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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랑-성과 속의 문턱에 선 문화 테러리스트

윤진섭

오르랑-성과 속의 문턱에 선 문화 테러리스트



프랑스의 여류 중에 오르랑(Orlan)이란 작가가 있다. 1947년 생으로 생 에티엔느 출신이다. 작년 말, 서울에 있는 갤러리 세줄에서 초대전을 갖기 위해 방한하기도 했던 그녀는 그래서 우리에겐 구면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보다 앞선 재작년에 오르랑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 한국의 미술애호가들에게 대대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2000년 12월에 인사동에서 열린 <2000서울국제행위예술제(2000 Seoul International Performance Art Festival:SIPAF2000)>에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당시 이 행사의 총감독을 맡았던 나는 그녀를 초대하기로 결정하고 수 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녀의 방한은 곧 성사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개막을 몇 일 앞둔 어느 날 그녀는 뜻밖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바쁜 스케줄로 인해 몸이 탈진했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방한이 이루어진 것은 1년 뒤 갤러리 세줄의 초대전 때였다.
나는 그녀의 명성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엽기에 가까운 그녀의 작품은 국제 미술계에서 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성형수술이 주류를 이루는데, 날카로운 메스로 피부를 절개하고 꿰매는 수술장면이 일반일이 보기에는 매우 끔찍했던 모양이다. 오르랑은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을 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뉴욕에서 행한 작품은 세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피부를 절개하는 전 과정이 일종의 퍼포먼스로서 인공위성을 통해 파리와 터론토의 미술관에 중계되었던 것이다. 국소 마취를 하였으므로 오르랑은 또렷한 의식으로 수술장면을 TV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가 하면 독서를 하기도 하였다.

오르랑이 이처럼 극단적인 형태의 퍼포먼스를 행하게 된 이면에는 그녀 나름대로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 있다. 사춘기 때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몸이었다. 아담한 키에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인 그녀는 열 일곱 살 때부터 자신의 누드를 찍기 시작한다. 이때 그녀가 찍은 사진은 초상화나 인물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포즈와는 달리 두 팔과 양다리를 뒤튼, 매우 고혹적인 포즈였다. 긴 머리에 뭔가를 강렬히 응시하는 듯한 시선은 얼핏 에로틱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춘기의 소녀들이 항용 그렇듯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듯한 이 사진에는 유혹을 당하고 싶은 욕망과 주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이 내포되어있다. 그녀는 이 사진에 “오르랑은 그녀 자신을 출산한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불어 특유의 말장난에서 비롯되는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오르랑은 그녀의 자아에 대한 사랑을 출산한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진작업을 겪었던 그녀는 1977년 아주 흥미를 끄는 하나의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예술가의 키스”라는 행위예술이 그것인데, 이 작품은 관객들, 그 중에서도 특히 남성의 관심을 끌었다. 검정색 옷 위에 리얼하게 유방을 묘사한 갑옷 형태의 부착물을 걸친 오르랑은 행인들로 하여금 목 부분에 난 통로로 5프랑짜리 동전을 집어넣게 하여 동전이 성기 부분에 닿으면 그 사람과 키스를 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그녀는 직장인 학교에서 해고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세태를 강렬히 비판한 이 작품으로 인하여 점차 명성을 얻게 된다.
오를랑의 작품은 그녀의 신체가 중심이 된다. 그 만큼 그녀의 작업은 신체에 대한 꾸준한 탐색으로 전개돼 왔기 때문이다. 초기의 누드 사진을 비롯하여 70년대 중반의 ‘키스’ 작품, 그리고 80년대 이후의 성형수술 퍼포먼스와 최근의 컴퓨터 합성사진 작업에 이르기까지 신체는 메시지 전달의 매개체가 되어왔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 성모 마리아 등 명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얼굴 일부를 합성하여 자신의 얼굴을 성형한 작품에 이르러 극대화되고 있다. 서구적 미의 절대적 가치 기준에 의문을 표시한 그녀의 이 작품은 미와 추, 성과 속의 개념에 대한 질문으로 읽혀진다.

최근 들어 그녀는 그녀 자신의 얼굴과 컬럼비아, 멕시코, 아프리카의 가면을 합성시킨 사진작품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다년간에 걸쳐 이 지역을 여행한 바 있는데, 특히 여성의 절개된 아래 입술에 흙으로 빚은 원반을 끼워넣는 아프리카 부족의 풍습은 그녀에게 강렬한 문화 충격을 주었다. 문신, 피부절개, 반인반수, 가면, 입무식, 희생제의 등등 이국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은 최근 사진작업에 필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실제로 이마에 봉긋이 솟은, 작고 말랑말랑하며 귀여운 인조 뿔을 넣고 다니는 오르랑은 강한 개성의 소유자이며, 문화 테러리스트이자 금세기 최대의 전위예술가중 한사람이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천사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자칼이다.”, “나는 악어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잡종개이다. 나는 검은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백인이다. 나는 여자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남자이다. 나는 결코 나의 피부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이러한 아이러니는 수술을 통해 “여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되는” 맥락과도 같다. 미의 절대적인 가치와 범주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자기복제> 연작을 통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다양한 괴수와 인간, 신과 인간을 결합해 놓은 듯한 기묘한 형상들은 미의 절대적인 기준에 던지는 그녀의 의문부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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