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윤지원 / 우울한 도시의 그림자가 낳은 가역적 풍경

윤진섭

우울한 도시의 그림자가 낳은 가역적 풍경



윤지원의 그림에는 사람이 부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모두 떠나 텅 빈 거리처럼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초현실적인 풍경일 것이다. 그런데 윤지원이 다루는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그림은 일상의 단면을 다루되, 그 일상의 모습이란 것이 분주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삶에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의 절절한 내면이 투사된 그런 모습으로 비쳐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도시의 공간에서 고독과 우울을 헤아려보고 싶다. 나 나름의 해석을 내린 고독을 통해서 내면의 성찰과 위안을 찾아보고 싶다.' (작가노트 中) 이처럼 윤지원의 작품은 일종의 시간 여행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작가의 의식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계단을 부단히 오르내리며 낚아 챈 이미지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지극히 사적인 언어로 정제돼 있다. 그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이를 바탕으로 작업하길 즐기는데, 그것은 한 때 그가 십 수 년 간 살아온 이태리의 밀라노 풍경에서 최근에는 잠시 귀국하여 둘러본 한국의 풍경으로 점차 바뀌는 중에 있다. 우리가 예술을 가리켜 '내면의 풍경에 대한 서술'이라고 예술의 수많은 가지들 중 하나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작품이 바로 윤지원의 그림일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시적인 서정으로 가득 차 있다. 말하자면 '회화는 시처럼(ut poesis pictura)'이란 근대의 예술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풍경이나 사태가 하나의 의미로 가슴에 다가 왔을 때,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화가나 시인이나 다 같다. 단지 매체나 수단이 다를 뿐이다. 화가는 물감과 붓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펜으로 원고지에 쓴다. 내가 보기에 윤지원의 그림은 붓과 물감으로 쓴 시처럼 보인다. 그의 그림은 얼핏 보기에 한 없이 잔잔해 보이지만 그 창작의 이면에는 격렬한 정신적 고뇌와 번민이 자리 잡고 있다.


'바쁜 도시 생활에서 잠깐씩 마주치는 어느 순간에 무한대의 고독이 엄습한다. 나는 도시의 거리를 거닐면서 직접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는다.' (작가노트 中) 이러한 내면의 기록을 읽으면, 그의 그림들이 어떤 상태에서 나오게 됐나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거리 풍경을 대하는 윤지원의 섬세한 감성은 슬픔을 연상케 하는 푸른 색조와 도시의 우중충한 분위기를 암시하는 회색조, 그리고 그러한 우울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따뜻한 노랑 색조를 통해 투사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윤지원의 작품에서 맡아지는 우울한 도시의 그림자는 일종의 가역적 풍경이랄 수 있다. 우울과 고독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역설이 깔려있는 것이다. 



윤지원이 그려내는 풍경화는 분명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들은 지구상에 실존하는 지역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이를 근거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정작 캔버스에 나타난 풍경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한 구석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과연 이러한 효과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주목하고 싶다. 풍경을 대하는 그 특유의 비전은 마치 단순한 무대의 세트처럼 현실적인 거리를 끊임없이 '익명화'한다. 그것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기시감(deja vu)을 느끼게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익명성에 있다. 그의 그림이 지닌 소재의 평이함, 낯익은 거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탈주의 욕구(이는 곧 판에 박은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 다름 아니다.), 억압(그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억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닫친 문이 암시하는 폐쇄성으로 표상된다.) 등등의 특징은, 진한 고독의 진원지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도시의 공간에서 고독과 우울을 헤아려보고 싶다. 나 나름의 해석을 내린 고독을 통해서 내면의 성찰과 위안을 찾아보고 싶다.' '평범한 사진에서 고민과 사색을 시작하고 재해석 하면서 고독과 우울을 찾으려고 한다.' (작가노트 中) 작가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그의 그림은 익명의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군중 속의 고독(데이비드 리즈먼)'일 것이다. 윤지원은 그러한 감정을 형상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약간 조야해 보이는 그의 그림들은 그러나 세련된 그림보다도 더 우리의 마음속에 진솔한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윤지원의 그림은 한낱 도시의 황량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준다.


윤진섭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