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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득론 /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한 무애(無碍)의 경지

윤진섭

Ⅰ. ‘지금 여기’와 구도의 차원
예술가에게 있어서 전통은 늘 깨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다.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계승인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김호득 역시 항상 그런 태도로 작업을 해 왔다. 30여 년에 걸친 이제까지의 작업 과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의 예민한 촉수는 새로움을 찾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 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도전과 실험의 작가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작업에 기울인 그의 노력과 열정은 2009년 시안미술관 초대전과 최근의 갤러리 604 전시를 통해 만개한 느낌이 든다. 

특히 <흔들림, 문득-공간을 느끼다>라는 제하의 시안미술관 전시는 ‘문득’이라는 부사가 의미하듯이, 낭떠러지에 몸을 던질 때의 절박함이랄까, 느닷없음 혹은 언외(言外)의 어떤 경지를 말해준다. 그것이 주는 느낌은 ‘흔들림’이라는 어사(語辭)가 ‘공간을 느끼다’라는 언표(言表)와 만나면서 구체적인 시공간의 합류점을 넘어선 어떤 경지, 즉 초월적인 지평을 드러내 보여준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이 겪은 생생한 체험을 구체적인 매개물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하는 자라고 한다면, 김호득의 경우 역시 그런 체험의 진원지는 현실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몸이 아픈 곳도 ‘지금 이 순간’, 술을 마시는 곳도 ‘지금 여기’라고 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곳 또한 ‘지금 여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곳이 ‘지금 여기’라고 해서 그림이 ‘지금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화가는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 지 알 수 없다. 그 진원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고 수행의 고난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김호득처럼 수행성이 강한 작가의 경우 더욱 극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그림은 묘사적 차원이 아니라, 발견 혹은 구도(求道)의 차원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Ⅱ. 일획에 기반을 둔 순간의 미학   
김호득의 작품세계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구절을 찾다가 <벽암록>의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났다.

“부싯돌이 반짝하는 순간에 검고 흰 것을 알아보고, 번갯불이 번쩍할 때 생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면] 시방(十方)을 좌단(坐斷)하고 천 길 벼랑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忽若擊石火裏別緇素 閃電光中辨殺活, 可以坐斷十方, 壁立千仞).”

“문득, 그냥, 그대로”는 시안미술관 초대전 도록에서 따온 단어들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나는 평소 이런 단어들을 좋아한다. 지난 봄 많이 아프고 난 후, 좋아하는 단어가 하나 늘었다. 지금.” 
그렇기 때문에 ‘지금’을 포함해서 앞의 네 단어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어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단어들 중에서 ‘그냥’과 ‘그대로’는 사물이나 사태의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어사들이다. “손대지 말고 그냥 그대로 둬.”할 때가 적합한 용례다. 앞의 두 단어가 장소성을 지칭한다면, ‘문득’이나 ‘지금’은 시간성을 내포한 단어들이다. 그러니까 김호득의 작업은 지필묵에 의한 한국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만, 개념적인 측면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김호득이 언어에 관심을 기울인 때는 1990년대 중반 무렵, <산, 나무, 돌>(광목에 수묵채색, 154x282cm, 1994)에 이르러서였다. 광목에 먹, 갈색, 청색의 물감으로 ‘산, 나무, 돌’을 거듭해서 쓴 것이다. 산을 그리지 않고 ‘산’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대상에 대한 개념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언어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의 <하나 그리고 세 개의 의자>(1965)와 같은 개념미술 계통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코수스가 실제의 의자와 사진의 의자 이미지, 그리고 의자(chair)의 사전적 정의를 병치해서 제시한 반면, 김호득은 그림의 왼편에 농묵으로 산을 암시하는 획들을 대담하게 친 다음 ‘나무, 산, 돌’이라는 단어를 겹쳐 써 산과 돌, 나무가 놓인 자리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념적 산수화를 그린 것이다. 김호득이 이러한 시도는 시간이 훨씬 지난 근자에 다시 등장하고 있는데, 왼손으로 써서 앞뒤가 도치된 ‘가’, ‘나’, ‘ㅅ', ‘ㅏ’와 같은 단어나 음소들이다. 그 사이에 점찍기 작업과 폭포 작업과 같은 비워내기, 즉 지난한 수신의 과정이 있었다. 

다시 <벽암록>의 구절로 돌아가면, 김호득이 근자에 시도하고 있는 일획의 방법론은 일필휘지가 가져다주는 호방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일획은 온몸의 에너지가 응축돼 터져 나오는 순간의 미학이다. 즉, “부싯돌이 반짝하는 순간에 검고 흰 것을 알아보고, 번갯불이 번쩍할 때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기(氣)의 예술인 것이다. 그러할 때 시방을 좌단하고 천 길 벼랑 위에 떠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마치 소리꾼이 오랜 수행을 거쳐 득음(得音)을 하듯이, 비범한 한 그림을 하지 못하면 범속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Ⅲ. 자기부정을 통한 무애의 경지 
김호득의 폭포 그림은 “대우(大愚)의 갈빗대 아래에 바야흐로 주먹을 쥐어박는”(임제록) 형국을 보여준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도지(圖地:figure-ground)의 관계에서처럼 배경(地)이 형태(圖)를 드러내는 꼴이다. 또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법이다.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치는 격”(通典)이니 김호득 자신의 말을 빌리면, ‘문득’ 혹은 느닷없이 대우의 갈빗대를 주먹으로 쥐어박는 형국인 것이다. 

그 자신의 이야기에 의하면 김호득은 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녀 온 사람이다. 술의 도취경에 깊이 빠져본 사람이면 그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를 안다. 거기에는 시공간에 대한 특별한 관념이 없다.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곧 여기이며, 어제가 지금 같고 지금이 내일 같다. 그 걸림이 없는 상태(無碍)에 이르면 만물에 이끌리지 않고 차별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아프고 난 후 ‘지금’이란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김호득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다시 <임제록>의 글을 인용하자면, “세간(世間)에 있어서나 출세간(出世間)에 있어서나 부처도 없고 법(法)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김호득의 그림은 그런 경지를 지향한다. 그것은 변증법적인 이미지 사상(捨象)의 과정을 거쳐 텅 빈 캔버스에 봉착한 서구의 미니멀 회화와는 방법론적으로나 질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이다. 

무위진인(無位眞人)은 본래 무한한 자기부정을 통해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 도달한 자이다. 참사람(眞人)은 일체의 한정을 끊고(絶), 형상을 절(絶)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여 무의 상태에 도달한다(임제록). 김호득의 그림은 다름 아닌 이러한 수행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그림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걸림이 없는 상태, 곧 사물의 형태(形似)에 억매이지 않는 무심한 경지인 것이다. 

시안미술관에서 보여준 설치작업은 하나의 풍경이다. 김호득은 대형 수조 안에 먹물을 풀어 그 위에 걸린, 한 장당 3센티씩 낮아지도록 정교하게 계획, 30장의 흰 한지가 수면에 비치도록 설치했다. 또한 종이죽을 반죽하여 둥글넓적 얇게 빚은 수 백 개의 형태들을 철사에 꽂아 커다란 사각 틀 안에 배치한 설치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간연출은 그가 이제까지 그림을 통해 추구해온 것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매우 안타깝게도 나는 이 전시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짐작하건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조명 하나만 켜진 어두운 실내에서 흰 종이의 행렬이 검은 수면 위에 드리워졌을 그 풍경은 얼마나 시적이며 아름다웠을 것인가. 

김호득은 이 설치작업과 병행하여 검은색과 흰색의 종이죽을 손으로 꼭 쥐었다 놓은 형태를 수십 개 전시하거나, 앞뒤로 검게 칠한 한지 더미와 본래의 한지 더미를 수십 장씩 겹쳐 병치한 작품 등등 다양한 설치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작업들은 몸의 현전(現前)을 실제의 사물을 통해 보여준 것으로 회화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로 읽혀진다. 형사(形似)에서 사의(寫意)로, 사의에서 다시 실제의 사물과 풍경으로 김호득의 작업은 새로운 표현의 방법론을 찾아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사립미술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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