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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론 / 한 광화사(狂畵師)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

윤진섭

Ⅰ. 
이민혁이 즐겨 다루는 소재는 도시의 일상이다. 그것도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megalopolis)의 일상적 삶의 단면들이다. 아니, 사실 그는 서울을 그리는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굳이 ‘서울과 같은’이라고 한 이유는 예의 문화적 보편성 때문이다. 오늘날 인구 천만 명을 상회하는 뉴욕, 런던, 북경, 파리, 상파울루, 모스크바와 같은 거대도시들이 갖고 있는 도시적 삶의 평균성과 익명성은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도시적 삶의 양상들이 서로 유사함을 말해준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삶의 모습들은 맥도널드를 비롯하여 스타 벅스, 월마트, 그리고 복합영화 상영관과 같은 대중적 소비 내지는 문화 시설을 통해 평준화된다. 이미 공룡처럼 비대해진 거대도시는 따라서 국적 불명의 문화를 낳고 있으며, 팝이라는 미명 하에 특유의 왕성한 번식력으로 교류되고 순환되며, 서로 뒤섞이는 가운데 다문화를 형성한다. 
 
이처럼 다문화를 형성하는 요인은 비단 인적 물적 교류뿐만 아니라, 유튜브(You tube)를 비롯하여 근자에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ing service)에도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도시적 삶의 단면을 그리는 문제는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더욱 어렵고 미묘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른바 팝의 번성과 관련한 비평적 자유방임의 상태는 바로 이처럼 거대도시가 지닌 문제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민혁의 작업을 주목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의 시선이 철저히 서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언젠가 내가 호칭한 것처럼 그는 서울의 일상적 삶의 단면을 그리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이다. 풍속화가로서 그의 시선은 거대도시 특유의 팝적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인 특유의 삶의 양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려내는 그림들은 서울이라는 국지적인 지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열거한 거대도시들이 보여주는 보편적 지평에 맞닿아 있다. 서울의 문제는 곧 뉴욕의 문제이고 북경 혹은 런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거대도시가 안고 있는 슬럼화 현상을 비롯하여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 익명성, 홈리스, 재개발, 상업주의의 팽배, 부랑자, 자살, 폭력, 유흥, 섹스산업, 군중 속의 고독 등등이 그대로 이민혁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Ⅱ.   
탁월한 풍속화가로서 이민혁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풍자성이다. 만일 그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톡 쏘는 풍자가 없었더라면 아마 그가 그처럼 빠르게 각광을 받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양념처럼 그 특유의 풍자성이 곁들여진다. 그것은 그가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힘에서 나온다. 남들이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광경도 그의 눈에 띄면 그대로 소재가 된다. 사실 그의 그림의 소재는 평범한 것들이다. 철교, 고수부지, 지하철, 나이트클럽, 노래방, 책방, 슈퍼마켓, 관공서, 놀이터, 사창가 등등은 비단 서울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도시면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민혁 그림의 소재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이민혁의 솜씨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이민혁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타일, 즉 회화적 양식이다. 이것이야 말로 그를 가장 그답게 만드는 점이다. 소위 ‘이민혁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난마(亂麻)와도 같은 자유분방한 필치, 그 저며서 풀어 헤진 삼(麻)처럼 난무하는 필치가 현란한 색채와 어울리면서 관객의 시선을 작품 속으로 깊숙이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민혁의 그림이 일종의 중독성을 지닌 까닭도 따지고 보면 재미의 요소와 함께 관객의 시선을 흡인하는 특유의 구도에 기인한다. 이 점은 앞으로 상세히 논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재의 평이함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 즉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단면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그가 지닌 작가적 재능 가운데 하나다. 이민혁은 <오줌분수와 해골 조명> 연작에서 보는 것처럼 분방한 상상력을 통해 기상천외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경우는 이민혁의 작품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Ⅲ. 
이민혁의 그림은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와 사람은 없고 오직 풍경만 존재하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관공서>(2007) 연작을 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하여 국세청, 대법원, 강동구청, 서울동부지방법원, 고등검찰청, 국회 등등의 관공서 건물을 그특유의 빠른 필치로 그린 이 <관공서> 연작에는 유독 사람이 부재한다. 청색 혹은 붉은색의 단색조를 띤 관공서 건물들은 사람이 부재함으로써 오히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정부기관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강조되고 있다. 의도적으로 건물의 전면이 화면에 가득 차게 구도를 잡고, 예의 난무하는 듯한 필치로 현란하게 묘사한 관청 건물의 위압적인 모습은 관(官)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암시를 주고 있다. 
이민혁이 그려내고 있는 관청건물들이 아래서 위로 올려다본 시점을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 또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는 그런 구도를 통해 국민 위에 존재하는 듯한, 즉 국민이 편안하게 다가가기 힘든 관청의 상(像)을 완곡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에 대한 이민혁의 예리한 비판의식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근작에도 역시 잘 드러나 있다. 이민혁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에 대해 ‘흘러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를 스쳐지나가듯이 흘러가는 사람들, 이는 어쩌면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지만, 거기에는 역으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작가의 질타가 숨겨져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만의 잘 알려진 저서 <군중 속의 고독>을 이민혁만큼 잘 포착해 드러내는 작가도 드물다. 그의 그림에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속의 인간군상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염원하는 작가의 애틋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의 그림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대안이 없는 비판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기원하며, 그럼으로써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완곡한 메시지로 작용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탁월한 그의 풍자정신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풍자정신은 직설적이거나 보기에 거북한 것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기조차 하다. 이것이 바로 이민혁 특유의 풍자성의 특징이다. 

Ⅳ. 
이민혁의 <5분후 같은 자리>는 도시의 비정함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대체로 그의 그림이 도시의 익명성과 비정함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만큼 소름이 끼치도록 냉정하게 도시의 비정함을 다룬 작품도 드물다. 이 그림은 한강 둔치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체를 네 명의 경찰이 들것에 담아 계단을 오르는데, 그 아래에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농도 짙은 애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 보여준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너머로 술잔을 앞에 놓고 시름에 잠긴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군중을 다룬 이민혁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이 일망무제로 탁 트인 조망을 담아내는 이민혁 특유의 구도법은 한강 둔치나 고수부지를 그린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닌 서민들을 즐겨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부시켜 볼 때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여겨진다. 햇살이 환히 부채 살처럼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한강 고수부지에서 운동을 하거나, 개를 끌고 산책을 하거나, 난간을 뛰어넘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고 한다.  
 
<대한민국은 자살 천국입니다>는 요즈음 한창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자살은 아노미 현상과 짝을 이룬다. 인터넷의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나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일은 가끔 신문지상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저명인사들의 잇단 한강 투신은 한국 사회가 부정의 천국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쓰기에 충분하다. 그 이면에는 늘 정치적 사건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만, 이민혁은 그것조차 화려한 한판의 불꽃축제처럼 화면을 연출하여 죽음을 희화화(戱畵化)한다. 이 그림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처음에는 밤 수영을 하거나 낚시질을 하는 장면으로 오인될 법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이제 막 물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임을 알게 된다. 한강 다리의 교각에 설치된 화려한 조명은 화려해 보이는 대도시가 실은 자살을 할 정도로 비참한 삶들로 얽혀 있음을 은근히 암시해 준다.     
 <삽겹살집 강제 연행사건>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삽겹살집에서 이루어지는 강제 연행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언뜻 보면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실체가 숨은 그림처럼 가려져 있다. 이민혁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화려한 색채와 어지러운 붓질로 인해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세심하게 잘 살펴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서민들이 삽겹살을 먹고 있는 식당에 경찰들이 몰려와 누군가를 잡으려 하는 장면을 포착한 그림이다. 화면의 맨 오른쪽에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서 있는 것으로 봐서 곤봉을 뒤에 숨긴 경찰은 아마 그 사람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뒤에 서너 명의 경찰이 더 있고, 창밖에서는 이제 막 용의자를 연행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민혁이 촛불시위와 같은 정치적 사건을 주로 다루는 풍자화가인 것만은 아니다. <신강강술래>와 같은 작품은 축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강 고수부지가 배경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가운데 타오르는 불꽃을 두고 이제 막 한판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화면의 왼쪽 상단은 불길에 휩싸인 뭔가가 보인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강강술래’라는 민속춤을 소재로 한 것 같지만, 강한 에로틱 포스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무리들 중에는 남자의 성기를 잡은 여자를 비롯하여 겁탈을 하는 남자, 타인을 짓밟고 있는 사람 등 일탈의 장면들이 보인다. 이처럼 이민혁에게서 성적 판타지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그는 사창가 풍경을 비롯하여 이미 여러 차례 성적 모티브를 다룬 작품을 시도한 바 있다. 성적 모티브는 이면혁 작품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을 만큼 강렬하다. 그는 작품을 제작할 때 주사기에 물감을 넣어 마치 사정을 하듯이 뿜어내는 특유의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마치 도시 위에 정액을 쏟아 붓는 것 같은 강한 엑스터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강의 길, 눈의 길, 사람의 길>은 3년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길이가 무려 4.5미터에 높이가 2미터에 가까운 대작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가 이제까지 구사해 온 현란한 색채에 난무하는 듯한 붓질을 그치고 시종 쿨한 태도로 일관한 데 있다. 눈이 내리는 겨울 풍경을 실내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높은 건물에서 아래를 부감법으로 잡아낸 것이다. 푸른색 단색조를 사용하여 눈 내리는 겨울밤의 정취를 잘 드러낸 수작(秀作)이다. 한강 변 어딘가에 있을 밤의 카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연인들이 술집에 앉아 도란거리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이고 창밖에는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한 남자가 무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창 밖에는 눈발에 섞여 희미하게 다리가 보인다. 피아노 옆에서는 악사 한 사람이 섹스폰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흥겨워야 할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동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싸늘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실내는 흥겨움은 고사하고 일순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이민혁의 이 그림에서 보이는 스타일 상의 이 반전(反轉)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내게 이제까지 그가 걸어왔던 그림의 행로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모색으로 보인다.  

Ⅴ.
이민혁에게 있어서 그림은 작가가 사회와 나누는 지속적인 대화이다. 따라서 사회는 그에게 있어서 지속적으로 파헤쳐져야할 화두인 동시에 소재의 젓줄이다. 그에게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는 속도로 인식된다. 한국사회에 깊숙이 형성된 ‘빨리빨리’ 증후군처럼 속도는 속도를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을 낳았다. 이민혁은 파렛트 위에서 물감을 곱게 개서 원하는 색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여러 색의 물감을 붓으로 거칠게 낚아채 그대로 화면에 칠한다. 그러한 동작은 매우 빠른 순발력을 요구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이민혁의 화면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판단과 구상력의 소산이다. 소재를 해석하는 기발한 발상, 그것을 요리하는 기법, 순간적인 판단력 등등은 풍자화가로서 이민혁의 회화적 재능을 말해주는 지표들이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을 그릴 때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처럼 다양하고 재기발랄한 그림들이 양산될 수 있을까? 이민혁은 다작(多作)의 작가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려낸 작품들은 한결같이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눈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화려한 색과 붓질의 난무는 관객들의 시각적 카타르시스는 물론 때로는 숨막힐 듯한 감각적 엑스터시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가 뿜어내는 화려한 언설들은 그 배면에 눈물겨운 페이소스를 깔고 있다. 그것이 인간에 기울이는 작가의 진한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의 그림을 한번 쓱 살펴보면 알만한 것이기에.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어 여기에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는다. 
 
“내가 죽어서 나의 영혼이 어둠의 공간을 영원히 날아가야 한다면, 무엇이 죽은 자의 자살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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