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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그리고 지표들

윤진섭

지난 2009년에 창립된 [코리아 투모로(Korea Tomorrow)]전은 지금까지 6회를 거치는 동안 성격이 뚜렷한 기획전으로 미술인들과 미술애호가들의 뇌리에 각인돼 왔다. 그 타당한 이유로 나는 이 전시가 지닌 약동하는 생명력을 들겠다. 한국의 미술현장을 꼼꼼히 살펴 문제의식이 분명한 작가들을 선별한 뒤, 하나의 분명한 주제 하에 포섭하려는 주체 측의 확고한 의지가 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이는 그동안 이 전시에 참여한 수많은 작가들의 면모와 활동상을 보면 여실히 증명된다. 이 전시의 특징은 특정한 연령에 상한선을 두지 않고 오로지 작품세계에만 주목,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작가들을 선정하는 데 있다. 국제경쟁력을 염두에 둔 이러한 목적의식이 이 전시를 ‘개성의 각축장’ 혹은 ‘실험의 경연장’으로 부를 수 있는 명분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코리아 투모로(Korea Tomorrow]전은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기획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이 과연 어디를 지향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국제미술계와의 역학관계와 결부돼 있다. 이는 나날이 변모해 가는 국제미술의 지형도를 염두에 둘 때 보다 자명해진다. 이른바 비엔날레나 미술관과 같은 대표적인 미술 기구를 비롯하여 옥션, 아트 페어, 미술저널 등 상업시스템에 기반을 둔 각종 미술 제도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이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한국미술의 존재가 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넓은 국제미술계로 나아갈 때, 우리가 과연 진정한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사안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코리아 투모로(Korea Tomorrow}전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짜임새 있는 기획이란 그 자체 하나의 경쟁력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력이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오늘 우리가 처한 시대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독창적인 시각에서 발언을 하는 작가들로부터 나온다. 내가 보기에 [코리아 투모로(Korea Tomorrow)]전은 대체로 스스로 부여한 이러한 사명에 충실해 온 것 같다. 역대 전시에 초대받은 대다수 작가들의 면모는 신진에서 중진에 이르기까지 연령을 초월하여 개성과 실험성, 그리고 전위적인 위식을 고르게 보여주었다. 이른바 ‘실험정신의 교두보’ 혹은 ‘한국 현대미술의 전진기지’로서의 코리아 투모로는 국제관계에서 파생되는 지향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략적 선택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한 전략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한국미술이 서구미술에 대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상흔, 즉 모방 콤플렉스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와 주체적인 미술로 국제미술계에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제는 불가분의 표리 관계를 갖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미술의 정체성은 좁은 의미에서의 ‘나(I)’를 초월하여 국제 보편성의 피안에 당도할 때 비로소 획득할 수 있다.
 
 서구미술에 대한 모방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우리를 둘러싼 당대의 문화적 특성과 변모된 문명의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세계의 IT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세계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인정을 받고 있다. 세계는 이제 고립의 상태에서 상호 소통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발달된 각종 SNS 매체와 교통수단은 집단보다는 유목적 개인의 삶을 촉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며 동시에 종교적,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국제적 호혜와 평등, 박애, 자유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해 가는 중에 있다.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경제적 지표(index)에 있다. 수출 1조 달러 달성이란 지표가 말해주듯이, 막강한 경제력에 토대를 둔 국력의 신장은 원조수혜국에서 원조제공국으로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다. 남북분단에 기인한 불안한  정치적 상황이 이데올로기 문제를 비롯해 산적한 현안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가 인류 보편의 당대 문명적 상황에 편승해 있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관련시켜 볼 때 ‘한국성(Koreaness)’은 하나의 관념 혹은 허구라는 사실을 이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한때 사막에서 우물을 찾듯이 ‘한국성’을 찾고자 한 적이 있었다. 얼핏 보면 한국 사람이 한국성을 찾는 것이 매우 당연해 보이나, 문화란 지나치게 경직되면 활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나 자신은 잘 못 맡으나 남은 잘 맡는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일곱 번째로 열리는 [코리아 투모로(Korea Tomorrow]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한국의 예술을 국내외에 알리는 문화적 지표들(cultural index)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들의 예술적 성과는 각 개인의 능력의 지표에 다름 아니다.  예술과 사회, 자연, 인간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각자 다르며 그 표현방법이나 매체, 재료의 사용 또한 서로 다르다. 전시를 구성하는 힘은 바로 이러한 차이와 개성, 그리고 독창성에서 나온다. 코리아 투모로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이처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작가들의 집합장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코리아 투모로가 과거의 한정적인 주제 설정의 관행에서 벗어나 ‘I’라고 하는, 보다 유연하며 포괄적인 주제를 내세운 이유는 ‘해석의 자유’에 기인한다. 4인의 큐레이터들이 ‘I’라고 하는 화두를 놓고 그것을 각자 해석 하는 것, 그리고 그런 행위를 통해 제시된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표정을 드러내는 것, 이야말로 문화적 행위에 다름아닌 것이다. 물론 이처럼 포괄적인 주제가 모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의 속성상 어떤 한정적인 주제라도 실제를 다 담아낼 수는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각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지표들(index)이 더 암시적이며 풍부한 해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4인의 큐레이터들이 마치 ‘집게 손가락(index finger)’으로 집어 올리듯이 미술계란 바다에서 건진 대어들이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책의 권말 색인(index)에서 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단어들인 것이다. 작가들은 그런 지표를 통해 시쳇말로 몸값을 높이고 유명세를 얻을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을 갖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들의 비엔날레를 비롯한 미술관이나 옥션, 아트 페어, 미술저널에의 노출 빈도가 각종 비평이나 미술사 서적의 색인의 빈도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은 매우 당연하다. 어떤 책의 색인에서 노출 빈도수가 많은 단어나 인명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듯이, 전시에의 초대는 일종의 능력의 지표인 것이다. 코리아 투모로(Korea Tomorrow)]전이 미술계의 관심을 끈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이 지표들의 집합장이자 경연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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