구한 바자렐리적인 색과 형의 힘으로 구성의 세계를 재건축하고 있다. 또한 그의 육각형 픽셀처럼 드러난 규칙성과 조형성은 그림 전체의 색채 구성과 탄탄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무수한 나열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그물 모양의 회화는 자연적인 구성이 만들어 내놓은 천연의 정직한 질서를 떠올린다. 때로는 화폭속에서 화면의 일부를 육각형에 의해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을 빈 공간으로 인지한다.

비록 우리는 현대적인 색채의 질서와 조립을 보고 있지만 분명히 그의 그림은 단순한 면, 점, 선 배열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꿀벌들이 만들어 놓은 자연 질서를 지키는 미학적 강령을 담고 있다. 그런점에서 그의 회화는 독자적인 해석은 물론 그만의 자연관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컴포지션 또한 조화가 들어있는 색면들의 결합으로 이루어 지며 ,그의 화면에 형태는 원자나 분자처럼 크고 작은 입자로 완성된다. 이런 관점에서 아방가르드 화가인 필로노프가 그림은 살아있는 유기체여서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은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사실은 강덕성의 회화적 스킬과 다르지 않다. 그는 꿀벌이 만들어 놓은 형태를 빌려 현대적 추상의 세계를 이끌어 낸 기하학적 화가의 지평에 서있는 작가로 분류 된다. 다만 그것이 이전에 그러한 세계를 이끌어왔던 기하학적 회화와 어떠한 변별성과 독창적인 철학을 가져올 수 있는가가 이제는 그에게 화두로 남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의 질서가 곧 예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수학을 모르면 회화의 어떤 법칙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 알베르티의 이론”이 말해주듯이 미술은 수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것 처럼 그의 회화가 자연의 세계를 회화에 그 본질적인 것에 대한 추구는 의미가 있다. 이는 자연의 철학과 질서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미이며 질서이며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출처 | 월간 아트인 컬쳐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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