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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술의 해’에 거는 우리의 기대

윤진섭

‘새로운 예술의 해’에 거는 우리의 기대


윤진섭



 신문보도에 의하면 문화관광부가 다가올 2000년을 ‘새로운 예술의 해’로 정했다고 한다. 우리는 문화관광부의 이러한 결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환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지금이야 말로 문화예술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를 재빠르게 읽고 거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굳이 “만물은 유전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빌 필요도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언어학의 일반의미론(General Semantics)은 만물이 변하는 이러한 상황에 주목하여 과학적인 진술을 이끌어 낸다. 예컨대, “1999년의 철수는 1998년의 철수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문장구조상으로는 결함이 없으나 과학적인 진술은 아니다. 철수가 청년이든 노인이든 간에 신체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생화학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맥락에서 문화관광부를 바라본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두뇌의 집합체인 문화관광부가 어제의 문화관광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기체 뿐만 아니라 사회 조직도 늘 변하게 마련인 것이다. 

 새로운 예술이란 실험적인 예술, 혹은 전위적인 예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는 물이 아닌, 끊임없이 순환하여 신선하며 새로운 맛을 주는 물과 같은 예술이 바로 새로운 예술이다. 그래서 목마른 자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샘물처럼 변화를 갈구하는 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예술이요, 실험적인 예술인 것이다. 실험(experiment)은 말 그대로 실제로 시험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제도화되기 이전의 상태, 다시 말해서 의식의 자유와 유연성을 그 속성으로 한다. 

 실험예술을 굳이 다른 말로 바꾸자면 전위예술(Avant-garde Art)이라는 용어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전위(前衛)는 본디 군대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열의 맨 앞에서 적정을 관찰하며 행군을 하는 척후조가 바로 전위에 해당한다. 적에게 노출되기 쉬운 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전위예술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일종의 노출증 환자이다. 시쳇말로 ‘튀기’ 위해서 과감히 인습의 옷을 벗어던지길 좋아한다. 예술사회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위의 등장은 패트런 체제의 붕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봉건제도가 붕괴하면서 후원자 집단이 소멸되자 예술가들은 극심한 생존의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급격히 늘어난 예술가들의 숫자가 경쟁을 부추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들레에르로 대표되는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댄디즘은 예술가 무리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한 수단이었다. 

 실험 혹은 전위예술로 총칭되는 ‘새로운 예술’의 미덕은 무엇보다 고정관념의 타파를 통해 신선한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다는 데 있다. 전위예술가들이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혹은 ‘선택된 소수(selected minority)’로 불리우는 까닭은 예술에 대한 샘솟는 열정과 기존의 제도와 관습에 대한 불같은 저항을 통해 사회를 썩지않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는 대중을 ‘게으르고 무지한’ 무리로 묘사하였는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대중이야말로 전위예술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조롱의 대상이자 적대적인(antagonistic) 공격의 목표물인 것이다. 

 전위예술가들은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방안에 가득 채워주는 사람들이다. 일상의 권태에 젖어있는 사람들, 뭔가 변화를 필요로 하는 대중의 눈에 전위예술가는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사람이자 때로는 피에로와 같은 사람으로 비친다.  대중은 별난 짓거리에 대한 관람의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대부분의 전위예술가들은 가난에 허덕이지만, 그중에는 스타들도 있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요셉 보이스, 백남준과 같은 금세기의 스타들은 한 때 가난하였지만 끝내 부와 명성을 거머쥔 성공한 예술가들이다.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예술에의 열정을 먹고 사는 사람들. 전위예술가들에게 정부의 이번 ‘새로운 예술의 해’ 선포는 복음처럼 들린다. 모처럼 듣는 이 반가운 소식이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알찬 성과를 올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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