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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현 / 마음속 풍경과 기억속의 풍경

김종근

마음속 풍경과 기억속의 풍경- 조강현의 신작을 중심으로



나는 그와 프랑스 파리에서 같은 시절을 공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와 한 공간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을 나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평자중의 하나이다.
그런 시각에서 10여년 이상 보아온 조강현의 작품은 무엇보다 마음속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데 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사선이 가능하다.
하나는 동양에서 그림을 사의(寫意),즉 그림이란 마음속의 생각을 담아내는 시각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림이란 사실주의적인 것이기 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추상적 그리고 관념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조강현의 작업이 실제 존재하는 풍경이기보다 기억 혹은 마음속에 풍경을 담아낸 것이라는 시각이 훨씬 타당성을 지닌다.
또 하나는 <형태의 문제에 관하여> 쓰려고 할 때, 칸딘스키가 미술작품의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 사이의 대립을 설정하는데, ‘외적인’형태는 미술가의 작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중요한 것은 ‘내적 필연성’이 결정하는 내용의 질(質)이다. 이 내적 필연성과 질만이 형태를 정당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형태의 진정한 의미는 화가의 내적인 감정에 달려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회화적 표현은 미술가가 원하는 어떤 형태를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시대의 진정한 예술은 하나의 본질적인 특질, 즉 영혼의 특질에 의해 통일된다. 걸작에 ‘생생한’ 속성을 부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그의 작품에 내적 필연성에 대하여 발언한 부분을 보자, “ 보여지는 하늘, 수평선과 지평선, 대지, 나무, 바다는 불변성을 지닌 자연의 요소들이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리고 영원히 불변할 자연을 모티브로 하여 과거에 존재했던 내면의 자아, 기억의 형상을  재해석” 한다고 했다.    이렇게 그는 화면 속에 하늘과 수평선, 그리고 그 아래 위치한 바다의 모든 기억을 묘사하고자 한다. 이것은 그가 진술하고 있는 그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만의 형식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미술에서 이러한 시각적 표현형식이 전혀 새로운 것만도 아니라는 점도 예를 들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드브레이다. 그는 에꼴 드 보자르에서 건축보다는 당시의 추상 화가들이었던 니꼴라 드 스틸, 피에르 쑬라쥬, 제라르 슈나이더, 세르쥬 폴리아코프 등과 교류하면서 회화의 단순미와 추상회화를 터득했다.
그의 독창적인 화풍과 세계는 조강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의 풍경을 그리되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 독특한 그만의 추상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조강현과는 다르게 색깔의 병치나 양감의 관계에 민감했고 자연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묘사했다. 때로는 거대한 폭포 속에 맺힌 응어리처럼 풀었다 감았다. 그 리드미컬한 음악적 화풍 속에 마음속에 풍경을 토해냈다.
그러나 조강현은 전적으로 그러한 이미지를 마음속 표현에 집중했다. 그의 영혼의 원천은 마음과 기억이었다. 드브레가 곧잘 이런 추상작업을 위해 그의 작업실이 있는 투르의 루와르 강변으로 차를 몰고 가 캔버스를 펴놓고 거기서 그는 추상화의 풍경 작업을 했다면 조강현은 동양적 사유가 주는 심상적 풍경에 주목했다.
추상작업을 하러 아틀리에로 가는 것이 아니라 들로 강변으로 나간 그와 결국 도달하고자 했던 세게는 완전한 추상 풍경화 그 자체라는 점이 일치한다.
조강현은 화폭에 이미지를 심상적 풍경과 기억속의 풍경으로 공간을 분류한다.
이것은 그가 회화란 감각에 조형적인 현실을 부여하는 말없는 언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화가란 형태와 색채와 기호로 인간에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이미지를 되돌려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조강현은 초기에는 단순한 색채와 톤으로 합판위에 수직과 수평이라는 교차적 구성에 그렸다면 최근에는 단순미와 감각적 색채가 돋보이는 감성이 충만한 내면 속의 뜨거운 심경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이처럼 조강현의 풍경은 눈에 보이는 풍경의 장면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중시한다.
그의 화폭 속에 제스처도 있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하는 세계는 존재하는 위치와 바라보는 위 ,즉 두 얼굴의 시선에 존재하는 비로소 풍경이 없는 풍경화가라는 점이다.
“하늘과 지평선, 그 접경에 아스라이 자리한 부드러운 능선, 그 평온해 보이는 그 선들에 가까이 다가서면  날카로운 선들이 엉키어져 있다. 
마치 의식 속에 살아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 상념, 아우성의 회로처럼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그러한 하나하나의 선들이 모여 형상을 만들고 가며 우리의 수많은 무의식의 기억들은 이어지며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이처럼 작가는 회화의 기본적 골격과 구조는 기법과 형태, 색채가 조금씩 다를 뿐 항상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심상적 풍경의 노출이다. 그것은 물론 존재할 수 도 혹은 아닐 수 도 있는 심상의 풍경으로 내면의 이미지와 기억 그 얼굴들의 표정인 것이다. 무수한 그러나 측정할 수 없는 형상들이 높낮이를 가지며 수평면의 접경에서 유희하는 이 수평선의 현실은 무엇이 비현실인지, 어디까지가 육지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섬인지 알 수 없는 가시적 세계의 사유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 기법은 동양화의 발묵이나 농담으로 서양의 수채화처럼 공간과 여백의 잔상을 감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조강현은 마치 수채화처럼 회화의 순수한 지평 표현을 위해 우연적인 효과가 가져오는 최고의 감성과 붓질에 몰입한다.
그것이 그가 만드는 이미지이다. 붓질과 물질의 섞임, 농담에 따라 풀어지는 그 우연적인 깊이의 유희, 그 평면에 일어나는 파문의 아름다움이 이 같은 시간속의 기억과 상상속의 잔상들을 연출한다. 극도의 평면 위에 펼쳐진 시적 절제와 감수성이야말로 다른 화가들이 갖지 못한 수채화처럼 엷은 농담의 조절을 통해 이루어진 세계이다. 우리의 관심은 수직의 이미지와 수평의 이미지이다. 수평선을 그림으로 그 너머의 광경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이중성도 이전의 파리작업에서 비추어보면 회화작업 이전에 해 왔던 오브제-회화 작업에서의 구성과 형태와 색감을 통해 마치 니콜라 드 스틸이 보여준 추상의 풍경 ,풍경의 추상을 통하여 경계의 세계와 흐름을 같이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회화에 내면에는 그치지 않는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동양화처럼 흐르며 감각처럼 빛나고 있고 그것이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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