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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누드

김종근

인상파 시대의 누드화가로 알려진 오퀴스트 르느아르는 100점에 가까운 주옥같은 누드화를 그리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여성의 유방은 둥글고 따뜻하다. 만약 신이 여성의 가슴을 그와 같이 만들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화가가 되었을까?” 그는 화가로서 여성, 즉 누드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풍경일 때는 그 속에서 산책을 하고 싶어지는 그림, 여체를 그린 그림일 때는 그들을 껴안고 싶어지는 그림을 좋아한다.’라고 언급했다. 신동숙의 전라 또는 반라 모습의 누드를 보면 르느아르의 여인처럼 꼭 포옹하고 싶어 하는 여체는 아니지만 매혹적인 마력과 섹시함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누드의 마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신동숙이 수년 동안 뉴욕과 파리에 체류하면서 집요하게 일관된 예술적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 누드이다. 당연히 그의 누드가 조형예술의 대상으로서 시작 되었겠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린다는 것을 특히 생명이 있는 육체는 미의 최고의 대상이기 때문임은 부정 할 수가 없다. 그 가운데 신동숙의누드는 바로 모든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듯이 누드의 조화와 균형에서 절대적인 원칙을 보여준다. 대부분 그의 누드표현은 선과 색채에서 눈길을 끈다. 피사페로서 누드는 다양한 자세와 배치가 큰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의 작품 중 <푸른색 누드>는 가장 인상적이다. 흔한 포즈의 서 있는 누드도 아니고 누워있는 그것도 하체만을 그린 이 그림을 그다지 지적이지는 않지만 천박하지 않고 섹슈얼한 이미지를 유혹적으로 보여준다. 누드화만큼 아름다운그림이 없다는 말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름답고 화려하기로 말하자면 꽃 그림이겠지만 여체의 아름다움은 그 이상의 기품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신동숙에게 있어 반드시 누드화가 절대적인 테마는 아니지만 그의 특성은 단연 여인과 나체를 표현한 콤포지션에서 신동숙의 미적 감성이 확인된다. 무엇보다 그의 누드작품에는 색채가 미묘하게 짜여 있고 선묘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강조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신동숙의 누드에 있어 색채와 감정은 항상 열정적이며 열려있다. 강렬한 누드가 아니라 조용하며 꾸밈없는 색채로 단순미를 획득하면서 풍부한 색채로 진지함도 보여준다. 그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주제들이 영원하다’는 르느아르 같은 누드에 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누드의 특징이 원근법 없이 배경이 단순하고 섬세한 붓질로 여성성을 충분히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의 모델 속에 나부는 전혀 담백한 배경과 명료하지 않은 인물처리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들이다. 따뜻한 느낌을 주면서 이미 바탕의 색채와 수더분한 옷차림은 그의 누드의 고유성을 함께 가져온다.

그가 여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무엇일까? 일찍이 르느아르는 “나는 누드를 바라본다. 그러면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색점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내 캔버스 위의 육신을 생동케 해 줄 색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그림을 설명할 수가 있다면, 그 그림은 이미 예술이 아닐 것이다. 내가 예술의 두 가지 속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줄까? 그것은 설명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과 모방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이라면 그 자체로 보는 사람을 압도해야 하며, 어디론가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가 자신의 열정 속에 사람을 휩쓸리도록 만드는 흐름이다.”라고 한 그런 것일까?

풍선을 불고 있는 여인의 에로틱한 표정과 소녀스러움,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 발레의 슈미즈 풍으로 특별한 소품 없이 앉은 여인, 그의 누드는 특별한 장식 없이 완성되어 있다. (물론 고개를 숙인 남자 얼굴의 예외적인 작품이 있긴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가 시작한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의 무표정한 누드의 선묘는 간결한 선을 사용해 부드럽고 약간은 현란한 색채로 그만의 누드화 원칙의 규범을 가지고 있다. 반쯤 벌거벗은 모습의 여인이나 아예 옷을 입지 않은 모습, 다리를 벌리고 누운 여자들의 모습, 스타킹만을 신은 표정 없는 여인들이 그의 모델이며 그는 거기서 예술적 영감을 불러올린다. 이처럼 신동숙의 그림에 아름다우며 에로틱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은 푸른 스타킹에 각선미 있는 다리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요염한 눈빛과 유혹적인 자세는 없다. 다만 자신이 바라보는 여체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표현 가능한지를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신동숙은 그 여체의 아름다움을 그 자신의 삼성과 본능 속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에곤 쉴레도 “예술은 모던할 수가 없다. 예술은 원초적이며 영원하다.”라고 말하였는지도 모른다. 여인의 여러 가지 표정 중에 가장 아름다운 누드, 신동숙이 누드에 빠져 있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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