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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조화에 대한 성찰

윤진섭

한국미술의 세계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극적으로 그것은 한국미술이 세계미술사 속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늘 현재진행형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상에 당당히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원으로서 오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시각적인 측면에서 독창적으로 뭔가를 제시하는 것,

나아가서는 그러한 시각들의 총화가 바로 한국미술이다. 작가들은 독창적인 태도로 작품을 제작하고, 비평가는 이를 제대로 해석해서 평가하고, 큐레이터는 창의적인 시각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사가 역시 독자적인 시각에서 미술사를 기술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독창적인 한국미술을 세계미술사 속에 편입시킬 수 있다.

그러자면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의 역량을 키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멀리, 그리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세계의 여러 나라와 상호 호혜의 정신으로 교류와 소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지구촌’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된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하늘을 찌를 듯한 자부심을 갖고 내가 하는 미술 행위에 대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질 일이다.

그런 자세로 나아갈 때 세계미술의 영토는 가슴을 활짝 열고 서서히 우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옷이 아닌 것들을 점진적으로 벗어던지는 주체적인 태도이다. 나의 삶에서 비롯되지 않은, 다시 말해서 체험에 뿌리를 두지 않은 내용들이라든지 설득력이 없는 공허한 제스처, 맹목적인 서구추종적 태도는 지양돼야 한다.

우리의 삶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표피적인 서구 미술사조의 추종은 우리의 미술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서구미술에 종속시키는 주요인이다. 한국미술의 주변부, 즉 ‘변두리화’는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냉철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이다. 진정으로 글로벌한 시각은 표피적인 서구적 감수성의 연마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전통, 문화에서 채굴된 ‘우리의 피’를 깊이 인식할 때 갖춰진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이다.

이는 쇼비니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주의의 극복과 관련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피로 쓰라!”는 니체의 경구만큼 현재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없다. 남의 피가 아닌 나의 피로 쓴다는 것만큼 오늘 이 시대에 어울리는 격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피로 쓰고 있는가?

서양에서 발행된 그 숱한 미술사 책에 한국미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동양 역시 그 위상은 미미하다. 이것을 가리켜 어떻게 세계미술사라고 할 수 있는가? 글로벌미술사의 편찬에 대한 강렬한 요구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과연 어떤 내용으로 그것을 채울 것인가? 서구의 영향을 받은, 서구적 감수성으로 덧칠된 ‘원숭이의 미술’로 채울 것인가? 탈식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문화적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 다시 묻자면 우리의 피로 쓰고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통찰을 깊이 인식하지 안 된다.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들이 제각각 존재감을 드러낸 채 반짝이기 때문이다. 작거나 큰 것, 뚜렷하거나 희미한 것, 먼 것이나 가까운 것 등등이 어울려 하나의 천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더할 나위 없는 조화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자연은 그러한데 인간은 이를 본받지 못한다. 편견과 오만,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독선이 미술의 땅에 황량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미술에 대한 서구인의 시각은 그렇다치고 과연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차이와 조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서울문화투데이 2015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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