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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시(詩)-공동체적 삶의 소통을 위한 서주(序奏)

윤진섭

바람의 시(詩)-공동체적 삶의 소통을 위한 서주(序奏)


윤진섭(예술감독)



Ⅰ. 만물이 탄생하기 전, 지구상에는 무엇이 존재했을까.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오직 바람만이 뜨거운 지표를 식히며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자신이 어디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한 채, 바람은 그렇게 긴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도달한 곳이 어딘지 바람은 또한 몰랐을 것이다. 바람은 여행을 하나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기나 긴 여행을 습관처럼 되풀이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오직 바람만이 역사를 기록했던 것처럼, 마치 한 편의 시를 써 내려가듯, 바람은 오늘도 그렇게 자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바람이 우리에게 부여한 상상의 연금술(鍊金術)은 마치 축복의 단비처럼 대지를 적시며 우리에게 꿈꿀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 준다. 바람은 ‘현대성(modernity)’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대지를 호흡하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계몽과 발전의 단선적 궤도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환법칙에 편안히 몸을 맡기라고 타이른다. 태초의 말씀(logos)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한다. 돌고 도는 우주의 원환 운동에 합류하여 잃어버린 영성(靈性)을 회복하라고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인류 역사의 기나 긴 도정에서 어느 날 깃발이 태어났다. 처음에는 넓은 나뭇잎이 깃발을 대신했을 것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말라 바스러져 버리자 그것이 쓸모 없음을 알아챈 한 인간에 의해 깃발이 고안되었을 것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모습을 관찰한 영리한 인간들에 의해 직조술이 발명된 이후의 일이다. 천이 발명되자 인간은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동시에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다양한 깃발을 창안해 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깃발의 용도나 모양새도 다양해져 갔다. 전쟁, 벽사(辟邪), 제의, 축제, 장례, 종교, 기원, 의장(儀狀)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의 목적에 쓰이기 위한 용도로 각기 다른 모양새의 깃발이 고안되었다.

 깃발이 사회적, 집단적, 공공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통신 시설이 열악한 시대에 깃발은 봉화와 함께 유일한 신호의 수단이었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깃발은 근거리에 가장 적합한 신호의 매체로 각광을 받는다. 백 미터 단거리 경주에서 수기(手旗)는 딱총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군대의 사열, 측량, 교통 통제에 깃발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깃발은 초국가적, 초민족적, 초인종적, 초문명적인, 포스트 모던 시대의 마지막 아날로그식 통신 매체인 것이다. 



Ⅱ.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매체를 다룬다고 해서 구식이란 생각은 떨쳐 버리자. 살다보면 낡은 것이 새 것보다 좋은 때도 있는 법이다. 빛 바랜 흑백 사진을 보며 추억에 젖을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사진을 통해 고향의 냄새를 맡고,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고향(die Heimat),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punctum)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깃발은 잃어버린 문명의 시원(始原)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의 희미한 벽화가 원시인의 체취를 간직하고 있듯이, 깃발에 그려진 행위의 흔적에는 디지털의 픽셀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진한 냄새가 배어 있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에세이를 통해 아우라(Aura)의 상실을 경고한 바 있다. 가령, 우리가 다름 아닌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깃발에 그림을 그릴 때, 바로 이곳에서의 깃발 작품이 지닌 단 한 번뿐의 현존이 기술복제의 방식에서는 증발된다는 것이다. 판화,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등 각종 복제 매체들은 “작품의 일회적인 출현 대신에, 그것의 대량적인 출현”을 초래했다고 그는 역설한다. 아우라를 “가장 가까운 것일 수도 있는 먼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한 그는 어느 한적한 여름 한낮의 정적 속에서 아스라이 펼쳐진 지평선 위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것이 곧 산의 아우라를 숨쉬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기술복제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사물을 보다 공간적 내지 인간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나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복제품을 통해서라도 작품의 원본이 지닌 일회적 현존에 다가가고 싶어한다. 

 현대의 복제미술이 지닌 아우라의 상실은 곧 고향의 상실에 다름 아니다. 깃발 그림은 복제술을 이용한 것을 제외한다면, 상실된 아우라의 회복을 위한 시도이다. 그것은 근원을 따져볼 때, 제의(祭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의 서낭당이나 몽골의 오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목이나 돌무더기에 꽂힌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은 헝겊조각들은 기복신앙의 산물이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형태의 예술작품이다. 마술의 힘을 간직한 그것들은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아우라적 존재양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참다운 예술 작품의 유일한 가치는 그 바탕이 의식(儀式)에 있으며, 예술 작품은 이 의식 속에 독창적인 최초의 사용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사용가치로 치자면 깃발을 따를만한 것이 없다. 깃발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탄생된다. 인간은 신호를 보내거나 상징할만한 뭔가를 기리기 위해 깃발을 창안한다. 한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비롯하여 문장기(紋章旗), 의장기, 농기, 군기, 무속기, 민속기 등등은 특정한 집단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표지(標識)이거나 정신적 혹은 사회적 요구의 산물이다.

 그러나 깃발 그림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깃발 그림도 때로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목적에 의해 그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순수하게 화가 개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그려질 때, 칸트의 말을 빌리면 무관심적(disinterested)이다. 현실적인 필요로부터 독립돼 있다는 뜻이다. 

 깃발 그림은 일종의 변형된 캔버스(shaped canvas)요, 화지(畵紙)의 대용물이다. 그것은 자연, 그 중에서도 특히 바람을 전제로 그려진다. 바람이 없는 깃발 그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깃발 그림은 바람에 나부낄 때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야외로 나간다. 



Ⅲ. 깃발 그림이 야외로 나갔다는 말은 곧 미술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이 말은 또한 유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미술관의 닫힌 공간에서 미술이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깃발 미술은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삶의 시원(始原)을 향해 긴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왜 하필이면 ‘포스트 모던’이 운위되는 오늘에 이르러서인가. 

 알다시피 현대사회에서 학문이 전문화되고 제도가 고착됨에 따라 인간은 점차 고립돼 가고 있다. 세계를 총체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영역이 없어진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계몽주의 이후에 과학, 예술, 윤리가 분화됨으로써 점차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추구가 불가능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 자율화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문화적 모더니티를 “종교와 형이상학에 나타난 실체적 이성이 과학, 도덕, 예술이라는 세 가지의 자율적 영역으로 분화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이러한 분화가 종교와 형이상학에 의한 통일된 세계관의 붕괴를 부추겼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일된 세계관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학문, 종교, 예술이 각기 제도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를 총체적으로 전망하는 일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과학, 도덕, 법률, 예술 비평이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됨에 따라, 인식적, 윤리적, 미적 합리성의 담론들은 전문가들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고 만 것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들은 이제 끼어 들 여지가 없게 되고 말았다.

 특정한 담론에 대한 전문가 계층의 장악은 일상적 대화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 T.V에서, 신문이나 잡지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암호와 같은 전문 용어만을 늘어놓는다. 일반 대중들은 도무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전문가의 훈련을 위한 교과(disciplines)의 분리가 오직 전문가들만이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들, 즉 경제학, 정치학, 법, 문화에 공헌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항의한다. 그는 말한다. 


 “사회의 위계질서(hierarchy)와 기회의 불평등은 보다 수준 높은 교육에 대한 제한된 입문에 의해 더욱 영속화된다. 이러한 제도에 의해 생성되는 경쟁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비유기적이며, 비창조적이다.”


 일찍이 요셉 보이스는 자유국제대학(International Free University:IFU)을 창안하였다. 이 대학은 요셉 보이스의 제안으로 영국의 미술평론가 캐롤린 티스달(Caroline Tisdall)에 의해 ‘창조성과 인접 학문간의 공동연구를 위한 자유국제대학(Free International University for Creativity and Interdisciplinary Research)’의 설립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제출했던 한 보고서에 근거한다. 1972년에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보이스는 국가가 경영하는 제도 기관들이 전문가 양성에만 급급한 나머지 각종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에 주목하게 된다. 그에 의하면 학생들의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역할을 함양하는 데 있어서 현대의 교육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데, 이를 통해 보이스의 현대 교육에 대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창조성은 예술의 전통적 형식들 가운데 하나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도 창조성은 예술의 훈련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들 각자는 경쟁심과 성공에 대한 억압된 추구에 가려진 창조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잠재력을 인식하고, 탐구하고 계발시키는 것이 곧 이 학교의 역할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믿었던 그는 이러한 생각을 1977년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6 Kassel)를 통해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 때 더블린에 본부를 둔 자유국제대학의 카셀 분교가 설치되어 100일간의 회기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교육적 실천은-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넓은 의미의 ‘사회적 조각’이라고 불렀다.-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들로부터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역할을 유도해 내는 데 있어 현대의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려 깊은 진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즉, 전문가들에 대한 요구가 사회의 어떤 분야에서는 점진적으로 소멸돼 가고 있다는 점과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이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경영하는 제도교육기관에 대해 전문가 양성을 부추기는 국가의 정치적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그는 국가 경영의 제도교육기관이 지닌 이러한 문제점을 비롯하여 전통적 교육구조와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회 각 분야의 파편화와 고립화를 영속화함으로써 사회적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고 내다보았다.

 요셉 보이스는 자유국제대학을 통해 열린 형식의 대안적 교육을 주창하였다. “창조는 단순히 재능이나 직관, 상상력 등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연관된 다른 영역에까지 확장될 수 있는 자료를 형상화하는 능력”을 의미하므로 여기에는 노동자, 가정주부, 농부, 의사, 철학자, 판사 등등 직업의 귀천과 전공을 가리지 않고 참여하여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Ⅳ. 현대예술 혹은 현대교육에 대한 요셉 보이스의 통찰이나 하버마스의 진단은 현대미술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많은 도움을 준다. 알다시피 미술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전문화, 세분화되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매체들이 시시각각으로 개발되고, 그것들은 조만간 예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비디오는 처음에 생소한 매체였으나 이제는 대중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비디오 매체 자체는 대중에게 친숙한 것이 되었지만,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비디오 아트는 그들에게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컴퓨터 아트는 또 어떠한가.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는? 제롬 로덴버그(Jerome Rothenberg)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있어서 예술가는 ‘마지막으로 남은 비전문가’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처럼 될지는 불투명하다. 중요한 것은 현대의 작가들의 작품이 대중의 미적 교육이나 소통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이다. 

 하랄드 제만(Harald Szemann)이 기획한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스날의 특별전(주제 : 인류의고원(Plateau of Humankind))에 출품된 112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다 살펴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회화나 조각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체 비중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설치, 사진, 비디오, 영화, 퍼포먼스, 컴퓨터 아트 등의 작품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분석해내기란 전문가에게도 지난한 일이다. 하물며 미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대중에게 있어서 감상의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올해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출품된 한 비디오 작가의 방에서 관객의 반응을 관찰한 적이 있는데, 그 많은 관객 중에서 3분 이상을 머물다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현대미술이 지나친 전문성의 추구로 인하여 가장 소중한 대중과의 소통을 등한히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새로운 문화 창출에 있어서 ‘창조적 소수’의 역할을 중시한다고 하더라도 미술현장에서 느끼는 대중의 괴리감은 좀처럼 극복될 것 같지 않다. 비록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가 현대미술을 그토록 옹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미술계의 제도에 있는가, 아니면 예술에 있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전위적 역할 때문인가?

 이번 월드컵 축제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 때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광장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의 거리와 공원에는 붉은 옷을 입은 7백 5십만의 응원 인파(‘붉은 악마’)로 넘쳐흘렀다. 근 30여 년간을 지배한 군부정치에 억눌렸던 흥이 축구를 기폭제로 폭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감동적인 의식 해방의 한판 춤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응원전이 군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일종의 관객참여(audience participation)인 셈이다. 

 ‘붉은 악마’의 응원 장면을 항공 촬영한 사진을 보면, 거리를 온통 붉은 색으로 채색한 것 같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인파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한국인들의 무한한 창조력이 숨겨져 있다. 붉은 색과 태극기를 소재로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들이 무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표출되고 있다. 보디페인팅에서 가면, 의상, 응원용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미술이 있고, 연극이 있으며, 음악이 있고 무용이 있다. 이 모두를 총칭하여 거대한 퍼포먼스라고 부르자. 정규 미술시간이나 음악시간에는 발휘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이 해방의 축제를 통해 마음껏 발산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발랄한 신세대들이 벌이는, 이보다 더 훌륭한 예능교육 실습의 현장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이변은 [2002 깃발미술축제]의 현장에서도 일어났다. 난지천공원 진입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돔 형태의 구조물은 오방색 천들로 치장됐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아름다운 천 조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주변에서 행사기간 내내 열린 시민참여 행사는 한국인들이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깃발에 소원담기’, ‘환경벽화 만들기’, ‘엄마와 함께 서울 그리기’, ‘판화교실’, ‘염색깃발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등등의 참여 프로그램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은 자신도 예술에 참여한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처럼 대중이 예술의 현장에 직접 뛰어듦으로써 이루어지는 관객참여는 역동적인 미적경험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미술교육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은 결과로서의 작품에 대한 미적 향수가 관조적인 형식을 취하는 것에 비해 참여적 형식을 취하며, 환경미술이나 해프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객이 작품의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창작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요셉 보이스의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는 발언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숨어있는 창조적 재능을 계발한다는 의미에서 현대의 미술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Ⅴ. 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인류의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열리는 세계의 양대 축제이다. 비록 운동경기가 중심이 되는 행사이긴 하지만, 이 둘의 근원은 고대 제의(祭儀)에 닿아있으며 거기에는 또한 예술이 함께 녹아있다. 말하자면 제의와 예술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사뭇 달라 보이지만 실은 다 같은 나무 줄기인 것이다. 앞서 나는 깃발이 지닌 의미에 대해 논하면서 고향의 상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깃발 미술은 상실된 아우라의 회복을 위한 몸짓이라고 말하였다. 가장 오래된 형태의 예술 작품인 깃발은 다시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면, 아우라적 존재양식을 갖고 있다. 마치 오월제의 마당 한 가운데 쌓아놓은 옥수수더미처럼 깃발은 공동체적 삶의 상징이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월드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 그 자체가 아니라 경기를 통해 느끼는 삶의 열정이요, 삶 그 자체이다. 예술 또한 근원적인 입장에서 보면 삶 그 자체였다. 제인 해리슨(Jane E Harrison) 여사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고대에는 예술이 곧 제의였고, 제의가 곧 예술이었다. 월드컵 경기를 보며 느끼는 열광과 환호는 삶에 대한 뜨거운 긍정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월드컵의 회기 동안 전 지구촌은 말할 수 없는 광휘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의 가능성 때문에 충만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 축제의 기간동안 세계는 뭔가 알지 못할 신성한 기운에 휩싸인다. 그것은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표현을 빌리면, “잠재력과 가능성이 충만한 상태”, 곧 '리미널(liminal)' 순간이다. 매일의 일상을 영위하고 법과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가운데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극적인 순간이 바로 ‘리미널’한 순간인 것이다. 

 월드컵 축제 기간동안 열린 [2002 깃발미술축제]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시킨 촉매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빅 이벤트였다. 난지천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1킬로미터 구간에서 벌어진 세계적 규모의 이 미술 축제에 월드컵 참가국을 포함, 45개국에서 약 5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였으며, 약 30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이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이 행사는 월드컵 기간 중 여러 나라의 언론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 소개되었다.



Ⅵ.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 자리잡은 난지천공원은 친환경적 성격의 시민공원이다. 난지도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70년대 이후 급격히 산업화의 물결에 휘말리면서 쓰레기로 매립되기 시작한 지역이다. 그 후 약 1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샛강이 흐르던 난지도는 봉우리 없는 두 개의 평평한 산으로 변했다. 이제 버려진 쓰레기 매립지는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으로 거듭 태어나 해발 90여 미터에 이르는 이 산의 정상에는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이 공원 아래에 월드컵 경기장이 있다. [2002 깃발미술축제]가 열린 난지천공원은 월드컵경기장 앞에 있는 평화의 공원과 함께 서울 시민들의 휴식과 체력 단련을 위해 근래에 조성된 곳이다.

 마치 마술을 부리듯, 쓸모 없는 쓰레기를 모아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한 한국인의 지혜는 마침내 예술의 영역에도 발휘되었다. 한국은 예로부터 유구한 기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인의 선조들은 독창적인 디자인의 군기, 의장기, 민속기 등을 창안하였다. 이번에 월드컵 개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서울시가 주최한 [2002 깃발미술축제]는 기의 유구한 전통에 힘입어 깃발을 매개로 미술의 영역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획기적인 전시회이다.  

 [2002 깃발미술축제]는 크게 두 개의 권역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그리고 본 행사가 열리는 난지천공원을 감싸고 있는 ‘고리지역(Loop Zone)’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깃발 지역’이다. ‘고리지역’에는 FIFA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의 국기, 서울시기, 월드컵 공식 엠블렘기, FIFA기, UNICEF기, 페이플레이기, 깃발미술축제 행사기 등이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난지천공원 주변도로 약 7.5킬로미터 구간에 배너 형태로 반복해서 게양되었다. 

 창작깃발지역에는 군집깃발을 비롯하여 축하휘호깃발, 한국의 전통깃발, 해외 창작깃발, 국내 창작깃발 등 약 700여 점에 이르는 다양한 깃발이 전시되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대규모 국제깃발미술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한 난지천공원의 오리연못 주변과 관찰데크에는 난지도가 지닌 입지적 조건과 본 행사의 주제인 “평화와 환경”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약 30여명에 이르는 국내 작가들의 설치작품이 전시되었다.     

 [2002 국제깃발미술축제]는 제도화된 전시장을 거부하고 보다 개방된 공간을 찾아서 대중적 만남을 시도한 독특한 형식의 야외미술제이다. 공기 맑고 시야가 탁 트인 야외에서 관객들과 직접 호흡을 하는 만큼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흡인력도 갖추고 있다. 수려한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진 깃발들의 스펙타클한 모습은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이번 행사의 의의는 무엇보다 대중과의 교감을 위해 작가들이 기꺼이 야외 공간으로 뛰쳐나왔다는 점에 있다. 작품을 통한 관객과의 허심탄회한 만남보다 예술의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없다. 특히 이번 행사가 대중들의 미술 교육에 미친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번 행사가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이 아닌가 한다.  


<2002 한일월드컵 공식문화행사 깃발미술제> 서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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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Benamou, Presence and Play, Performance in Postmodern Culture, ed Michel Benamou et Charles Caramello, Madison, Wisc., Coda Press, 1997

Jane Harrison, Ancient Art & Ritual, Oxford Univ. Press. England, 1951

Jürgen Habermas, Die Moderne ein unvollenedetes Projekt <Kleine Politische Schriften>, 1981. 모더니티:미완성의 프로젝트, 이영철 역, <현대미술비평 30선>, 중앙일보사, 1987

Walter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현대사회와 예술>, 차봉희 역, 문학과 지성사

윤진섭, 행위예술감상법, 대원사, 1995

윤진섭, 퍼포먼스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심포지움 자료집, 1998

윤진섭, 열린 예술개념으로서의 퍼포먼스와 신체의 의미, 광주교육대학 세미나 자료집,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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