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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 환영과 실재의 사이에서

윤진섭

환영과 실재의 사이에서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구름의 작가’ 강운은 끊임없이 작업상의 변신을 꾀하는 작가이다. 처음에 회화로 시작한 그는 오브제와 설치를 거쳐 현재 미디어 아트를 포함, 작업의 영역을 확대해 전방위적으로 나가고 있다. 이는 그가 실험적 의식의 소유자이며, 떠오르는 창작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매체의 특정한 성격에 연연하지 않는 과단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령, 그가 오랜 세월 지속해 온 구름 회화는 트레이트 마크가 됨으로써 어떤 한계를 보여줄 수 있는 소지가 농후했다. 구름에 대한 세부적 묘사와 특정한 분위기의 창출은 세월이 흐를수록 기량의 연마를 가져다 주었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식상할 수도 있는 소재 위주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구름 그림은 트레이드 마크가 됨으로써 그를 일약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한편으로는 제한된 소재로 인하여 슬펌프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운은 과감히 안주로부터 탈피하여 한지 작업으로 옮겨갔고, 그 한편에서 수묵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단색화 기법을 개발, 심화시키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의 이러한 지칠 줄 모르는 실험의식은 그를 작가주의 작가 내지는 문제작가로 받아들이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삶의 갖가지 신산을 겪은 강운은 전라도의 한 시골 마을에 작업실을 차림으로써 비로소 자연에 눈을 뜨게 된다. ‘운(雲)’이란 그의 이름이 의미하듯이, 구름은 어렸을 때부터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이었으나, 이 때 비로소 작업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출품작에서 선명히 드러나듯이, 구름을 그린 초대형 작품들은 관객의 눈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청색, 적색 등 끊임없이 변하는 하늘을 배경으로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를 화폭에 옮겼다. 그러나 그의 구름 그림은 카메라가 피사체를 충실히 담아낼 때처럼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일정 부분 작가의 감정이입이 스며 있다. 그의 구름 그림에는 구름에 대한 작가의 상념과 추억이 깃들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쳐 내면화된 의식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구름을 통해 일종의 숭고미와 함께 화면을 고즈녘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미적 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구름 그림이 빚어내는 숭고의 감정은 특히 노을 장면을 그린 그림에서 잘 느낄 수 있는데, 그 요인은 빛의 방사에 있다. 붉게 물든 하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방사는 일종의 종교적 법열감을 느낄 정도로 강렬하다. 



강운은 단지 구름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한지를 작게 잘라 겹쳐 붙이는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기법상의 일대 변신을 꾀했다. 따라서 새로운 그의 구름 그림은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만드는’ 그림이랄 수 있다. ‘빠삐에 꼴레’ 기법을 연상시키는 그의 구름 그림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한지 특유의 질감이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단지 구름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구름의 이미지를 물질감을 통해 전달하는 것에 의도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구름처럼 보인다’는, 이전의 회화 작업이 지닌 유사성의 맥락에서 벗어나 한지라는 구체적인 물질을 통해 ‘구름’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강운이 구름 작업과 병행하여 추구하고 있는 단색화는 종이가 물에 반응하는 절묘한 순간을 포착, 빠른 필획으로 낚아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개칠을 하용하지 않는 서예의 미학이 담겨있다. 적, 청, 황, 녹 등 한 가지 색으로 과감히 처리한 강운의 단색화는 물감의 번짐이 매우 세련된 형태로 녹아있다. 동양의 수묵화에 담겨있는 전통적 미감이 그의 이 단색 수묵 그림에서처럼 현대적으로 구현된 경우도 드물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추구해 온 단색 추상화에서 벗어나 최근에 들어 그림 속에 ‘合’을 비롯한 한자라든지 불탑, 불상, 주발과 같은 다양한 형상을 삽입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색 추상화가 갖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어떤 의미를 파생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강운의 작업은 그 오랜 연륜에서 유래하는 세련된 미감을 획득하고 있으며 자연과 동화되는 동양 특유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개성이 강한 작업은 생태계의 위기가 운위되는 현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시의적절한 것으로 여겨지며, 세비야비엔날레 참가 등 날이 갈수록 국제적인 영역으로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그의 행보를 추동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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