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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와 비평의 권위

윤진섭



Ⅰ. 해방이후 현재까지 일간신문의 신춘문예나 각종 미술전문지 및 미술단체가 주관하는 미술평론 공모를 통해 등단한 미술평론가는 약 40여 명에 이른다. 반면에, 현재 국내의 유일한 미술비평 단체인 [한국미술평론가협회]에 소속된 회원 57명 가운데 신춘문예 및 각종 비평공모를 통해 등단한 사람은 약 30여 명에 달한다. 이는 신춘문예 내지 공모를 통과한 전체 등단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숫자로서 이 협회의 공신력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춘문예를 통과한 사람이 곧 유능한 비평가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공모나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평자의 역량에 따라 훌륭한 비평적 업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나 공모가 지닌 장점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관문이요, 제도라는 사실에 있다. 마치 사법고시를 통과해야 법관이 되는 국가고시제도 만큼 엄격하지는 않으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당사자 본인에게 떳떳함은 물론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격 미달의 평자의 글을 언론매체에 실으면서 마땅한 직함이 없으니 미술평론가라고 소개한다거나, 자칭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사용하면서 비평의 권위를 흐리는 행동을 일삼으며, 이권에 개입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다. 이 문제에 관해 한국미술평론가협회는 여러 차례 대책을 논의한 바 있으나, 언론 매체의 비협조와, 달리 제동을 걸 수 없는 사회적 관습 때문에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세상이 변한 만큼 미술평론가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또한 미술평론가를 배출하는 창구도 다원화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학, 예술학, 철학, 미술사 등 미술과 관련된 인문학 분야에서 고도의 지적 훈련을 거친 인재들이 수없이 배출되는 오늘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신춘문예나 공모와 같은 등단 절차를 요구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의 지적 상황은 마치 미술계가 살롱전을 구태의연한 제도로 경원하는 것처럼 신춘문예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기게 하기에 충분하겠기 말이다. 따라서 신춘문예는 미술평론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일 수는 없는 것이다.

Ⅱ. 현실적으로 볼 때 요즈음처럼 비평이 위기를 맞았던 시대도 드물 것이다. 비평은 항상 위기를 전제로 하나 비평 자체가 미술계의 내부적 변동 요인에 의해 위기를 맞은 것은 하나의 역설임에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큐레이팅 영역이 활성화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이후 국내의 대학이나 대학원에 미술관련 이론학과(미학, 미술사, 예술학, 고고학 등)의 개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 분야의 고급 인력들이 대거 배출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화랑이나 미술관에 자리를 잡으면서 큐레이터의 직함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실천해 나갔던 것이다. 전시서문의 집필은 물론 미술전문지에 전시에 관한 리뷰나 본격적인 비평문을 실음으로써 자연히 비평가와 큐레이터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비평과 전시기획 사이에 서로 겹쳐지는 교합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전시기획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70년대 이후부터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작가/기획자의 시기>에서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후반에 이르는 <비평가/기획자의 시기>, 그리고 2천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전문기획자의 시기>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작가와 비평가, 큐레이터의 영역과 역할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다소 느슨한 형태로 병존하고 있다.

Ⅲ. 해방 이후 50여 년에 걸친 미술비평사를 돌이켜 보면, 화가나 문필가가 비평을 했던 <인상비평의 시대(40년대-50년대 후반)>를 거쳐 현재는 미학이나 미술사 전공자가 본격적으로 비평에 나선 <전문비평의 시대(60년대 이후-현재)>에 진입해 있다. 이 전문비평의 시대는 전문 미술비평가 제1호로 인정받고 있는 석남 이경성 선생 이후 현재 제3세대에 이르고 있다. 제1세대는 석남을 포함하여 방근택, 최순우, 이구열, 임영방, 이 일, 김인환, 오광수, 유준상, 김윤수, 유근준 등이며, 제2세대는 김복영, 김해성, 송미숙, 윤우학, 최민, 성완경, 윤범모, 유홍준, 심광현, 이영철, 최열, 장석원, 윤진섭, 윤난지, 이재언, 김현도, 서성록, 김영순, 강선학, 임두빈, 이준, 이용우, 김홍희 등이다(월간미술 2003년 2월호 참고). 제3세대는 90년대 후반이후 등단하거나 비평적 글쓰기에 나선 신세대 비평가들로서 구체적인 거명은 생략한다.

이 글의 주제가 되는 신춘문예에 관한 한, 제1호는 196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을 통해 등단한 오광수 전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은 40여 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권위 또한 높기로 유명하다. 이곳을 통해 등단한 비평가들로는 윤우학, 김병종, 김해성, 유홍준, 윤범모, 임두빈, 서성록, 박신의, 김숙경, 윤진섭, 김현도, 이종숭, 오세권, 박일호, 채홍기, 김주환, 전인권, 장준석, 서기문 등이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타 미술관 큐레이터나 작가를 겸직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만큼 미술비평계의 중진 내지 중견으로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저술이나 전시기획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이 제도는 시행이 중단된 상태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1991년 강성원의 등장을 시발로 이선영, 공영희, 고충환, 이동석, 정용도, 장원, 박원식, 공주형, 장봉균 등을 배출하였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들 중 2002년에 등단한 장봉균 씨가 외교관 출신이며 등단 당시 연령이 59세에 달했다는 점이다. 당선작인 <피카소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에 대한 편견>>은 당선자가 평소 피카소의 작품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미술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마침내 미술평론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고(故) 이동석은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과로로 타계하여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미술평단>은 1986년 창간이래 현재까지 모두 8명의 당선자를 배출하였다. 1987년 이준(현재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필두로 이용우(제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함지훈, 임창섭, 정한조, 김병수, 이필, 전경희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잡지가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기관지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많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외에 <미술세계>가 주최하는 미술세계 평론상을 통해 정세근, 임재광, 김성호 등이 등단하였으며, 월간 <공예>를 통해서는 이재언이, 구상조각회가 주최하는 구상조각평론상을 통해서는 최태만과 조은정이 각각 등단한 바 있다. 아울러 1977년 <수화 김환기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났는가>라는 제목으로 계간미술을 통해 등단한 원동석의 경우도 특기할 만 하다. 이 글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인 수화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민중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당시 비평계의 관심을 모았다.

Ⅳ. 이상 살펴본 것처럼 신춘문예나 각종 공모를 통해 등단한 미술평론가의 숫자는 상당수에 달한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활성화된 것이 80년대 초반인 점을 감안할 때, 현재 60세를 넘긴 비평가들은 신춘문예에 관심이 있었어도 등단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비평가가 다수 눈에 띄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신춘문예의 주제와 권위에 대한 부분이다. 신춘문예의 주제는 크게 작가론과 시론으로 나뉜다. 작가론의 경우는 특정작가의 작품세계를 생애와 관련하여 분석한 글이 주종을 이루며, 시론의 경우에는 응모할 당시에 유행했던 주제가 주로 채택되는 일이 많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로는 유홍준의 <묵로 이용우론-전후의 작품을 중심으로>(동아일보 신춘문예 1981년도 당선작)를 들 수 있으며, 후자의 예로는 김현도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풍향>(동아일보 신춘문예 1991년도 당선작)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개별적인 예외가 있다고 하더라도 군계일학(群鷄一鶴)은 역시 빼어난 법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춘문예 당선작의 내용을 살펴볼 때 곧잘 확인된다. 왜냐하면 신춘문예나 공모에서 필수적으로 도입하는 심사제도 자체가 일종의 검증장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매스컴에서 달아주는 미술평론가의 직함은 친분관계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검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물론 당사자가 신춘문예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굳이 등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들 중에서도 비범한 능력을 갖춘 비평가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현재 활동하는 현역 미술평론가들 중에서 예리한 통찰력과 안목으로 비평과 저술활동에 힘을 쏟고 있는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신춘문예는 미술평론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 미술세계 200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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