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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퍼포먼스의 양상과 흐름

윤진섭

한국 퍼포먼스의 양상과 흐름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한국 최초의 해프닝은 1967년 12월 11일부터 16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 오프닝에서 당시 20대의 청년작가들이었던 ‘무’동인과 ‘신’동인 멤버들이 벌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대본을 쓴 이 해프닝은 비닐우산을 들고 의자에 앉아있는 김영자의 주변을 촛불을 손에 든 한 무리의 참여자들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로 시작되는 한국의 전래동요를 부르며 맴돌다가 마지막에는 우산을 망가뜨리는 행위로 끝을 맺는 비교적 단순한 플롯의 작품이었다. 이 노래에는 구한말의 민족적 비운을 풍자한 것으로서 한민족 특유의 한 맺힌 정서가 감겨있는데, 1960년대 당시의 암울한 정치현실을 꼬집기 위해 도입했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은 민정으로 재출범한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야심차게 밀고 나가면서 경제성장의 가시적 성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때였다. 시중에는 ‘레저’니 ‘바캉스’니 하는 외래어들이 떠돌고 매스컴은 은근히 대중들이 소비심리를 부추기고 있었다.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대변하는 아파트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파급되던 이 무렵은 ‘모던 라이프’의 태동기로서, 나일론으로 대변되는 ‘나일론 문화’, 무교동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대표되는 소위 ‘비어홀 문화’가 모든 도시 라이프의 상징적 지표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또한 이 무렵은 블루진과 통기타로 대변되는 70년대 청년문화의 전신인 카페문화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때였다. 이 때를 전후하여 당시 장안의 인기 있는 음악감상실이었던 ‘세시봉’에서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혈기 왕성한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해프닝을 벌이곤 했는데 정찬승을 비롯하여 강국진, 정강자 등이 그 멤버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최초의 누드 해프닝으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투병풍선과 누드>(1968)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60년대 후반, 정찬승, 강국진, 정강자에 의해 주도된 일련의 해프닝은 언더그라운드적 성격의 반문화 운동으로서 기성문화와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주석(註釋)을 가한 문화비판적 성격의 것이었다. <한강변의 타살>, <사이비 문화 장례식>과 같은 일련의 데먼스트레이션은 일찍이 [청년작가연립전] 멤버들이 벌인 가두 피켓 시위, 제4집단의 반문화적 시위와 함께 사회 내지 미술제도에 대한 ‘비판적 아방가르드(critical avant-garde)’의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는 비록 겉으로는 민정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군부가 집권하고 있었던 때로서 언론과 사상, 표현의 자유가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치열하게 산 사람으로 김구림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정찬승과 함께 급진적인 실험미술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실험영화, 해프닝, 보디 페인팅, 회화, 메일아트, 대지작업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친 그는 여자 모델의 몸에 장식적인 꽃무늬를 그려 넣는 <보디페인팅>(1969)을 비롯하여 <스톡하우젠 음악에 따른 퍼포먼스>(1970), 실험영화인 <24분의 1초의 의미>(1969), 팬티차림으로 통나무 위에 앉아 좌선을 시도한 <도(道)> 등 의미있는 작품을  수차례에 걸쳐 발표하였다. 그의 이러한 실험작업들은 개념미술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들로서 전술한 비판적 아방가르드와는 달리, 미술 본연의 형식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김구림의 이러한 본질주의적 입장은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건용, 성능경, 김용민, 장석원 등에 의해 ‘이벤트(Event)'로 계승, 보다 심화되고 각론화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70년대는 군사정권에 의해 사상과 언론의 통제가 엄격해진 시기였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발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건용은 작업에 논리성을 도입한 최초의 작가로 사물과 인식주체로서의 인간의 행위사이에 벌어지는 문제를 분석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반면, 성능경은 신문을 읽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비판을 가하는 개념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김용민과 장석원은 이건용의 ’로지컬 이벤트‘에 반발, 동양적 사고에 기초한 직관적 방법론을 이벤트에 도입함으로써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60년대 해프닝이 연극적인 성격을 띠며 사회적 비판으로 시선을 돌렸고, 70년대의 이벤트가 개념주의적인 입장에서 사물과 인간 간의 문제를 사건화하고자 하였다면, 80년대 중반에 나타난 퍼포먼스는 총체적인 성격을 띠었다. 작가마다 관점이 달랐지만 행위 외에 음악, 연극, 마임, 무용, 비디오, 영화 등 각 장르의 특성이 부분적으로 흡수되면서 극적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안치인, 이두한, 이불 등의 퍼포먼스가 여기에 속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열린 <’89청년작가전>(1989.3.25-4.2)에서 이두한은 전시장에서 생선을 굽는 행위를 통하여 예술의 문맥 속에서 일상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안치인은 수백장의 카드를 허공에 뿌리는 카드 퍼포먼스를 행하였고, 이불은 기괴한 짐승모양의 의상을 착용하고 전시장 바닥을 기어다니거나 걸어다니는 그로테스크한 작업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80년대의 퍼포먼스가 음향, 조명, 신체, 연기(煙氣), 관객참여 등 환경적인 요소들을 도입하게 된 이면에는 70년대의 관조적이며 개념적인 성격의 이벤트에 대한 반발도 있었지만, 다양한 장르에 종사하는 작가들이 공동작업을 펼쳤던 데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또한 80년대 후반부터는 ‘화랑미술제’와 같은 다양한 문화행사의 오프닝 행사에서 퍼포먼스가 펼쳐져 대중화되는 양상을 띠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들어와서 더욱 폭넓게 확산되었다. 


 90년대에는 퍼포먼스가 사적인 담론을 위한 하나의 매체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었다. 특히 신세대 작가들인 이불이나 이윰의 몽상적이며 나르시스적인 성격의 퍼포먼스는 음향이나 조명을 이용하여 청각 내지 시각적 충격을 극대화했던 80년대의 일반적인 퍼포먼스 양상과는 달리, 그로테스크(이불), 나르시즘(이윰) 등 사적인 담론으로 내면화하는 양상을 띠었다. 90년대는 또한 에이즈를 비롯하여 신체, 페미니즘, 홈리스 등 사회현상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작업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홍오봉은 에이즈를 주제로 지속적인 작업을 펼쳤으며, 김석환은 날고기를 먹는 행위나 신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방법을 통한 크로테스크 바디 아트를, 문정규는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한 문화 테러적인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상진은 개념미술의 한 연장으로써 일상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는데, 관객참여를 유도하는 그의 퍼포먼스는 유머러스하여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1991년 12월 19일, 서울시 종로구 파고다공원 근처에 있는 카페 오존(Ozon)에서 이불, 김형태, 김사하, 오재원, 심철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이 모여 ‘바이오 인스톨레이션(Bio Installation)’이란 타이틀의 라이브 아트를 선보였는데, 설치미술을 곁들인 이 퍼포먼스는 미모의 마네킨과 결혼을 하는 오재원, TV 모니터와 진한 정사를 벌이는 김사하 등의 행위가 어울린, 일정한 플롯이 없이 예기치 많은 행위들이 뒤죽박죽 등장하는 일종의 난장 퍼포먼스였다.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형식의 퍼포먼스는 일종의 ‘문화 게릴라’ 형태로 지금도 산발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60년대와 70년대에 비교적 소규모로 발표되던 퍼포먼스는 80년대를 거치는 동안 격식을 갖춘 대규모의 페스티벌로 자리잡아 갔다. 1987년 아르코스모(Arcosmos) 미술관에서 열린 <’87 아르코스모 행위․설치미술제>를 비롯하여 <80년대의 퍼포먼스-전환의 장(場)>(바탕골미술관>, <89청년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한일퍼포먼스 페스티벌>(1989, 동숭아트센터) 등은 대표적인 행사로 꼽힌다. 


 이러한 대규모 행사들은 90년대를 거쳐 2000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1999년 12월 31일 자정에서 2000년 1월 1일 새벽까지 홍대앞에 있는 Theatre Zero에서 열린 <난장 퍼포먼스 페스티벌>은 ‘밥/똥’을 주제로 삼은 즉흥 퍼포먼스 축제였는데, 이 행사는 정부주도의 밀레니엄 축제가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방만하게 열린 것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한푼의 예산도 없는 상태에서 전국에 있는 30여명의 퍼포먼스 작가들이 자비로 참가함으로써 성사되었다.  2000년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인사동 일원에서 열린 <2000 서울 국제행위예술제(2000 Seoul International Performance Art Festival(SIPAF2000)은 퍼포먼스가 주류 속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된 국제행사였다. 프랑스의 올랑(Orlan)을 비롯하여 호주의 스텔락(Stelarc), 일본의 타스미 오리모토(Tatsumi Orimoto) 등 9개국에서 90여명의 작가들이 참가한 이 행사는 한국의 퍼포먼스가 국제화 시대에 진입하는 계기가 된 기념비적인 행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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