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새로운 작가 정신의 확립과 그룹의 역할

윤진섭

Ⅰ. 
[북촌 프로젝트 2012]는 1968년에 창립된 <현대공간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하고 계획한 것으로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야심찬 사업이다. 북촌 일대에 포진하고 있는 약 20여 개 화랑의 협조를 얻어 진행되는 이 전시사업의 모태는 동 협회가 2007년에 인사동 지역에서 연 [26 Documents]이다. 당시 26명의 회원이 인사동에 소재한 13개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러니까 연립전 형식의 이 대규모 전시는 <현대공간회>가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협회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한 일종의 전시방법론이었던 것이다. 그 성과를 논하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45년이란 긴 세월을 유지해온 이 단체가 오랜 연륜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쇠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왕성한 실험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무릇 그룹이란 것이 대개 10년을 넘기면 처음에 왕성했던 의욕과 도전정신이 쇠퇴하면서 자연 소멸하게 마련인데, <현대공간회>는 45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활로의 모색을 통해 단체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현대공간회>의 시도는 비단 이 같은 대규모 전시 프로젝트의 개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동문의 모임으로 출범한 이 협회는 몇 년 전부터는 타 대학 출신의 작가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함은 물론,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설치, 미디어 아트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수용, 변화하는 미술계의 상황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현대공간회>의 이러한 노력과 시도는 창립 25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현대공간』(1992)을 통해 조각에 관한 이론의 진작을 도모한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단체의 결성이 단순히 동문적 차원의 교류에 그치지 않고 한국 조각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지는 1968년 6월 10일에 발표한 다음과 같은 창립 선언서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이 국제사회 속에서 동시공존하며, 민족적 자주, 자존적 긍지를 가지고 진부한 작가적 양심과 방황하는 정신적 풍토를 개선하며, 신시대를 증언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조형언어로써 참신한 공간을 창조한다.” 

<현대공간회>가 결성되던 1960년대 후반의 상황은 전후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미술사조였던 앵포르멜의 열기가 식어가던 시절이었다.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낳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실존적 의식이 미술 양식을 통해 발현된 것이 앵포르멜이라고 한다면, 경제 입국과 건설을 통한 조국의 새로운 발전상을 배경으로 국제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미술인들의 열망은 그룹 활동을 통해 개화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은 작가들의 관심이 국전에서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전으로 서서히 옮겨가던 시기였다. 따라서 <현대공간회>의 선언문 속에 명기된 ‘국제사회 속의 동시공존’이란 문구는 다가올 새 시대의 비전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5년이란 긴 세월의 활동을 통해 <현대공간회>는 다각적인 전시방법론의 개발과 수차례의 해외전을 통해 그룹의 변신을 꾀해 왔는데, 지역작가들과의 교류, 야외전시회 개최, 주제전의 시행, 이론서적의 발간, 국제전 등등이다. 이러한 일련의 의욕적인 사업들이 <현대공간회>를 한국 현대미술사 속에 중추적인 조각단체로 각인시킨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Ⅱ. 
전후 초창기의 척박했던 미술의 풍토와 환경 속에서 작가 주도의 전시기획이나 미술단체의 결성은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을 견인해 낸 주 요인이었다. 이는 전후 한국 전위미술을 이끈 주체가 작가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비평가는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조력자에 불과했다. 전시기획 전문 인력이 부재했던 그 시기에 전시는 주로 작가들에 의해 조직됐다. 많은 그룹의 결성은 많은 전시회를 낳았다. 그룹마다 선언문들이 난무했고, 새 시대의 새로운 조형의식이 그룹을 통해 진작되었다. 1968년, <현대공간회>의 출범은 이러한 미술계의 새 조류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1986년의 아시안 게임과 1988년의 서울올림픽 개최는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아보였던 미술계에 새로운 판도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조각에 국한시켜 말하자면, 올림픽조각공원의 조성은 이 땅에 환경조형물의 붐을 가져다 준 일대 전환점이었다. 1990년대 한국 경제의 눈부신 도약은 미술의 국제화 시대를 낳은 요인이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은 이의 견인차였다. 이 무렵부터 작가 주도의 전시기획이 비평가와 큐레이터에게로 점차 이양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해외 유학의 개방 시기에 해외에 나갔던 미술 전문 인력이 대거 귀국하면서 국내 미술계는 날로 풍요로워져 갔다. 이 시기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미술시장의 형성도 그룹의 와해를 부추긴 주 요인 가운데 하나다. 특히 다원주의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그룹의 지향점을 교란하는 동시에 미술 양식의 파편화를 가져온 주범이었다. 조각에 국한시켜 말하자면, 1993년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빚은 조각공원의 대대적인 조성은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의 시행과 함께 조각가들로 하여금 환경조형물에 눈을 돌리게 하는 주 요인이 되었다. 
 
<현대공간회>가 45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통해 그룹 활동을 전개해오기까지에는 이처럼 복잡한 내외적 요인이 잠재해 있었다. 이 단체의 출범 시기의 환경과 오늘날의 그것은 천양지차이다. 이른바 그룹의 소멸과 작가의 파편화라는 외부적 변화를 맞이하여 <현대공간회>가 그룹의 비전과 역할을 놓고 고뇌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차제에 <북촌 프로젝트 2012>와 같은 활로 모색은 그룹의 활성화를 위한 고육책으로 읽혀진다. 그것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이 프로젝트의 성패 여부를 떠나 이 협회가 벌이는 이 일련의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지닌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연립전 형식의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공간회>가 새로운 작가 정신의 수립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위기의식에서 배태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된 과다한 조형물 수주 경쟁과 그로 인한 작가 정신의 실종은 조각계에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전시는 넘쳐나나 작가는 없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현대공간회>가 2007년도의 <26 Documents>와 이번에 열리는 [북촌 프로젝트 2012]와 같은 대규모 전시를 통해 새로운 작가정신의 수립을 내건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예작가 22인의 개인전을 통해 그룹의 일신된 면모를 선보이고 그럼으로써 조각계에 새로운 바람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는 <현대공간회>와 같은 국내 유수의 조각 단체가 반드시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인 것이다. 여기에는 조각가들이 주축이 된 단체로서 <현대공간회>가 바라보는 한국 조각계의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과 거기에 기인한 대안이 존재한다. 그 대안이란 것은 결국 단체도 작가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인 이상, 작가가 살아야 단체도 산다는 자명한 사실에 다름 아니다. <현대공간회>가 오랜 연륜에도 불구하고 쇠퇴하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냉철한 현실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Ⅲ. 
<현대공간회>가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해 거는 기대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지역 축제의 활성화이다. 이는 얼핏 진부해 보이는 것 같지만, 부인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미술의 기능 가운데 하나다. 이미 2007년도에 인사동 지역에서 연 <26 Documents>에서 입증되었듯이, 이처럼 대규모 전시행사가 낳는 효과는 그것이 단순한 개별 전시의 집합이 아니라, 기획된 문화축제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특히 이번 [북촌 프로젝트 2012]는 유서 깊은 북촌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는 ‘현대미술과 전통의 만남’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 오늘의 작가 정신이 북촌이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 침투된다는 점에서 그 매개항으로서 장소성이 부각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의 작가 정신’이란 물론 일종의 수사에 불과할지 모르나 엄밀히 이야기하면 김건주, 김승환, 김은현, 김용진, 류 훈, 박상희, 안경진, 신년식, 송근배, 안병철, 오창근, 윤지은, 이동재, 이상길, 이성민, 이수정, 이장원, 정욱장, 조윤주, 조태병, 홍승남, 황영애 등 22인 참여작가들이 내뿜는, 선의의 경연장의 열기를 일컫는 말이다. 내용적으로는 구상과 추상이, 형식적으로는 조각을 비롯하여 회화, 입체, 설치,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가 모여 이루어내는 축제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Ⅳ. 
<현대공간회>가 추진하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프로젝트들은 조각에 관한 한 아직도 그룹의 존립이 가능한가 하는, 소위 유효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러한 질문은 그룹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주장하는 선언문(manifesto)이 부재하는 현실, 아니 그러한 그룹 자체가 부재하는 현실에서 아방가르드의 도래를 진단하는 일과도 관련된다. 주지하듯이 아방가르드는 역사적으로 인간의 정신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일종의 치유 내지는 견제책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특히 작금에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업주의의 과도한 침윤이 작가 정신의 패퇴를 불러오고 있는 현실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의 도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특히 대다수의 조각가들이 조형물의 수주에만 혈안이 돼 있는 조각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견제책으로서 그룹 결성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현대공간회>가 창립 선언문에서 “새로운 조형언어로써 참신한 공간을 창조한다”고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오늘의 현실에서 거기에 부응하는 새로운 자세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여기서 새로운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은 새삼 물을 나위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작가상일 것이다. 어렵지만 현실의 조건에 굴복하지 않는, <현대공간회>의 선언문을 빌리면 ‘진부한 작가적 양심’을 거부하는 자세, 그리하여 ‘방황하는 정신적 풍토를 개선하는 자세’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작가 연립전이라는, 어느 면에서 보면 지극히 냉정하게 판단될 수밖에 없는 고육책을 쓰면서까지 <현대공간회>가 새로운 변신을 도모하는 이면에는 아마도 이심전심으로 회원들 간에 조각계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는 오늘의 조각계에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 현대공간회 전시서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