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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식 / 가상과 실재의 경계에서

윤진섭

가상과 실재의 경계에서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홍화식의 그림은 눈으로 뒤덮인 평원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드러낸다. 특별히 주문한 안동한지의 겉을 일일이 핀셋으로 뜯어내 제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그런 행위를 일러 ‘쟁기질’ 기법이라고 부른다. “농부가 땅을 쟁기질 할 때 흙의 속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 깊이에서 생겨나는 명암과 질감을 통해 땅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일종의 유비(analogy)인 셈이다. 그에게 있어서 한지는 농부가 곡식을 심고 가꾸는 대지와도 같다. 대지에서 생명이 자라듯, 포근한 질감의 한지에서 이미지들이 살아난다. 



 한 땀 한 땀 핀셋으로 한지의 표면을 떠낼 때의 노동은 밭을 일구는 농부의 행위를 연상시킨다. 거기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농작물을 가꾸는 농부들의 행위가 자연의 이법을 거스르지 않듯이, 작업에 임하는 홍화식의 자세는 순응으로 일관돼 있다. 그의 작업이 노동집약적이요, 시간과의 싸움인 점은 그의 그림을 매우 찬찬히 뜯어보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관객은 그의 그림 앞에 서서 요모조모를 살피고 가까이 다가가거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부분과 전체를 아울러 감상할 것이다. 


 이미지를 감상하기 이전에 한지 특유의 질감을 느끼고 그것이 주는 색다른 감흥에 빠져드는 것 또한 홍화식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다. 그는 한지 특유의 표면 질감을 그냥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조작을 가함으로써 원래의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바꿔놓는다. 그렇게 해서 표면이 부풀어 오른 한지는 한과의 일종인 산자를 연상시킨다. 바로 이것이 홍화식 고유의 기법인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고유의 기법을 개발하는 문제는 창의력과 직결되는 것인데, 특히 추상회화의 등장 이후에 내용이 곧 형식이 된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연필심을 보푸라기가 일어난 한지 위에 반질반질하게 칠해 직사각형을 만든 <관계(Relation)>(60x80cm, 혼합재료, 2008)를 비롯하여, 아무 것도 그리지 않고 한지의 물성 자체를 드러낸 원형의 작품, 그리고 청색 혹은 검정의 채색이 부분적으로 가해진 몇몇의 추상작품들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그림들은 표현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가운데 작품의 내용보다는 물질의 질감과 물성 그 자체에 주목한 결과이다. 거기에는 가상이 없다. 재료도 현존하고 일종의 얼룩처럼 보이는 물감의 흔적도 우리의 눈앞에 존재한다. 그것은 어떤 사물의 허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사물들이다. 그는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한지와 그 위에 얹혀진 물감, 즉 재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그의 작품의 제목 <관계>는 이렇게 해사 얻어진 것이리라. 



 그러나 최근에 홍화식은 추상적 화풍에서 벗어나 이미지를 탐색하고 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관계’가 파생된다. 그러나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실재에서 이미지로의 변화, 즉 허상의 도입은 재료와 재료의 사이에서 파생되는 실재적 ‘관계’가 아니라, 이미지와 재료 사이의 허상적 ‘관계’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의미론적 변화는 매우 큰 것이다. 흥미있는 것은 그가 허상과 실재의 사이에 일종의 중간지대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재적 관계에서 허상적 관계로 넘어가는 중간에 하나의 다리를 마련하고 있는 게 그것인데, 채플린의 모자와 콧수염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그린 이 두 점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채플린의 얼굴이 사진이 아니라면 연상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단순히 추상적인 어떤 형태나 점으로 보기 쉽다. 


 홍화식은 최근에 제작한 인물화 연작을 통해 팝에 가까운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예수나 채플린과 같은, 우리의 눈에 익숙한 대중적 이미지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적으로 팝에 경사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숭례문이나 소싸움 장면, 석탑 등 비(非) 팝적인 소재들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소재의 영역은 그를 어떤 특정한 범주에 가두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또 하나 그를 팝의 범주에 넣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은 <관계-예수> 연작에서 보듯이, 매우 공을 들여 인물 고유의 ‘아우라(aura)’를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비록 그가 예수나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대중적 이미지를 도입하고 있지만, 제작의 목적이 반드시 ‘팝’에 있다기보다는 인물이 지닌 정신의 표현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그림에서는 팝아트 특유의 경쾌함과 가벼움을 엿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재료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고, 채색의 농담이 유발하는 맛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인물화 연작을 광의적인 의미에서 팝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홍화식의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인 만큼 그것은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열려 있다. 변화의 진폭이 큰 만큼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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