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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아트의 확산과 계보 찾기

윤진섭

뉴미디어 아트의 확산과 계보 찾기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Ⅰ. 머리말


 2001년도 뉴미디어 분야는 전반적으로 매머드 급의 전시형태 보다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차원의 중소규모 급 기획전시와 개인전이 부쩍 증대된 추세를 보여주었다. 이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미디어시티 서울 2000>, <2000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2000 서울 국제행위예술제> 등 블록버스터 급의 국제전이 줄을 이었던 전년도와는 달리 대형기획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범주를 설치, 비디오 아트,  컴퓨터 아트, 퍼포먼스,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웹 아트 등으로 규정할 때, 2001년도 이 분야의 전시회는 예년에 비해 질량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산된 뉴미디어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국제전의 추세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보다는 설치나 영상매체, 퍼포먼스 등 뉴미디어의 활성화를 진작시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설치나 퍼포먼스와 같은, 현대미술에서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매체를 가리켜 굳이 ‘뉴미디어’라는 용어로 범주화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나, 문제는 이들 매체와 결합된 비디오와 컴퓨터가 보여주는 혼성 양상이다. 이 경우의 현저한 예를 외국의 사례에서 찾자면 사이버 퍼포먼스를 하는 호주의 스텔락(Stelarc)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인조인간 퍼포먼스는 행위에 인터넷 시스템을 결합시킨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장르의 크로스오버나 혼성(hybrid) 현상은 마치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체의 면역체계를 교란하는 것처럼, 기존 예술의 개념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예술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가령, 인터넷 시스템을 활용한 사이버 아트는 기존의 전시장 체제를 거부하고 가상공간 속에서 네티즌들 간의 ‘인터랙티브’한 소통방식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종전의 작가와 수용자의 개념을 허물고 수용자도 작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저한 예이다.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에 기초한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추상적인 기호에 기반을 둔 디지털 세계로의 전환은 예술의 양상을 전혀 새로운 형태로 바꿔놓았다. 음성, 문자, 동영상그림의 멀티미디어적 통합은 컴퓨터가 등장함으로써 가능해 졌는데, 1과 0의 조합으로 표현되는 디지털 세계에서의 예술적 구현은 음성, 문자, 동영상, 그림의 표현이 하나의 수단에 의해 가능해지면서 그 결합 또한 손쉬워지게 된 것이다(배식한,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책세상, 52쪽). 이 모든 것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비롯된 것이다. 아날로그 체계에서 미술 작품은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눈으로 보는 일방적 향수 대상이지만, 인터넷 시스템에서의 쌍방향적 소통방식은 관객을 이러한 일방적 관계로부터 해방시켰다. 퍼포먼스의 특징인 ‘관객참여(audience participation)’가 보다 극대화ㆍ민주화된 것이 디지털 아트인 것이다. 

 본고는 현대미술에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요인과 문화적 여건을 염두에 두고 2001년도에 있었던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디지털 및 웹 아트 분야의 활동 상황에 대해 필자의 경험과 자료를 토대로 기술한 것이다. 



Ⅱ. 미술과 과학의 만남-사이버 아트의 세계


 ‘미술과 과학의 만남’을 주제로 한 기획전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술에 담긴 과학전>(대전시립미술관:10.12-11.25)을 들 수 있다. 김세진, 박혜성, 안수진, 육태진, 전종철, 홍성도, 심철웅, 조범진 팀, 채미현, 전수천, 김영진, 김지현, 김창겸, 김해민, 노승복, 염중호, 이주용, 이중재, 이강우, 한계륜 등 국내의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이 전시회는 일찍이 대전 엑스포와 대덕첨단과학연구단지를 통해 구축된 과학 인프라를 자랑하는 과학도시 대전의 위상에 걸맞는 기획전시여서 화단의 기대를 모았다. 사진, 비디오 아트, 컴퓨터 그래픽, 디지털 웹 애니메이션, DVD 음향, 홀로그램 등 현대의 첨단 과학매체들이 동원된 이 기획전은 한국의 미디어 및 테크놀로지 아트의 현황을 조감해 보는 동시에 최근 몇 년간 활발하게 이루어진 이 분야의 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제4회 광주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기획팀이 국제큐레이터 워크샵을 열던 무렵, 이화여대 교정에서는 초여름 밤의 숲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장식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제1회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화여자대학교 교정:5.23-5.24)이 그것이다. 이화여대조형예술대학과 E 미디어 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숲과 꿈>은 이화여대 교정의 숲 속과 마당에 설치된 8개의 대형 스크린을 이용한 야외 멀티미디어 아트 쇼였다. 한 여름밤을 싱그럽게 수놓은 이 야외 전시회는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20여 작가의 작품과 초대작가 부문의 13개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고, 특별부문의 <외국 싱글 비디오>와 <이화의 백남준>,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개교 115주년을 기념하는 <115주제전>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이 주최한 <한유럽비디오작가전>(9.28-10.20)은 전시주제를 “비현실적 혹은 비실제적 시간”이라고 붙였는데, 이는 비디오 아트의 속성을 잘 아우르는 말이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의 시제는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비실제적인 시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객에게는 모니터의 영상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이 실제적인 시간이며, 현실적 시간에 해당한다. 관객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시공간에서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있었던 타자의 경험을 간접 체험의 형태로 경험하게 되며, 그러한 경험은 숙명적으로 왜곡되거나 분절된 경험일 수밖에 없다. 예술이 본질적으로 허구란 것은 바로 이런 사실에서 확인된다. 로즈마리 트로켈, 대런 알몬드, 다비드 클레르, 마린 위고니에 등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김수자, 김영진 등이 참가한 이 전시회는 비디오 아트의 국내외적 흐름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상과 예술의 결합이다. 예술이 전시장을 떠나 일상적 삶의 공간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양상은 이제 현대미술의 가장 흔한 전시방법론이 되고 말았다. 도심을 달리는 지하철을 미술관으로 바꾼다든지, 아파트, 공장, 심지어는 탄광촌마저 예술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안에 있는 일주아트하우스에서 열린 <상어, 비행기를 물다>(10.12-11.27)는 테크놀로지 매체를 빌어 대중과의 교감을 시도한 전시회로 관심을 모았다. 이소미, 조지은, 김창겸, 한계륜, 유지숙, 김진형, 강애란, 양아치, 이부록, 심철웅, 강홍구, 장지희, 김린다, 김해민, 백은일 등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영상작가들아 갤러리와 아카이브, 로비, 엘리베이터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일상의 이중성’, ‘일상의 병리현상’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관객참여를 시도하는 형태의 예술은 퍼포먼스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디지털 아트의 영역으로까지 넘어오고 있다. 정영훈의 개인전 <Pedigree Program>은 관객의 참여가 없이는 아예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디지털 인터랙티브 설치작업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각기 다른 16개의 동작이 입력된 프로그램 중에서 관객이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고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발자국을 따라가면 스크린에서는 총검술을 하는 군인의 영상이 나타난다. 70년대의 독재권력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 그의 영상작업은 단순한 기법과 플롯이 흠이나 새로운 방법론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시도한 2001년도의 기획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디지털아트네트워크>(테크노마트 전관:6.18-8.18)전이다. 정보통신부가 주관하고 인포아트코리아(대표 장동조)가 기획한 이 전시에는 국내 작가 약 60여명이 참여하여 1층에서 9층에 이르는 전시장 전관을 사용,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설치, 비디오, 컴퓨터, 네온, 레이저 등이 동원된 이 대규모 전시회는 빌딩 내에 산재한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작품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에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 작품도 있었다. 박훈의 작품은 빌딩의 구석구석에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의 발자국을 그려놓고 관객들이 8종류 이상을 맞추면 판화작품을 선물로 주는 관객참여를 시도한 것이었다. 대중적 공간에서 관객에게 다양한 형태의 첨단전자예술의 향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디지털’이란 명칭과는 달리 ‘아날로그’적 형식의 작품이 다수 출품된 것과 전시진행의 미숙함이 옥의 티였다. 

 금산갤러리에서 열린 <강애란전>(3.28-4.3)은 책을 소재로 전시장을 인스톨레이션화한 전시회였다. <비디오 책-이데올로기의 변화>, <디지털 책 프로젝트-사이버 도시>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하드웨어로서의 책에 영상을 결합시킨 강애란은 읽는 책에서 보는 책으로의 전환, 혹은 문자에서 영상 이미지로의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책의 고정된 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을 제시하였다.

 뉴미디어에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매체는 비디오이다. 일정한 스토리 텔링을 가진 것이든, 아니면 촬영기술이나 편집기술에 의존한 것이든, 싱글 채널 비디오는 작가의 현대적 감수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로 가장 선호되고 있다.

 2001년에 열린 비디오 아트 내지 하이테크 인터랙티브 관련 전시로는 박찬경, 장영혜, 솔론 호아즈가 참가한 <선샤인전>(문예진흥원 인사미술공간:2.5-2.24), <홍성민&불가능한 미디어전>(쌈지스페이스:5.22-6.20), <박혜성전>(금호미술관:2.16-3.4),<자국-이순종ㆍ이향숙전>(사루비아다방:11.21-12.19), <디지털시티전>(스페이스 사디 갤러리:6.14-7.7), <전준호전>(성곡미술관:6.7-6.30), <백남준, 보이스 그리고 케이지전>(하나은행 본점:6.22-7.1), <한계륜전>(갤러리 아츠윌:11.14-11.27), <전성호ㆍ양은미 미디어 아트전>(쌈지스페이스:11.15-12.16), <조혜정ㆍ조윤정전>(갤러리보다:11.1-11.18), <Fantasia전>(스페이스Ima:11.7-12.9), <Invisible Touch전>(아트선재센터:10.26-12.2), <심철웅전>(헬로아트갤러리:11.27-12.4), <구심ㆍ원심전>(쌈지 스페이스:1.11-2.25), <최우람전>(핼로아트갤러리:11.3-11.24), <해 그리고 달-비디오그라피2001>(일주아트하우스:3.9-4.10) 등이 있다.

 비디오 및 하이테크 아트와 연관시켜 볼 때, 본격 멀티미디어 아트센터를 표방하고 출범한 일주아트하우스(광화문 흥국생명빌딩 1층)와 디지털 및 뉴 테크놀로지의 전당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아트센터 나비(NABI,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4층),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젊은 실험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는 쌈지스페이스,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기획전시를 빈번히 열고 있는 아트선재센터가 이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뉴미디어 작가들의 상당수가 이들 전시장과 대안공간 루프, 대안공간 풀, 사루비아다방, 그리고 성곡미술관이나 금호미술관, 아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보다, 갤러리 아츠윌과 같은 성격이 분명한 전시공간을 선호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이러한 전시공간에 대한 항구적 지원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Ⅲ. 설치작업과 퍼포먼스

 

‘바깥미술’을 표방하며 출범한 <대성리전>은 ‘12.12사태’로 인해 스산한 정치적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80년대 초반 당시, 대중들에게 예술의 체온을 느끼게 해주었던 야외 전시회였다. 1981년 1월, <제1회 대성리전> 이후 20여년 간 대성리 북한강변 화랑포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20주년을 고비로 해체되었는데, 그 후속전이 바로 <바깥미술전>(2.3-2.17)이다. 김언경, 배운영 등 대성리에 애정을 지닌 <대성리전> 초창기 멤버들이 ‘바깥미술회’를 조직하고 지금까지 이 회를 이끌어오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 자생력 회복을 기대하며 매년 개최하고 있는 이 전시회는 자연친화적 자세를 유지함과 동시에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점이 특징이다.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매머드급 국제전이 열리진 않았지만, 공ㆍ사립 미술관이 기획한 전시회 가운데에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한 대규모 기획전이 열려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었던 것은 2001년도 미술계의 수확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삼성미술관이 기획한 <Art Spectrum 2001>(2001.11.23-2002.1.27)이다. 삼성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30-40대에 이르는 국내작가 9명을 각자 1명씩 선정하여 에세이를 쓰고 책임 큐레이팅했는데, 이같은 형식의 전시기획은 책임의 소재가 분명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안소연(김범), 이준(김아타), 박본수(김종구), 박서윤숙(박화영), 태현선(오인환), 김용대(유현미), 구경화(이동기), 우혜수(조승호), 오승희(홍수자:이상 괄호 안의 명단은 작가) 등 큐레이터들은 최근 몇 년 사이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비디오아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를 선정하여 그들의 작업세계를 보여주었다. 이 전시회는 일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작가를 선정했다기보다는 작가의 작품세계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1988년부터 10여 년간 지속되었던 현대한국회화전의 후속전 성격이 짙은 기획전으로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준기기획의 <현장 2001 건너간다전>(성곡미술관:8.17-8.31, 광주롯데화랑:9.21-10.4)은 90년대 접어들어 쇠퇴하기 시작한 민중미술이 해체되면서 미술에서의 현실참여가 미약해진 점에 착안하여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소통방식에 주목한 전시회였다. 구본주, 김태헌, 박경주, 박은태, 방정아, 배영환, 이중재, 최병수, 최평곤 등이 참여하였다. 

 김창겸, 박은선, 김종구가 참가한 <탈물질전>(갤러리아트사이드:9.6-9.17, 윤재갑 기획)은 미술의 재료에 착안하여 현대미술이 정보적 가치로 전환되는 상황 속에서 개념화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검증한다. 하나의 오브제에 불과한 석고상 위에 이미지를 입히면 코카콜라 병으로 전환하는 비디오에 의한 환영(김창겸), 조각의 영역에서 회화나 서예로, 다시 하나의 풍경으로 변화해 가는 쇠(김종구), 이차원과 삼차원 사이에 가로놓인 시각적 환영(박은선) 등 개성이 강한 세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포스코미술관의 <외유내강전>(9.13-10.25)은 고예실, 김희경, 손정은, 신미경, 유재홍, 조성묵, 함연주, 황혜선 등이 참여하였는데, 조성묵의 국수가 쌓인 소파, 신미경의 비누로 모각한 그리스 조각상, 김희경의 수건으로 만든 화장실, 함연주의 머리카락 드로잉처럼 기존의 상식을 전복하는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덕원갤러리에서 열린 <10인의 자연해석전>(8.29-9.11)은 회화, 판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 등 6개 분야의 작가 9명이 참여하여 실험적인 작업을 보여준 기획전이었다. 예술과 자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자연이 예술가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였다. 

 한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안성금전>(11.16-12.9)은 80년대 초반이래 문제작을 다수 제시했던 이 작가의 작업세계를 총망라해서 보여준 일종의 회고전적 성격의 전시회였다. 현대산업사회의 부산물인 산업제품의 폐기물을 거대한 크기의 로켓트와 결합시켜 권력을 풍자한 작품을 비롯하여, 반으로 잘라 흑색과 흰색을 칠한 부처상 등 안성금의 작품은 스케일이 크고 시사적인데,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세계 전반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술이 일상으로 침투하여 생활 환경에서 살아 숨쉬는 표정을 보려주려는 시도는 여러 기획전의 형태로 최근에 부쩍 증가하고 있는데, 정독도서관에서 있었던 <無限光明새싹알통强推展>(4.11-4.23)은 이의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60여 명의 신진작가들이 참여하여 공공도서관의 구조를 이용한 이 전시회는 신세대 작가들의 신선한 사고와 발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설치와 오브제가 주요 표현방법론으로 등장되었다. 

 <행위ㆍ영상ㆍ설치 프로젝트 CITYSUWON 2001>(수원미술전시관:11.3-11.9)는 수원에서 열린 기획전이었다. 90년대 초중반, 컴아트 그룹에 의한 실험적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 수원은 김석환과 황민수 등이 퍼포먼스를 지속하고 있는, 전위미술의 열기가 뜨거운 지역이다. 김영원, 김석환, 김춘기, 홍오봉, 황민수, 심승욱, 손정목, 김기라, 한준희, 장혜홍, 이용덕, 성동훈, 박근용 등 행위, 영상, 설치, 조각 등 4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기획전은 지역의 실험미술 활성화에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술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는 퍼포먼스의 활성화이다. 퍼포먼스는 초기에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이 전시회의 부대행사로 행한 적이 많았으나, 이제는 전문적인 퍼포머가 나타날 정도로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00년 벽두의 <난장 퍼포먼스 페스티벌>(시어터 제로:1999.12.31-2000.1.1)과 <2000 서울 국제 행위예술제SIPAF2000)>(인사동:11.17-11.19)을 시작으로 현재 퍼포먼스의 열기는 가속화되고 있는데, <단원 국제 퍼포먼스 아트 페스티벌>(부천시 중앙공원:11.4)은 지역에서 일어난 국제 퍼포먼스 축제의 한 예이다. 홍오봉이 운영위원장을 맡아 직접 기획한 이 페스티벌에는 김광훈, 김석환, 김은미, 김현주, 도지호, 신도원, 이준희, 홍오봉 등이 참여하였으며, 이즈미 아끼꼬, 후앙루이 등 일본작가와 중국작가도 참여하였다. 

 김천에서 열린 <2001 김천국제행위예술제>(김천문화예술회관ㆍ김천역 광장:12.19-12.21)는 행위예술과 같은 난해한 예술장르의 축제를 관에서 주최할 정도로 진일보한 문화의식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이는 국내에서 행위예술의 발전을 예측케 할 수 있는 청신호로 여겨지는 것이다. 세이지 시모다, 나호 요카바야시, 오하시 노리코, 요시미치 타케이(이상 일본), 유안 모로 오캄포(필리핀), 곽망호(홍콩), 후앙 루이(중국), 앤지 홍 카오(마카오) 등 외국작가와 이승택, 이건용, 김영원, 도지호, 홍오봉, 김석환, 문정규, 안치인, 황민수, 심홍재, 이상진, 윤명국, 신도원 등 국내작가 등이 대거 참여한 이 페스티벌은 앞으로도 계속 개최될 것으로 보여 발전이 기대된다. 

 2001년도에 있었던 설치 전시로 주목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노석미의 샤워전>(일주아트하우스:2.2-2.27), <이중언어전>(갤러리다임:한계륜, 조계형, 정영훈 참가), <코디최전>(국제화랑:2.17-3.17), <김기환영상전>(복합리빙공간 공:3.1-3.31), <구성규, 이성범, 임승률 3인전>(아트센터 나비:3.6-4.30), <양아치-중국로봇전>(동덕아트갤러리:3.21-3.26), <파워파우다전>(서초조형예술원갤러리:4.21-5.1:심철웅, 이민경, 신유리, 정상곤 등 9명 참가), <홍장오 탐색전>(갤러리 사간:4.24-5.5), <낙원극장전>(대안공간 풀:4.27-5.8:김민경, 김은경, 민지애, 손혜민, 송이영 참가), <1초전>(대안공간 루프:5.5-5.26:이용백, 유지숙, 최정원, 김은경, 손혜민 참가), <양만기전>(갤러리사간:5.9-5.22), <조계형의 메타연극>(알과 핵 소극장:5.25-5.27), <미메시스영상전>(쌈지스페이스:6.22-6.30), <오상길전>(한원미술관:7.4-7.30), <김승영PS1보고전>(인사미술공간:12.6-12.16), <노상균전>(갤러리현대:9.11-9.25)



Ⅳ.맺음말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의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전환과 역동의 시대전>(6.21-8.1)은 설치와 뉴미디어 분야의 원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시였다. 19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에 걸친 약 10년 동안 한국현대미술에 나타난 형식실험의 양상과 흐름을 회고할 목적으로 기획된 이 전시는 비록 작품의 리메이크 문제와 큐레이팅의 관점을 둘러싼 논쟁을 야기했지만, ‘24분의 1초의 의미’(연출 김구림)와 같은 실험영화를 비롯하여 평상시에는 접하기 힘든 작품들이나 자료가 대거 출품되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이는 하반기에 있었던 한원미술관 기획의 <또 하나의 국면-한국현대미술의 동시대성전(기획:오상길 한원미술관 관장)>(2001.11.6-11.15)에 앞서 미술관측이 마련한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Ⅱ-6.70년대 미술운동의 비평적 재조명’이란 세미나에서 논의된 문제들, 또는<또 하나의 국면전>이 거둔 성과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뉴미디어의 활동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여겨지는데, 동일한 계열에 대한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아가서는 그 뿌리를 찾는 일이야말로 그것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며, 역사성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1 문예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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